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점휴업 상태인 카페 한구석에 덩그러니 앉아 창밖의 풍경을 무심히 내다보게 된다. 널찍한 사거리에는 몇 안 되는 차량만이 오갈 뿐이고, 아직 해가 쨍쨍한 대낮이건만, 시간당 1명 정도 될법한, 마스크를 쓴 채 무언가에 쫓기듯 종종걸음으로 지나가는 몇몇 사람을 제외하면 인적은 완전히 끊긴 지 오래다. 많은 학생들이 배회하던 거리였는데, 코로나로 인해 원격수업으로 전환되며 카페를 찾아주던 학생들의 얼굴도 볼 수 없게 되어버렸다. 야속하게도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은 왜 이리도 눈부실까? 바이러스로 가득한 오염된 세상 같은 분위기라도 내주면 차라리 지금의 상황을 심정적으로 받아들이기라도 할 텐데. 유난히 맑은 하늘은 나를 비웃는 것 같고, 억눌려있던 억울함들이 입술을 삐집고 나올 것 같아 더 이를 앙다물게 된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라는 말인가...
올해는 재난의 해다. 그리고 계속해서 재난의 고리가 끊어지지 않고 있다. 자연재해, 전염병, 인재. 가만있자... 혹시 2020이라는 재난영화가 있었던가 싶어 찾아보니, '2012'였다. "'이천십이', '이천이십' 뒷자리만 다를 뿐 발음은 비슷하구나. 내년쯤 해서 '2020'이라는 재난영화가 나오지 않을까?" 의미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가만히 올 한 해 벌어진 일들을 떠올려본다.
2월 경, 중국 우한 발 코로나 바이러스가 신천지 교회를 통해 우리나라에 유입되었다. 이것이 한차례 슈퍼 전파를 일으켰고, 대구경북 지역은 한동안 봉쇄되기도 했다. '신천지'라는 인재와 코로나-19라는 '전염병'이 콜라보를 이룬 탓에, 한국은 감염 확산이 높은 오염된 대지로 전 세계적 유명세를 타게 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세계 각국은 바이러스의 진면목을 체감하게 되었고 WHO는 결국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선언을 하게 된다. 팬데믹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으며 현재까지 집계된 사망자 수만 해도 86만 명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많은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는 재앙이다.
코로나로 놀란 가슴도 진정시키기 전에, 몇 년간 보기 힘들었던 제대로 된 장마가 찾아왔다. 중국 싼샤댐이 붕괴될지 모른다는 괴문도 퍼졌고, 우리나라 역시 홍수로 인한 이재민이 발생했다. 소가 떠내려가고, 진한 흙탕물 위로 색색깔의 지붕들만 빼꼼히 머리를 내밀고 있는 이례적인 장면들이 오랜만에 뉴스 화면에 나왔다. 장마와 홍수로 시끄럽던 7월이 그렇게 지나고 8월이 되었다. 잠잠해지는가 싶던 코로나가 해외유입과 더불어 '이태원 발' '클럽 발' 전파 등으로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전 국민적 긴장 이완은 확진자 급증을 불러왔고, 그 와중에 의사들의 집단 진료거부 소식이 들렸다.
'인재'와 '인재'가 겹쳤다. 광화문 집회, 사랑 제일교회 등을 통해 또 한차례 슈퍼 전파가 시작되었다. 첫 번째와는 양상이 다소 달랐다. 이번에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고 지역 전파 사례가 전국 곳곳에서 산발적으로 발생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감염경로가 특정되지 않는 비율이 20~30퍼센트에 달했다는 것. 이것은 바로 방역에 구멍이 제대로 뚫렸다는 것을 의미했다. 겨우 코로나를 좀 밀어내는가 싶더니, '인재'들이 펑펑 터지며 바이러스는 어느새 우리 턱밑까지 다가와 있었다. 결국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의 말처럼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사는' 상황에 놓여야만 했다. 그렇게 사회적 거리두기는 다시 시작되었다. 이미 바이러스는 곳곳으로 전파되었기에 확진자 상승세는 쉽게 주춤해지지 않았다.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는 거듭 상승되어 현재는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가 되었다. 3단계는 사실상 경제 마비 상태를 초래하기에 자영업자들의 피해를 최소화시키고자 2.5단계를 만들었고, 이제 시행 후 1주일이 흘렀다. 그리고 바로 오늘,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를 1주일 연장한다는 발표를 듣고 있는 상황이다.
