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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전우형 Sep 29. 2023

한 차례의 '부산'이 지난 후

에세이

  규상과 은재는 부산(釜山)으로 떠났다. 그렇게 한 차례의 부산이 지난 후 카페는 다시 정적이 찾아왔다. 나는 저녁을 기다려 청주로 향할 예정이었다. 아내가 수업을 마친 후 집으로 가 아이들을 데리고 카페로 오기로 했다. 잠시 통화하는데 목소리가 지쳐 보였다. 여섯 시쯤부터는 허리가 묵직해져서 성경 필사를 했다. 집중하는 동안 통증은 잦아들었고 아내와 준이가 밖에서 문을 두드렸다. 원하는 음료 몇 가지를 타서 차에 올랐다.     

  정체는 심하지 않았다. 평소보다 이삼십 분쯤 더 걸려 청주에 도착했을 때는 밤 아홉 시가 조금 지나 있었다. 여선이 새로 이사한 집은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둔 단층 주택이었다. 차폭과 맞먹을 정도로 좁은 길이어서 너른 길가에 차를 대고 걸어가야 했다. 차 댈 곳을 미리 봐두었으니 그리로 오라고 했다. 원형 로터리를 도는데 불 꺼진 가게 앞에서 누군가가 손을 흔드는 것이 보였다. 삼계탕집인데 연휴 때 장사를 안 한다고 했다. 유리문에는 ‘추석(9.28.-10.1.) 쉽니다’라고 큼지막하게 붙어 있었다. 


 차를 세우고 개인 짐 몇 가지를 내려 골목으로 향했다. 아이들이 크면서 확실히 짐이 준 게 체감됐다. 젖병을 떼면서, 이유식을 졸업하면서, 걸을 수 있게 되면서, 기저귀를 떼면서, 짐가방은 하나씩 줄었고, 이제 아이들이 멘 에코백, 백팩, 쇼핑백은 포터블 게임기, 게임 타이틀, 큐브, 한자 교과서와 공책, 드로잉 노트, 그리고 각자의 휴대 전화 같은 것들로 채워졌다.      


  허리가 불편한 나를 대신해서 아내가 옷 가방을 드는 것을 보고 나는 채어가듯 그것을 뺏어 어깨에 메었다. 가로등이 하나뿐이라 양쪽으로 담장이 길게 늘어선 골목은 더욱 협소해 보였다. 지은 지 제법 돼 보이는 단층 건물들은 스무 채쯤 될 것 같았다. 고요한 가운데 발자국들이 자갈을 쓰는 소리만 들렸다. 저쪽에서 실루엣 하나가 서성이는 게 보였다. 여선이었다. 막내가 가장 먼저 달려가 안겼다.      


  여선과의 유대는 첫째가 남다를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린이는 어릴 때부터 여선이 도맡아 키우다시피 했다. 아내가 부산병원에 복직하면서 여선은 2년 가까이 린이를 돌봤다. 누군가의 돌봄이 절실하던 시기에 여선은 우리 가족에게 큰 힘이 되어 주었다. 나는 마산서 소형 잠수정을 몰고 있었다. 주말이면 집에 갔지만 그 시절 린이에게 부모란 여선의 다른 이름이었다. 린이는 중학생이 되며 감정 표현이 확연히 줄었다. 유년기를 떨어져 지낸 나보다도 그런 변화는 여선에게 더욱 직접적이었을 것이다.     

 

  여선은 급매물로 나온 단층 주택을 매입해 리모델링했다. 매입에 대략 팔천, 리모델링에 대략 사천이 들었다고 했다. 공사는 두 달에 걸쳐 진행됐는데 그 일로 여선은 실장과 자주 다퉜고 결혼한 딸에게 전화해 하소연하는 일도 잦았다. 실장의 소개로 지인에게 리모델링을 맡겼는데 진행 과정에서 군데군데 석연치 않은 곳이 드러났지만 실장의 오랜 친구다 보니 클레임을 걸기도 애매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직접 가서 본 결과물은 쾌적하고 편안하고 단정했다. 여선은 두터운 벽 삼분의 일 지점쯤을 가리키며 원래 벽 두께가 이 정도밖에 안 됐어,라고 손가락을 벌려 보여줬다. 단열과 방습에 투자했다고 강조했는데 여름에 에어컨을 틀지 않아도 될 정도로 실내는 서늘해서 좋다고도 했다. 방 하나를 터서 거실로 꾸몄고 부엌과 벽을 경계로 한쪽에 길쭉한 공간이 만들어졌다. 부엌 왼쪽으로 안방 하나와 화장실 오른쪽으로 드레스룸을 겸한 쪽방이 있었다. 한쪽 벽면을 채운 책장에는 우리 집에도 없는 린이 어릴 적 사진이 빼곡했다. 나는 액자를 보고 린이를 보고, 또 액자를 보고 린이를 보고 했다. 린이는 얼굴이 빨개지며 돌아섰다.     


  상 하나를 펼치고 둘러앉았다. 부엌 식탁은 이인용이라 일곱 명이 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새삼 대가족이라는 사실이 숫자로 체감됐다. 식탁 가운데에는 왕천파닭이 놓였다. 늦은 시간이긴 했지만 아내가 출발하면서부터 독촉했던지라 여선이 미리 주문해 둔 것이라고 했다. 청주에서는 제법 유명한 치킨 브랜드인데 다른 지방에서는 접할 길이 없었다. 아내와 한창 교제하던 2000년 초반에도 청주를 찾으면 지금처럼 여선이 우리가 도착하는 시간에 맞춰 준비해 준 기억이 났다. 나는 결혼 한참 전부터 사위 대접을 톡톡히 받은 셈이다.       


