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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전우형 Sep 26. 2023

간단하지만 시간은 제법 드는 일

에세이

  새벽부터 비가 내렸다. 어쩌면 그전부터 내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뒷배란다 창문에 물방울이 맺혔다. 해는 없었다. 허리가 아팠다. 밤새 끙끙대다 진통소염제와 근이완제를 먹고 잠이 들었다. 아내는 안타까워하면서도 웃음을 참지 못했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몇 번에 걸쳐 몸을 나누어 뒤집는 모습이 어디 모자란 사람처럼 보였을 것이다. 옆에서 자는 모카가 위안이 됐다. 골골거리는 소리가 진통제처럼 통증을 잠시 잊게 해 주었다. 그 아이는 졸릴 때만 물지 않는다. 그것도 고마웠다.

   

  통증이 심해 헛웃음이 나왔다. 아내는 자기도 웃으면서 나더러 왜 자꾸 웃냐고 했다. 눈물이 맺혔다. 웃을 때마다 몸이 흔들렸다. 울고 싶은데 웃음만 나왔다. 그날따라 그랬다. 목이 타서 부엌으로 갔다. 벽을 짚고 식탁을 짚고 냉장고를 짚고 선반을 짚었다. 짚을 때마다 몸이 파르르 떨렸다. 그때마다 웃음이 나왔다. 미친 사람처럼 웃었다. 서늘한 기운에 몸을 떨며 나는 그렇게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고통은 순간이다. 나는 그렇게 되뇌었다. 

  고통은 순간이다. 그리고 순간은 영원이다. 그렇게 덧붙이는 밤을 보냈다.      


  시간은 오락가락했다. 다섯 번을 깨고도 이어지는 꿈처럼 나는 눈을 감았다 뜰 때마다 하나의 밤을 걸었다. 징그럽다가 경이롭고, 죽고 싶다가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하나의 밤은 길었다. 하룻강아지 중에도 분명 철든 강아지는 있을 것이다.     


  아홉 시 이십 분에 눈을 떴다. 아내가 챙겨둔 떡만둣국과 알약 두 알을 먹고 뜨거운 물로 샤워를 했다. 언뜻 아내와 인사를 나눈 기억이 났다. 누운 채로 나는 고개만 뒤로 젖혀 문틈으로 손을 흔드는 아내를 봤다. 오늘은 8시간 내리 강의가 있는 날이었다. 두 시수 짜리 한 과목을 4개 반 연속으로 하는 강의라고 했다. 8시간 수업을 듣는 일도 머리에 쥐가 날 텐데 하는 건 얼마나 더 힘들까. 타인의 고통을 가늠하는 건 어렵지만 가치 있는 일이다. 중요하고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나의 고통은 별도의 수고를 기울이지 않아도 자연스레 안다. 모르고 싶어도 알게끔 만든다.      


  카페로 향하는데 속도를 낼 수 없었다. 방지턱이 많은 길을 지나야 하는데 차체가 덜컹거릴 때마다 허리에서 불로 지지는듯한 통증이 일었다. 발끝까지 힘이 싣기 어려웠다. 차분히 바라보던 논밭의 풍경도 오늘따라 멀게 느껴졌다. 비는 멈추지 않았고 나도 멈출 수 없었다. 멈추지 않는 한 고통은 지속된다. 결국 지나가야만 한다.     


