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생들의 노력은 인정하지만...

국가 인프라에 대한 교육이 필요해보인다.

by 작가 전우형

경쟁구도에 있어 상대방을 생각하는 것은 죄악시된다. 경쟁상대를 공감하고 이해하고 배려하기 시작하면 경쟁의 동력을 잃어버린다. 경쟁상대는 내가 넘어야 할 벽이며 이겨내야 할 적군이다. 아직 신체적, 정신적으로 완성되지 않은 아이들에게 경쟁을 강요하는 입시지상주의 문화는 아이들의 공감능력을 말살시킬 수밖에 없다. 경쟁은 친구를 적으로 둔갑시킨다. 공감은 상대방의 입장에서 상대에게 왜 그런 행동이나 생각, 일 등이 일어났는지 생각해보고, 그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능력이다. 아직 정서적으로 완성되지 않은 아이들이 과도한 경쟁으로 내몰리면서 일어나는 공감능력의 저하는, 다른 사람의 입장이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성인으로 성장하게 한다. 학생부 종합전형에 채울 봉사활동 몇 시간을 한다고 해서 인성이 발달되고 사회성이 배양되지 않는다.


공부에 뛰어난 사람들만 모여 공부에만 매진하는 풍토 또한 공감능력 형성을 방해한다. 이해력이 뛰어난 사람들 사이에 묻힌 사람은 모든 사람들에게 그것을 당연시한다. 자신들이 터득한 학문적 깊이를 바탕으로 그들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을 무시한다. 자신이 속한 집단 이외의 사람들을 공감하지 못하며, 그들이 자신들과 다른 의견을 말하면, 당신들이 몰라서 그렇다고 부정하고 가르치려 든다. 그들이 영원히 공부에 뛰어난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간다면 별 문제없겠지만, 그들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학생 시절을 끝내고 나면 공부에 뛰어나지 않은 사람들, 엄밀히 말해 공부 외에 다른 분야에 장점을 지닌 사람들이 더 많은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 상위 1%만 갈 수 있는 학교, 학과가 있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이번에 의협과 대전협, 그리고 의대생들까지, 그들이 국민들을 설득하는데 실패하는 과정을 통해 이와 같은 공감능력의 결여를 엿볼 수 있었다. 그들은 진료거부의 과정에서 국민정서는 전혀 읽을 줄 몰랐다. 그들의 홍보물들과 구사하는 언어, 보이는 태도들은 오히려 국민들의 반감을 일으켰고, 그들의 입장을 이해해보려던 사람들까지 돌아서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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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위주의 교육과 무한경쟁 문화가 한국의 경제성장과 발전에 기여했다는 사실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 기본적으로 똑똑하고 이해력이 높다는 것도 인정한다. 공부머리가 좋다고 해서 인성이 떨어진다는 편견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모두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회사 채용 등에서 학벌을 중요시했던 이유가 학벌이 좋은 사람들을 고용해서 쓰면 일머리도 좋고 성과도 낸다는 인식에서 왔다는 것도 안다. 그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다만 관점의 전환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 한국인들의 치열한 경쟁의식이 어디에서 왔을까? 그 뿌리는 입시경쟁이다. 한국인들은 너무 어린 시절부터 과도한 경쟁에 내몰린다. 경쟁이 단지 자신의 능력을 극대화하는 것에서 그치면 다행이지만, 경쟁심이 시기심으로 이어져 내가 못 가진 것을 상대방도 갖지 못하게 방해할 정도가 되면 커다란 사회적 문제로 발전한다. 내가 오르지 못한 곳은 다른 사람도 올라가서는 안된다는 마음. 이런 마음은 기득권이 더 이상의 기득권을 허락하지 않고 이익을 독점하려 하는 행태, 유명인의 잘못이나 취향에 지나치게 날 선 반응으로 나타나는 공격성, 정치권에 남발하는 과도한 흑색선전, 누군가를 망가트리거나 제거하기 위해 좌표를 찍어 우르르 몰려가는 언론보도와 검찰의 수사관행 등으로 나타난다. 이런 것들이 한국의 높은 교육열과 입시경쟁에 비해 노벨상 수상자와 같이 어떤 분야의 기준을 세우거나 세계적 정점에 도달하는 비율이 극히 낮거나 아예 없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이른 나이에 시작하는 입시경쟁으로 말미암아 어린아이들의 교육 수준은 높지만 그 학구열은 입시가 끝나면 함께 땅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이 현실이다. 입시와 취업이 목적이었던 공부는 그 단기 목표를 달성하고 나면 동력을 잃어버린다. 돈과 성공이 목표였던 사람 역시 돈을 벌고 나면 더 이상 공부에 매진할 이유가 없어진다. 이러한 교육풍토는 나라의 발전뿐 아니라 개인의 성장과 삶의 행복, 인간 고유의 가치 존중 등에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개인적 사견이다.




