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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전우형 Oct 05. 2023

낮달

에세이

  만년필을 잃어버렸다. 어디 두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만년필의 자리는 백팩 오른쪽 뒷주머니였다. 메고 있을 때 왼손을 뻗으면 삐죽 튀어나온 만년필 뚜껑이 가장 먼저 만져졌는데 오늘은 달랐다. 익숙한 지점에서는 다른 질감의 허전함만 느껴졌다. 불길함에 가방의 구멍이란 구멍을 다 뒤졌지만 없었다.  

    

  사소한 상실의 충격은 컸다. 만년필로 글을 쓸 때의 질감 같은 게 있었다. 시간에 글씨를 사각사각 새기는 느낌이 그 순간에 집중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마찰열처럼, 그 열기는 수없이 비벼 없던 불씨를 만들어 내기도 했고, 살갗이 우연히 스칠 때 갑작스럽게 뜨거워지는 어떤 느낌처럼 식어 있던 마음을 데우기도 했다.   

   

  오늘의 카페는 고요했다. 배경음처럼 깔아 두는 찬송가 연주가 끊어지고 손님이 자리를 비우고 도로 위의 차들마저 뜸해질 시간이 되면 간혹 바람에 떠는 종소리에도 고개를 홱 돌리게 될 만큼 카페는 더 고요해지곤 했다. 라떼가 낮잠을 자다가 부르르 떨며 잠꼬대를 하거나 기지개를 켜며 하품을 찢어지게 하는 것만으로도 덜컹거릴 만큼 아슬아슬한 고요였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있으니 벽 너머에서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려왔다.      

  날이 서늘해서 그런지 국밥집 차량이 줄을 이었다. 그들은 낮달처럼 서먹하다가도 옆 사람과 이내 한두 마디씩 주고받았다. 그런 행위가 마치 추위라도 누그러트려 줄 것처럼 그들은 국밥이 나올 때까지의 어색함을 그런 식으로 버텼다. 국밥이 테이블에 놓이면 후후 부는 입김에 수증기가 허리를 트는 게 보였다. 그들 앞에는 가을이 보글보글 끓고 있을까.     


  어제는 오랜만에 로스팅을 했다. 오늘은 한산한 김에 더치를 내리고 드립백을 눌렀다. 연휴 동안 넋 놓고 있었더니 원두가 한 통도 남아있지 않았다. 규상은 어젯밤 체육대회에서 쓸 에스프레소 스무 잔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잠깐 아찔했지만 다행이었다. 낮에 서둘러 해두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향은에게 줄 더치가 부족했던 게 아쉬웠다. 연휴 동안 더치 기구는 비어 있었다. 그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특별히 장삿속을 내비치지 않는 이 카페는 실상 친교 공간으로서의 가치와 먹을만한 커피를 좋은 이들에게 저렴히 제공하는 목적이 99%였다. 나는 그 목적만큼은 지켜내고 싶었다. 그건 나를 위해서이기도 했다. 그것마저 무너진다면 나부터가 시간의 무게에 짓눌리고 말 것 같았다.       


  오늘 아침, 빈 원두 통을 세어보았다. 네 통 정도가 비어 있었다. 그럼 4킬로그램 정도가 남은 셈이다. 넉넉한 양은 아니다. 언젠가 이런 것들을 고민하다가 스스로 지친 적이 있었다. 몇 병 남아있지 않다고, 이제쯤 해둬야 하지 않겠냐고 걱정스레 물으면 규상은 마치 자신은 이곳과 상관없는 사람인 것처럼 다른 일정들을 손가락으로 꼽았다. 그의 부탁으로 맡게 된 카페였다. 뭔가 잘못돼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규상은 먼 곳을 보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옆에 있는 이가 어떤 마음인지 헤아리는 역량이 부족했다. 그런 일들을 받아들이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마음에서 열정과 애정을 덜어내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다. 내가 필요 이상으로 신경을 썼던 건 아닐까. 하지 않아도 될 걱정을 혼자만 해온 건 아닐까. 그런 자조와 낙담들이 하나둘씩 고드름처럼 툭툭 떨어질 때마다 마음은 차갑게 패어갔다. 마음이 편해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버거워졌다. 나는 그런 식으로는 살 수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원래부터 네가 그랬나? 속에서 내가 고개를 저었다. 나야말로 미래 같은 건 안중에도 없는 사람이었지. 삶이 한 차례 난파됐던 사람이었지.      


  밖이 조용할수록 속은 시끄러워진다는 게 이런 말일까. 글 쓰는 일이 가진 하나의 장점이라면 시끄러운 속내를 받아 쓸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것. 필감은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지만. 노트 위에 갱지 한 장을 덮고 쓰는 느낌이랄까. 꾹꾹 눌러써야 자국이 남는 투명한 글씨를 다시 한번 해석하며 덧쓰는 느낌이랄까.     