참으로, 안타깝고 화가 난다. 신앙을 교회라는 '건물'에서 찾으려는 일부 몰지각한 기독교인들, '목사'의 탈을 쓰고 교인들을 선동해 코로나로 엄중한 시기에 방역을 방해하는 일부 목회자들, 팬데믹 상황임을 알고도 대규모 집회에 운집한 사람들, 모두가 코로나로 힘든 이 시기에 민감한 의료정책을 들고 나온 정부, 그것을 반대하기 위해 환자들 곁을 떠난 의사들까지. 지금과 같이 모두가 힘을 합쳐야 할 시기에도 각자의 이익다툼, 그릇된 신앙, 정치적 이익만을 바라보며 방역을 방해하고, 감염을 확산시키고, 환자를 내팽개치는 이 모든 사람들이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적은 내부에 있다더니, 정말 위험한 것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아니라 극단적 이기주의로 똘똘 뭉친 '사람'인가 보다. 이 와중에 2000년대 들어 우리나라에 큰 피해를 입혔던 루사, 매미와 버금가는 태풍이 일주일 간격으로 연이어 들이닥치고 있다. 9호 태풍도 만만찮았는데, 10호 태풍은 역대급으로 강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예상 경로도 매우 좋지 않다. 한국의 중심을 관통하며 전국을 휩쓸 것으로 보인다. 태풍, 해일 등 자연재해에 관한 한 어지간한 단련된 일본도 긴장하고 있는 모양새다. 정말 '내우외환'이라는 말이 가장 어울릴 정도의 '비상시국'이다.
'불안', '공포', '두려움', '걱정' 등은 대표적인 부정적 감정과 사고 작용으로 여겨진다. 과도한 불안은 불필요한 걱정으로 이어지고, 때때로 어떤 선택도 내릴 수 없는 마비 상태를 불러일으키지만, 적절한 불안은 우리를 준비시키고 주위를 살피게 한다. 현재의 팬데믹 상황을 슬기롭게 극복하려면 현실감각에 기반한 적절한 불안을 유지하는 것이 필수다. 주위 사람이 확진자일 수 있다는 경계심을 내려놓지 않을 필요가 있다. 마스크를 착용하고, 앞사람과 거리를 두고, 자신의 몸 상태를 예의 주시하며,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에 가지 않는 등 사회적 거리두기, 코로나 방역 기본수칙 등을 지키려고 노력하여야 한다. 이 사소한 노력들이 무시되기 시작할 때 언제든지 '인재'는 발생할 수 있다. 조심할 때는 조심하고, 소나기는 피해 가는 것이 현명하다.
힘든 때일수록 서로 힘을 합쳐야 하는데, 현재의 상황을 보면 국가적으로는 그것이 원활하지 않아 보인다. 모두가 힘들기에 작은 갈등도 크게 점화될 수 있으며, 감정적이 된 사람들은 내재된 공격성을 발휘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춘다. 현재의 의사 진료거부 상태도 마찬가지의 양상을 보인다. 정부는 의사 집단의 반발을 사기에 충분한 의료정책을 내놓았고, 그것이 가장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는 전공의들의 감정을 자극했다. 미래의 경쟁자가 늘어날 수 있다는 불안으로 인해 감정적 대응으로 일관하는 전공의들은 상식선을 넘을 정도로 과열된 투쟁 양상을 보였고, 진료거부 기간이 장기화되면서, 이제는 전공의들을 지지하던 일부 국민들까지 등을 돌리게 만들고 있다. 그 와중에 국민정서를 건드리는 홍보물이나 속내 등이 드러나며 국민들의 여론은 더욱 악화되는 추세다.
의협회장이 뒤늦게나마 중재의 제스처를 취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감정의 골이 너무 깊어진 전공의들은 졸속합의라며 의협회장마저 공격하는 모모양새다.이 상황에 내분이라니. 대체 어쩌려고 저러는걸까. 코로나로 엄중한 시국에 또다시 많은 사람들이 지근거리에 모여 소리치며 몸싸움을 하는 상황이 발생했고, 사회적 거리두기는 회담장을 막아선 그들에게서 찾아보기 어려웠다. 어렵게나마 합의문을 이끌어낸 상황도 지금의 장기 진료거부 상황을 해결하기 어려울 것 같아 보인다.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고, 합리적이기 이전에 비합리적 신념에 휘둘리곤 한다. 격렬한 감정일수록 대중에 전염되기 쉽다. 공동의 적이 있을 경우 격한 그들에 대한 반발은 집단의 내부 결속을 더욱 공고히 하며, 생존투쟁을 위한 준비상태에 돌입하게 된다. 그것이 흥분이고 분노다. 그들이 이성을 되찾았으면 하지만 쉽지 않아 보인다. 의사 계층 간에도 내분이 과열되는 양상이다. 그들이 의료행위에 있어 대체자원이 없는 의사들이라는 현실이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다. 힘들어지는 것은 일반시민들 뿐인데, 저들의 대책 없는 대립과 갈등이 답답할 뿐,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그 무력감이 가슴을 찍어 누르는 느낌이다. 이제 그들의 생각이 무엇이든 관심 갖지 않으려 한다. 환자를 내팽개치든, 파업을 하든, 국시를 취소하든 뜻대로 하시라. 이 시국에 우르르 몰려다니면서 방역수칙이나 어기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