단지 대학을 가기 위해, 고등학교 3년의 기간을, 또는 조기교육이라는 명목 하에, 웃으며 행복과 재미를 느끼며 성장해도 부족할 6년에서 12년이라는 소중한 시간을, 인생의 암흑기처럼 진통제와 커피로 도배하며 보내도록 하는 과도한 입시경쟁은 사라져야 한다. 성장에 꼭 필요한 잠을 포기하게 만들고, 책상 앞에서 교과서와 씨름하는 것을 어린 학생들에게 당연한 본분으로 강요하는 입시 시스템을 필요악으로 바라보는 관점에도 동의하기 어렵다.


이번 의대생 동맹휴학, 국시 거부 등을 바라보며 입시제도에 대한 고민을 다시 꺼내어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너무나 오랜 시간을 '이미' 공을 들여왔고 '입시지상주의'에 완벽히 젖어들고 순종해왔다. 의대를 졸업한 의사 선배들의 삶을 바라보며 자신들 역시 당연히 그런 삶을 누릴 것이라 예상하고 의대 진학 이전부터 수년에서 십수 년을 교과서만 바라보며 좁은 입시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해왔을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 의사가 되기 위한 또 다른 통로가 생기는 것, 추가적인 경쟁자가 생기는 것이 반가울 리 없다. 자신들이 앞으로 살아갈 철옹성 내에 새로운 경쟁자가 등장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


의사가 되기 위해 의대생이 되기 이전부터 과도한 경쟁에 뛰어들어야 하는 현실은 참으로 안타깝게 생각한다. 하지만 그 노력을 근거로 하여, 의대생 시절부터 이미 선택받은 사람이라는 의식을 갖는 것에 동의하지는 않는다. 의사가 되기 위한 문은 널리 열려 있어야 한다. 의과대학에 진학하는 것 자체가 의사가 이미 된 것처럼 여겨지는 문화에 나는 반대한다. 의사자격은 의사면허 취득을 결정하는 국가시험을 통해 결정되어야 한다. 그런데 마치 그것이 이미 의대라는 좁은 관문을 통과하는 시점에 기정 사실화된 것처럼 여기는 인식이 의대생들에게 존재하는 것 같다. 90%가 넘는 높은 의사 국가고시 합격률이 그러한 인식을 강화시켜왔을 거라 생각한다. 이런 인식이 아직 의사면허도 취득하지 않은 의대생들이 국시 거부에 나선 배경일 것이다.


우수한 인재들을 거르고 걸러 선발했다는 이유만으로 의대생이 의사가 될 요건이 충족되지는 않는다. 수능 과목에는 의사가 되기 위한 공부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의사로서 요구되는 자질은 대학에 진학한 이후 확인하면 된다. 의대 6년의 기간 동안 공부해야 할 양이 방대하다는 말은 익히 들었다. 하지만 공부의 양이 많기 때문에 입시 상위의 인재들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어떤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기 위해서는 인생의 황혼기까지 꾸준히 그 길에 매진할 수 있는 동기가 필요하다. 의사든, 여타의 다른 영역이든, 전문가가 되기 위한 자질은 해당 영역의 공부를 오래 지속할 수 있는 사람에게 있으며, 그 지속성의 원천은 해당 학문 또는 영역에 대한 흥미와 재미, 목적의식에서 온다. 즉 사람을 살리는 일, 생명을 구하는 일에 관심과 목적의식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의사가 될 자질을 갖춘 것이다. 의대 교육 과정과 국시의 관문을 통과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도태되면 된다.


의사가 되길 원하는 사람이 수능 또는 입시의 여타 과정에서 상위 1%여야만 할 이유는 없다. 어느 분야의 전문가가 될 가능성이 더 높은 사람은 입시에 뛰어난 사람보다, 끊임없이 관련 분야를 파고드는 사람이다. 입시 과열의 문제점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입시가 지상과제가 됨으로써 발생하는 사전 준비 기간이 오히려 아이들의 불행을 부추긴다. 한국의 아이들이 자살률과 우울증, 자살충동이 높은 것은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입시가 필수라고 여기는 것도 한국의 오래된 고정관념이다. 대학 입시가 존재하지 않거나 최소 수준으로, 고등학교 졸업시험의 개념으로 보는 나라도 많다. 고등교육의 일정 수준만 넘으면 얼마든지 원하는 대학과 원하는 과에 진학할 수 있는 나라도 있다. 그 나라들은 결코 우리나라보다 경제나 문화 등 모든 면에서 못하지 않다. 그들은 우리보다 행복하면서도 그들 중 누군가는 세계적 기준을 생산하고 해당분야의 정점으로 인정받는다. 입시가 필수적이라는 고정관념은 입시지상주의에 길들여진 한국인들의 오래된 환상이다. 과열된 입시경쟁을 뚫고 올라선 사람들이 본래 직업적 의미와 목적을 잃고 물질의 노예가 되는 현상들이 이미 사회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검찰개혁에 반발하며 몸부림치는 검찰의 모습, 자신이 무엇을 믿는지도 모른 채 관심의 노예가 된 목회자, 자신들이 내던진 가치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사분오열되는 의사들. 나는 이런 사회적 현상의 뿌리 깊은 원인 중 입시지상주의로 대표되는 과도한 입시경쟁문화가 존재한다고 본다.