 시월 들어 날이 차가워졌다. 일단 창문을 열고 달리기가 힘들어졌다. 9월까지만 해도 창문을 활짝 열고 달리는 게 즐거웠다. 바람이 더운 속을 식혀주는 것도 좋았고 국제대교를 지날 때면 귀청이 떨어질 듯 강풍이 몰아치는 것도 좋았다. 그런데 어제는 나도 모르게 창문을 올리고 말았다. 다음으로 잘 때 이불을 꼭 덮게 됐다. 지난주에는 이불을 안고 자거나 배, 가슴, 얼굴 정도만 살짝 걸쳐도 충분한 수준이었는데 이제는 발끝까지 덮지 않으면 한기에 잠에서 깬다. 몸이 자연스레 안으로 굽고 어깨까지 이불을 뒤집어쓰게 됐다. 아내의 팔에 우연히 손이 닿았는데 놀랄 정도로 차가웠다. 아내는 원래도 팔이 찬 편이었지만 지난달이 정수기 물 정도였다면 어제는 냉장고에서 갓 꺼낸 물처럼 시리고 아렸다. 나는 아내의 팔을 꼭 잡아주었다. 몸에 열이 많다는 것이 새삼 쓸모를 찾은 느낌이었다. 아직 보일러를 땔 정도는 아니라는 게 위안이라면 위안일까. 정부가 위안이 되지 않는 올겨울은 유난히 추울 것 같으니 대비를 단단히 해야 할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복장도 변했다. 반바지에서 긴 청바지로 바뀌었고 양말을 빼먹지 않고 신게 됐다. 아직은 샌들을 신지만 더 추워지면 때때로 운동화를 신어야 할지도 모른다.      


  로스팅을 할 때도 날씨는 분명한 영향을 미친다. 일단은 노동 강도가 그렇다. 여름에 로스팅을 하면 비지땀이 흐른다. 체력이 두 배로 들고 끈끈한 몸을 이끌다 보면 금세 지친다. 그런데 어제는 선풍기 바람도 아렸다. 낮인데도 춥지도 덥지도 않을 만큼 딱 적당한 날씨였다. 


  날씨 변화를 가감하는 건 로스팅의 중요한 요소다. 로스팅실이 외부와 구분돼 있지 않아 날이 차가워지면 예열은 더뎌지고 냉각은 빨라진다. 프로파일에도 당연히 변화가 생긴다. 투입에서 배출까지 일이 분 정도가 더 걸린다. 소리를 함께 들어야 마음이 놓여서 로스팅실 문을 열어두는 편인데 이제는 그럴 수 없었다. 한층 더 긴장을 안고 작업해야 했다. 시간을 체크하고 중간중간에 문을 열어보며 가스가 떨어지거나 드럼이 멈추거나 원두가 걸린 곳이 없는지 살펴야 아까운 생두를 버리는 일을 줄일 수 있었다.    

   

  성효와 효영이 다녀갔다. 둘 다 냉커피를 주문했다. 그들 부부는 텃밭을 일구다 올 때도, 업장을 둘러보다 올 때도, 부동산 매물을 소개하다가 올 때도 있었다. 효영은 하루 두세 번씩 와서 쉬다 가곤 했다. 활동적인 일에 종사하면 추위가 더디 오는가 보다 하고 생각했다. 단지 내가 추위건 더위건 잘 타는 체질이어서 그런지도 모르지만. 


  나는 아침부터 마시던 아메리카노에 온수를 채웠다. 이제는 금세 식는 게 체감될 정도다. 우체부 아저씨도 오랜만에 원두를 사갔다. 피부가 구릿빛인 우체부 아저씨는 오토바이 한 대로 팽성 일대를 종횡무진 누빈다. 빈 병을 두러 교회로 올라가는 동안 빨간 우체통을 멘 오토바이와 두 번이나 마주쳤다. 나는 은행을 보는 척했다. 아는 사람을 멀리서 볼 때 나는 늘 그렇게 딴청을 부린다. 이상하게도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되고 만다.  

   

  백 미터 남짓한 길에는 수령이 제법 돼 보이는 은행나무가 두 그루 심겨 있다. 그 아래 빼곡하게 은행 열매가 떨어져 있었다. 이미 밟히고 으깨어져 노란 즙과 함께 말라가는 것도, 겉이 쪼글 해진 채로 발에 채는 것도, 아직은 탱탱해서 말리면 쓸만해 보이는 것도 있었다. 길을 걷는데 일전에 규상과 함께 이 길을 걷던 기억이 났다. 나는 오늘처럼 은행 열매를 보고 걸으며 하양 살던 시절 이야기를 했다. 그때 은행을 한 포대 주워서 이주쯤 삭힌 뒤 빨간 대야에 부어 밟아 터트리고 흐르는 물에 껍질을 헹궈 내었던 적이 있다고. 코를 찌르는 냄새가 역했지만 잘 말린 은행을 추운 겨울날 전자레인지에 10초쯤 돌려먹으면 참 고소하고 쫄깃했다고. 그러자 규상은 잠시 숨을 참다가 목회를 시작하고부터는 절대 은행 같은 건 줍지 않는다고 했다. 그거 몇 알 주우면 동네 사람들이 목사가 은행 다 주워갔다며 항의가 들어온다고. 놔둬도 줍지도 않을 거면서. 그는 생전 처음 보는 심각한 얼굴로 그 말을 했다. 나는 안타까웠다. 시골에서 개척하는 목회자의 설움 때문이라기보다는 그가 먹는 일에 얼마나 진심인지를 알기 때문이었다. 규상은 지금처럼 굴러다니며 먹지도 못할 상태로 부패하는 은행을 보며 얼마나 아쉬워했을까. 그리고 속으로 분노했을까. 그런 생각들을 하다 보니 규상의 뒷모습이 유난히 풀 죽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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