입시 지상주의와 과도한 경쟁이 초래한 공감능력 저하
입시위주 교육은 대학입시에 필요한 과목 및 교내 활동에 집중하는 것을 의미한다. 자사고, 특목고, 영재학교 등 중학생 때부터 입시가 시작되기도 하며, 그 이전에도 선행학습 등으로 더 어린 나이에 입시위주 교육을 시작하기도 한다. 입시위주 교육을 강화시키는 배경에는 과도한 입시경쟁이 존재한다.
한국에서 교육은 취업의 연장선으로 여겨진다. 학벌중심 사고의 결과로 좋은 학벌이 미래의 성공으로 이어진다는 사회적 통념이 형성된 결과다. 해당 학과를 졸업한 선배들의 모습을 보며 이러한 믿음은 강화되거나 약화되고, 선호하는 학교와 학과가 만들어진다. 입시가 끝나면 고등학생들이 공부를 등한시하는 현상은 입시라는 목표를 달성함으로써 더 이상 공부에 대한 동기가 떨어지기 때문에 생겨나는 현상이다.
입시경쟁은 원래 수험생 대비 대학 정원이 부족할 때의 불가피한 수단이었다. 현재는 학생 수에 비해 대학 정원은 오히려 넉넉해졌고 있던 대학도 학생이 부족해 사라져 가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입시경쟁은 줄어들지 않는다. 대학의 서열화로 일부 대학에 지원자가 몰리기 때문이다. 여전히 입시는 고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들의 주된 관심사며, 드라마 'SKY 캐슬'에 나온 입시 컨설턴트에 대한 이야기도 일부 과장되었을 수 있으나 현실에 아주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명문대학, 원하는 학과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입시경쟁의 좁은 문을 통과해야 한다. 입시경쟁이 치열한 곳은 핑크빛 미래가 보장된 곳이라는 '환상'이 형성된 곳이다. 그 환상은 그곳을 졸업한 선배들의 삶을 통해 일부 아직까지는 현실화되어 왔다. 대학, 전공이 미래 성공을 보장하던 환상의 과도한 일반화는 시대의 흐름에 맞춰 다소 옅어졌지만, 여전히 강력하게 유지되는 곳이 있다. 바로 '의대'와 '의전원'이다.
타인의 기준에 맞춰 살다 보면, 기준에 필요하지 않은 것들은 포기하게 된다. 입시라는 기준에 맞춰 공부해온 학생들은 입시에 필요하지 않게 되는 순간 공부에 대한 관심이 떨어진다. 선택과 집중에 따른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입시요강에 따라 자신에 갖추어야 할 부분은 집중하지만 그 외의 것들은 신경 쓰지 않기에 예체능, 교양 시간에 다른 과목을 공부하는 이상현상이 일어난다. 심지어 학교에서도 수능 출제 과목에 집중하여 수업을 편성한다. 앞으로 하고 싶은 일, 또는 관심 있거나 재미를 느끼는 내용 떠나, 입시에 필요하니까, 수능 출제 과목이니까 하기 싫어도 공부를 해야 한다. 이 자체가 공부에 대한 흥미를 떨어트리며 다양한 재능과 개성을 위축시킨다.
특별 활동이나 동아리 활동마저 입시 스펙을 쌓는 도구로 변질되기도 한다. '학생부 종합전형'에 필요한 활동들이 동아리 활동의 주가 되며, 동아리 또한 이런 점을 홍보한다. 일석이조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것은 목적과 수단이 전도되면서 벌어지는 현상이다. 자신이 흥미를 느껴 동아리 활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동아리 활동이 입시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시간을 투자하는 양상을 보인다. 시험 범위 외의 교양과 지식에는 무관심해진다. 심리, 철학, 교육, 역사, 비판적 사고, 책임의식, 인성, 도덕, 가치관, 국가관, 가족관, 인간관계, 공감, 배려 등 인간이 사회를 이루고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내용들에 대한 가벼운 소개와 탐구조차 이루어지지 않는다. 답이 정해질 수 있는 내용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입시경쟁에는 성적, 등수, 점수가 필수적이다. 해석의 여지가 없는 문제들이 필요하며, 답은 논쟁의 여지없이 단 하나로 수렴되어야만 한다. 불필요한 혼란을 예방하기 위해서다. 답은 점차 단답식이 되고, 객관식이 된다. 입시에 제출되는 문제들은 극단적으로 표준화되고 한정된 부분만 다룰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입시에서는 다양한 생각을 하는 사람보다 정답을 비판 없이 있는 그대로 잘 받아들이는, '암기'능력이 좋은 사람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 입시경쟁이 교육의 기준이 되며 벌어지는 '역전' 현상들이다.