개인의 영역에 불과한 국가고시 응시를 거부하는 행위가 정부를 압박하고 원활한 의료환경에 영향을 미칠 정도가 된다는 것을 이번 사태를 통해 알았고, 한편으로는 참 안타까웠다. 코로나로 엄중한 시기에 의사들이 거부하면 진료 현장으로 돌려보내는 것조차 할 수 없는 정부가 안쓰러웠다. "먼 미래의 의사 4,000명을 얻으려다 당장 내년에 3,000명의 새로운 의사들을 잃게 될 것이다" 8월 말, 1차 합의가 무산되며 의협회장이 낭독했던 성명문의 내용을 보며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의대생들이 시험보지 않으면 당장 의료현장에 문제가 발생할 정도인데, 한국에 의사수는 절대 부족하지 않다는 그들의 주장에 더욱 동감할 수 없게 되었다. 이번 집단 진료거부 행동을 통해 의사들은, 국가가 일부 집단에 휘둘릴 수도 있다는 자각과 그것이 불러올 위험성을, 자신들이 직접 국민들에게 심어준 꼴이다.


전공의들의 집단 진료거부 당시 입장문에서 우리가 왜 공공재냐며, 교과서 사는데 한 푼 보태준 거 있냐며 성토하는 대목을 본 적이 있다. 의사면허를 취득할 정도로 입시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사람들이, 그토록 사회 인프라에 대한 인식이 없다는 점이 참 안타깝다. 굳이 의료법 몇 조를 가리키며 의사들의 공공재 논란에 뛰어들고 싶지도 않다. 다만 의료행위가 공공성이 얼마나 강한 영역인지 알고 있을 의사들이 내뱉은 말인지 내 귀를 의심하게 만들었던 대목이었다. 의사들만 지방에 간다고 해서 지방의 의료 수준이 높아지지 않는다며 충분한 시설을 갖춘 병원, 진단과 수술 등에 필요한 의료기기, 그것을 뒷받침할 의료인력, 그리고 다양한 케이스의 환자들까지, 그 모든 것들이 필요하다는 의사들의 의견은 익히 들었다. 그런 의사들도 자신들이 의사가 되기까지 국가 인프라가 어떤 역할을 해왔는가에 대해서는 자각은 없는 모양이다. 국가에서 의대 교육에 매년 엄청난 금액을 지원하는 것도, 국가에서 의대 정원을 엄격히 제한해 의사들의 수를 제도적으로 제한해 왔던 것도, 의사들의 평균임금이 일반 봉급자의 4배 이상 유지되는 것도. 이 모든 것들이 국가에서 공공성을 위해 의료산업을 유지하는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기에 가능하다는 생각은 안 하는 건지, 못하는 건지 알 수 없다.


의료가 국민의 목숨과 직결된 공공성이 높은 분야이기에 의료정책은 국가정책으로 추진되고, 사회보장사업의 일환으로 의료보험은 국민들이 강제 가입된다. 일부 사회적 약자 계층을 제외하면, 치료를 받던 받지 않던, 건강보험료는 내야만 한다. 그렇게 모인 건강보험기금 재원을 바탕으로 병원과 의사들에게 수가가 지급되고, 곧 그것이 자신들의 수입원이 된다. 국민이 없으면 의사도 없고, 국가가 없으면 의사도 없다. 의사들이 단독으로 국민의 생명을 증진시키고 국가의 의료서비스 질과 의료접근성을 향상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만이다. 그런 오만을, 13만 명의 의사 중 겨우 4,000명의 의사 정원을 늘린다고 해서 나라 의료시스템이 완전히 망가질 거라 주장하는 목소리에서 나는 여실히 느꼈다. 이번 사태처럼 의료인력이 집단행동을 하면 피해를 보는 것은 오롯이 국민이다. 그렇기에 국가에서 의료행위에 공백이 없도록 노력해야만 하고, 그 결과 현재 의사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권위와 처우가 유지되어 왔다는 것을 완벽히 무시하는 그들의 행태가 많은 국민들을 돌아서게 했다. 이런 현상을 만든 여러 가지 원인 중, 과도한 입시경쟁을 통한 의사의 엘리트 화가 한몫을 했을 거라 판단한다. 내가 잘나서 모든 것을 이루었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은 모든 공을 자신의 것으로 돌리기 마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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