  텔레비전에서는 항저우 아시안게임 중계가 한창이었다. 축구 16강전 경기였는데 한국이 키르기스스탄에 2:1로 앞서고 있었다. 조별 예선부터 큰 점수 차로 이긴 소식을 자주 접했던 터라 오히려 2:1이라는 스코어가 어색하게 느껴졌다. 한 점 차 승부는 휘슬이 울릴 때까지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 한 골이면 승부가 뒤집힐 수 있기 때문에 상대도 적극적으로 몰아붙인다. 그 적극성이 때로 의외의 결과를 만들기도 한다. 스포츠의 묘미는 그런 데서 비롯되는지도 몰랐다.     


  나는 옷가지를 챙겨 욕실로 들어갔다. 카페에서 곧장 오는 길이라 씻고 싶은 욕구가 굴뚝같았다. 온종일 무언가를 만들고 치우고 정리하다 보면 몸에 배는 끈끈한 기운들이 있었다. 그것들을 부지런히 닦아내지 않으면 삶이 녹슨다. 이제 씻는 행위는 내게 단지 위생적 측면이나 하루의 마무리라는 의미를 넘어 종교적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매번 씻겨나가는 것은 내 고루한 자아였다. 초월적 존재에 대한 감각은 기독교에 입문하기 전부터 있었다. 형(形) 이상에 대한 관심은 때로 집착에 가까워서 현실에 기반한 결정들에 비판적일 때가 많았다. 그런 이상주의적 성격이 편하던 관계를 어렵게 만들었던 적도 있었다. 나는 용서를 구하는 대신 스스로 떳떳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 자아를 허물어트리는 일이 가장 큰 벽이었는지도 모른다.      


  따뜻한 물이 쏟아지는 느낌이 좋았다. 아침저녁으로 쌀쌀해진 날씨 탓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참 좋은 세상에 살고 있지 않은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내가 사관생도 시절 중국 여행을 다녀와 해준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게 벌써 18년 전 일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수질에 관한 것이었는데 오성급 호텔에 묵어도 석회 낀 물이 나와 생수를 별도로 구입해 마시지 않으면 배탈이 난다는 것이었다. 그 물로 씻으면 온몸이 미끈거린다는 말을 들었을 때 처음에는 나를 놀리는 건가 했고 시간이 지난 후에는 그게 사실이어서 더 놀랐던 기억이 있다.      

  해군 시절 장기 항해를 떠나면 청수가 고갈되는 일이 잦았다. 조수기를 돌리기는 하지만 용량이 적어서 제한 급수가 필수적이었다. 바닷물은 역삼투 방식의 조수기를 거치며 염분이 제거되지만 우리가 아는 일반적인 수돗물과는 달랐다. 식수는 정수 필터를 한 번 더 거치지만 씻는 물의 경우 몸을 아무리 박박 닦아도 비누가 덜 닦인 것 같은 미끈거림이 사라지지 않았다. 물론 그마저도 불가능할 때가 잦았기에 수질을 두고 불만을 가질 형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내의 말을 떠올리며 지금 따뜻한 물을 머리로 맞고 있자 당시의 상황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물론 반추의 직접적인 원인은 어두운 계열의 무광 타일로 무장한 말끔한 욕실 분위기였을지도 모르지만. 훗날 집을 새로 꾸민다면 이런 분위기면 좋을 것 같았다.      


  샤워를 마치는 사이 스코어는 5:1이 돼 있었다. 한국 축구 수준이 새삼 놀라웠다. 아시아에서 일본이나 중동 몇 개국을 제외하면 적수가 드물긴 했지만 큰 점수 차로 연달아 승리를 거두는 건 어떤 터닝 포인트를 지났음을 시사한다. 패스를 풀어나가는 능력이나 수비의 단단함도 좋았지만 골 결정력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골대 앞에서 허공으로 찬스를 날린다거나 어정쩡한 슛으로 상대 골키퍼 품에 볼을 헌납하는 일이 크게 줄었다. 8강전 상대는 중국으로 정해졌다. 우레이를 손흥민과 비교하여 빈축을 사거나 공공연하게 한국과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려는 그 중국이다. 정신 승리를 향한 열정에는 경의를 보내지만 라이벌 자격은 역시 입보다는 실력으로 증명했으면 한다. 기회는 지금까지도 차고 넘친 걸로 안다.      


  아이들은 자리를 펴고 누웠다. 벌써 자정이 훌쩍 지났다. 다섯이 눕기에는 비좁아 나는 온찜질기를 펴고 소파에 몸을 뉘었다. 허리가 아프고부터는 어지간하면 눕지 않는 버릇이 생겼다. 긴장이 풀려서인지 눕는 자세가 허리에 안 좋아서인지 한번 누우면 다시 일어나기가 쉽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날카로운 통증이 급격히 고개를 드는 게 느껴진다. 근이완제를 먹었으니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 아내의 코 고는 소리가 들렸다. 입천장이 안쪽부터 부은 느낌이 든다고 하는데 확실히 그런 모양이었다. 연휴로 몰린 강의를 충당하려면 필연적으로 목에 많은 부하가 걸린다. 환절기가 겹쳐 감기와의 긴 동행을 감수해야 할 모양이다. 면역이 간당간당할 시기라 이미 지난달부터 병원 가는 횟수가 큰 폭으로 늘었다. 어쩌면 나도 허리만 아픈 게 아닐지도 모르지. 그런 생각을 하며 누워 있는데 좀처럼 잠이 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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