학생들은 어렵고 생각을 요하는 과목보다, 쉽고 점수가 잘 나오는 과목을 선호한다. 입시위주의 교육이 학생들의 선택을 일부 과목에 집중시킨다. 복잡한 해석, 사고가 필요한 영역은 기피된다. 경제, 물리 2, 화학 2와 같은 선택과목들이다. 과학의 영역에서 지구과학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것도 입시 위주 교육의 폐해다. 지구과학에서 배운 내용을 수능 이후에도 사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수포자가 나오는 현상도 유사하다. 수학이 입시에 필수가 아닌 학생들은 과감하게 수포자가 된다. 수학이나 물리는 생활 속에 직면하는 흔한 문제나 현상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한 필수 학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의 관심이 저조하니 해당 과목은 가르치는 사람도 줄어들고 교육 콘텐츠의 질도 떨어진다. 교육을 유지할 인프라가 소멸되는 것이다.
학생들은 입시위주 교육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입시가 그들의 명줄을 잡고 있는 현실 때문이다. 학생들의 바람을 선생님들은 무시할 수 없다. 자신의 학생들이 좋은 결과를 얻을 때 스승도 보람을 느낀다. 제자의 절망과 실패를 바라는 스승은 없다. 학교도 마찬가지다. 해당 학교 학생들이 명문대학, 선호학과 진학률이 높아야 학교의 명성도 덩달아 높아진다. 학교의 명성이 높아져야 좋은 교사도 고용되고 부모들 역시 자녀를 기꺼이 학교에 맡기려 한다. 전체 학생 수는 줄어들고 학교 수는 점점 늘어난다. 폐교 위기에 처한 학교들도 많다. 우리도 그런 꼴 나지 않으려면 학생들을 더욱 입시 위주로 교육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학교가 수능점수를 뽑아내는 공장화 되어가는 이유다.
경쟁 그 자체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다. 경쟁구도와 라이벌 의식은 개인의 능력을 극대화시키는 촉매제가 되기도 한다. 경쟁을 통해 더 좋은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은 본인이 의도한 것이 아니더라도 공공의 이익과 사회발전을 창출하기도 한다. 자유경쟁의 이점일 것이다. 하지만 아직 성인도 되지 않은 학생들이 입시경쟁을 통해 서로를 라이벌로 의식하는 것이 과연 이로운 것일까?
성적이 높은 학생이 낮은 학생보다 우등한 존재로 인식되는 입시 중심의 학업 문화는 아이들에게 좋을 수 없다. 학습은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여러 가지 능력 중 하나이지만, 인간의 가치를 판단하는 절대적인 기준은 될 수 없다. 공부는 평생 계속하는 것이며, 성장 중인 아동청소년기 12년의 기간 동안 한 사람의 지식체계가 완성되어야 할 필요도 없다. 기반을 닦는 시기에는 일부 지식을 익히는데 치중하기보다는 앞으로 경험하게 될 사회의 필수요소를 알려주고 소개해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
대학은 전공을 정함을 통해 더 깊고 광범위한 교육이 이루어지는 장이 되어야 한다. 고등학생까지 교양 수준에서 배워온 학문에 대한 깊이를, 대학에서 갈고닦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등학교가 수능점수를 뽑아내는 공장화 된 것처럼, 대학 역시 취업 사관학교화 되어버렸다. '대학 = 취업의 문턱'이라는 공식이 어느새 성립되었기 때문이다. '취업률 100%'같은 문구가 대학의 홍보수단이 된 현재 모습은 '비극'이다.