  카페에는 규상이 있었다. 규상은 추석 선물로 인근 목회자들과 나눌 김 선물 세트와 더치 10병을 차에 실었다. 그가 떠나고 나는 쇼케이스에 두 병이 남은 것을 확인했다. 더치커피를 내려야 했다. 은재가 부산 가는 길에 10병이 필요하다고 미리 부탁한 게 떠올랐다. 넉넉할 줄 알았는데 쓰임을 찾으니 사라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원두 200그램을 그라인더로 갈아 여과지를 깐 용기에 담고 누른다. 그 위에 물과 얼음을 채운 용기를 걸어 한 방울씩 떨어트리면 끝. 설명은 간단하지만 시간은 제법 든다. 이전에 내린 용기를 세척 건조해 두어서 다행히 작업은 수월했다. 그게 안 돼 있으면 그 작업부터 선행해야 한다. 여름을 지나며 곰팡이가 생기는 일이 잦아 세척에 더 신경이 쓰게 됐다. 그러는 사이 한 시간이 지났다. 이제 한 번씩 들여다보며 물이 떨어지는 속도를 균일하게 맞춰주면 된다. 잘 되면 내일 이맘때 6리터의 새로운 더치커피를 맞이할 수 있다.     


  작업에 몰두하는 동안은 통증이 멀어진다. 움직이다 가끔 몸을 멈칫하는 순간을 제외하면 견딜만하다. 테이블에 놓은 샤인머스켓을 한 알 머금어본다. 달콤함 역시 순간이다. 단골손님이 앉은 테이블에 넌지시 올려두었다. 커피 손님 몇 분이 오갔다. 엊그제 샤워 스크린과 부싱을 교체했다. 추출 바를 걸고 빼는 것이 아직은 빡빡하다. 걸고 뺄 때마다 나도 모르게 이를 악물게 된다. 아무렇지 않게 하던 일들이 오늘따라 버겁다.      


  약 기운이 도는지 아침보다 낫다. 아침은 지난밤 보다 나았다. 그러자 버겁다는 말이 축복처럼 여겨졌다. 몸이 뜨거워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뼈가 먼저 달궈지고 그 열기가 근육과 피부를 서서히 익히는 것 같다. 나는 밖을 본다. 이런 때는 밖을 보고 있으면 괜찮아진다. 괜찮지 않아도 조금 나아진다. 그냥 그렇게 생각하기로 한다.      


  커피잔에 파리 두 마리가 빠졌다. 한 마리는 이미 죽었고 다른 한 마리는 날개를 파닥거리고 있다. 한입 먹고 내버려 둔 것이었는데. 나는 아쉬움을 삼키며 커피를 버렸다. 설거지를 하는데 두런두런 단골손님들의 대화가 들려온다. 그들의 직업은 (아마도) 생활 지원사이다. 대화의 주된 재료는 그들이 담당하는 진상 어르신 아무개다. 오가는 말을 듣다 보면 썩 좋은 직업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저 세분이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하고 있거나. 그런데 썩 좋은 직업이라는 게 있나? 적성에 맞는 일이라는 게 있나? 살다 보면 갖게 되는 게 직업이고 하다 보면 그게 적성이 되는 거지.      


  이따금 가슴이 뜨거워진다. 나도 모르게 허리에 손을 대고 숨을 참는다. 콧김이 뜨겁다. 시간을 반복해서 확인한다. 그런다고 나아질 것도 없는데. 아내에게서 안부를 묻는 전화가 왔다. 나는 점심은 먹고 일하냐고 묻는다. 그래도 카페는 갔네? 하고 아내가 되묻는다. 실없이 몇 마디 나누다 전화를 끊는다. 라떼와 치즈가 잠든 모습을 본다. 은재가 양말목으로 커버를 만들어 씌워둔 의자 위에 둘이 포개고 잔다. 만들고 보니 마인크래프트로 만든 의자처럼 징그럽다고 했다. 나는 그런가 했다. 뭐든 잘 만드는 건 부럽다. 나는 손재주가 없어서 더 그렇다.      


  어젯밤은 라떼와 치즈에게도 길었을 것이다. 둘이라서 조금은 나았을까. 둘이라서 좋았던 시기가 내게도 있었다. 현재는 둘이 다섯이 됐고 셈하는 방식에 따라 일곱이기도 하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단 한 번만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디로 돌아가면 좋을까. 이 질문의 답은 수시로 변한다. 지금은... 허리가 아프기 전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잠깐이라도 가슴이 뜨겁고 몸이 달아오르는 이유가 다른 것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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