진짜 경쟁은 대학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마땅하다. 현재의 입시위주 교육은 정 반대로, 경쟁을 대학에 진학하기 전에 시작해서, 대학에 들어가면 종결되는 양상을 지속시키고 있다. 경쟁시기를 앞당겨 성장기에 불필요할 정도로 무한경쟁을 강요하는 것이다. 입시에 뛰어난 학생이 더 우등한 인간이라는 무의식을 어린아이들에게 주입시킨다. 아직 인간에 대한 가치관도 형성되지 못한 아이들은 '이번 중간고사에서 1등 한 학생'을 칭찬하고 손뼉 치고 부러워하는 교실 풍경을 맞이한다. 시험공부가 공부의 전부가 아니다. 대학에서부터 진짜 공부와 경쟁이 성립되는 것이 옳다. 공부는 인생을 통틀어 꾸준히 이루어져야 하는데, 과도한 입시경쟁은 대학에 입학하는 시점에 이미 공부를 지긋지긋한 '시험공부'로 인식하게 만든다. 비단 고등학교 3학년 수험생들 뿐 아니라, 입시 준비, 조기 교육 등을 통해 훨씬 어린 학생들조차 대학 입시를 인생의 중요한 기로로 여기게 만든다.
나 역시 수능, 내신 1등급이 인생에서도 1등급인 줄 알던 시절이 있었다. 선생님이 공부 열심히 하라니까 아무것도 모른 채 그냥 죽어라 공부하는 방법밖에 없는 줄 알았고, 그렇게 밤잠 줄여가며 공부에 매진하던 시절이 있었다. 성적을 잘 받으면 기분이 좋았고, 못 받으면 기분이 나빴다. 학원, 학교에 어떤 학교에 몇 명이 진학했다며 플래카드가 걸려있는 것도 보았다. 곳곳에 우등반, 열등반이 나누어졌고, 학교에서는 성적 좋은 학생들을 따로 모아 심화교육을 시키기도 하였다. 학교가 끝난 이후에 학원에 가서 추가적으로 공부하는 것은 일상이었다. 나의 모교는 공립고등학교였고 공부 잘하는 엘리트 학생들이 모인 학교가 아니었음에도 그런 경향은 일반적이었다. 그렇게 2000년 초반 수능세대를 경험하며 사관학교로 갔고, 그 이후 십수 년이 지난 지금도, 오히려 과열되었을 뿐 전혀 줄어들지 않은 입시경쟁문화를, 아이를 둔 부모의 입장에서 바라보게 된다.
명문대학, 선호학과가 형성된 원인은 무엇일까? 최초에 모든 대학이 그처럼 서열화되어있지는 않았다. 학과의 선호도는 해당 학과를 졸업한 선배들의 성공 여부에 따라 오르내렸다. 학과 선배들이 좋은 직장에 취업해 성공가도를 달리면 학과의 선호도 역시 올라갔다. 선배들이 비전을 보여주지 못하면 학과에 대한 선호도는 떨어졌다. 학문적인 역량에 집중하고 취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 학과는 선호 대상에서 멀어져 갔다. 대학도 마찬가지였다. 수도권과 같이 인프라가 집중된 곳의 대학에서 좋은 성과물이 창출되기 시작했다. 명문대학을 졸업한 선배들이 사회에서 집단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부모와 학생, 그리고 학교까지 과열되어가는 입시에 동참하며 튼튼한 동아줄을 잡기 위해 치열한 경쟁에 뛰어들었다. 입시경쟁에서 우위에 선 학생들이 명문대, 선호학과에 더욱 몰리기 시작했다. 대학 서열이 생겨났고 격차는 더욱 심화되었다. 명문학교에는 성적이 좋은 학생들이 더 많이 몰렸고 명성은 더 올라갔다. 현재의 대학과 전공 서열은 입시경쟁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며, 만들어진 서열로 인해 입시 경쟁은 더 치열해졌다. 입시제도를 지탱하는 두 요소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악순환을 가속시켜왔다.
대학에 서열이 필요할 까닭은 없다. 예전에는 중학교, 고등학교도 서열이 나눠져 있었고 입시가 있었다. 공부에 뛰어난 학생들이 모여 서로 경쟁하며 학습성과를 올리기 위해서였다. 습득이 빠른 학생들과 습득이 느린 학생들이 섞여 있으면 서로의 학습 수준에 차이가 발생하고 교사 역시 어느 쪽에 집중할지 선택하기 어렵다고 여겼다. 그래서 학생들을 성적순으로 나누기 시작했다. 하지만 결국 중학교, 고등학교 입시는 사라졌다. 1974년 서울, 부산을 시작으로 고교평준화가 실행되었고 긴 시간을 걸쳐 전국으로 확대되었고 현재는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모두 평준화가 시행되었다. 이것이 극심했던 입시경쟁의 시점을 작으나마 뒤로 미뤄주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여전히 대학입시라는 가장 큰 문제는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