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한해의 마지막이 이렇게 또 한 번 지나갑니다. 오늘은 음력 12월 29일입니다. 내일로 음력 1월 1일이 됩니다. 깊은숨을 내쉬며 지나온 한 해를 보내고 또 깊이 들이마시며 새해의 시작을 가슴 안쪽까지 불러들입니다. 교회력은 지난 12월에 새로 시작되었고 양력으로는 지난 1월, 그리고 내일 비로소 음력으로 새해를 맞이합니다. 날짜를 헤아리고 한해를 가늠하고 시간을 등분하여 인식하는 일은 그 자체로서는 의미 없는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시간은 나누어져 있지 않고 연속되어 흘러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혹은 저에게 '새해'라는 단어가 필요한 이유는 순간을 가늠하기 위함일 것입니다. 한해에서 다음 해로 넘어가는 순간. 어떠한 시간을 살아내었고 또 어떠한 시간을 살아내어야 한다는 자각. 삶의 단면을 돌아보며 어질러진 파편들을 정리하며 고통스러웠을, 혹은 안타까웠을, 충분하지 못했을, 어쩌면 돌이킬 수 없을 과거의 어떤 사건들을 이제 그곳에 두고 가기 위한, 분리와 애도와 결별의 절차. 아쉽지만 이제는 보내주어야 한다는 선언이자 수긍. 그것을 위한 문을 '새해'라는 단어 속에 담아 통과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을 받아 마땅할 것입니다. 새해,라는 복을. 시간은 그 자체로 선물이자 신의 섭리입니다. 우리는 매 순간 새롭게 시간을 선물 받습니다. 현재를 인식한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살아있음의 방증이기 때문입니다. 시간은 돌이킬 수 없고 한쪽으로만 흐르지만 차등이 없으며 주고받을 수 없습니다. 누군가에게 시간을 내어주는 방법은 그와 함께하는 것뿐입니다. 우리는 함께함으로써 시간이라는 귀한 선물을 내어주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함께하는 이들을 귀하게 여기십시오. 그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십시오. 그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곧 우리가 사랑이라 칭하는 그 무언가로 상대방에게 전해질 것입니다.
이상하게도, 귀한 것들은 수명이 짧습니다. 아끼는 사람과 있을 때 시간은 빨리 갑니다. 마음을 내어주기 때문입니다. 마음에는 시간이 내재되어 있어서 소중한 사람과 함께 있으면 내어준 마음만큼 시간이 더 빨리 흐릅니다. 그러니 시간이 더디 흐른다 느껴진다면 마음을 내어줄 사람을 찾으십시오. 하지만 우선, 마음을 내어줄 준비가 필요합니다. 그러려면 마음을 열고 그 속에 어떤 것이 들어있는지 헤아려보는 작업이 선행되어야겠지요. 새해를 맞이하는 오늘, 함께하는 이들을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지나온 한해중 얼마만큼의 시간을 함께했는지. 어떤 마음으로 그 시간들을 나누었는지. 그리하여 어떠한 방식으로 서로의 삶을 보듬고 살아내도록 도왔는지. 혹은 그것을 도리어 힘겹게 했는지. 하지만 지나온 시간이 어떤 색이었든, 어떤 무게감으로 남았든, 어떠한 촉감이었든, 이제 우리에게 남은 사실은 우리가 새해를 또 함께 살아낼 것이고 살아내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새해,라는 선물을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나눌 수 있길 소망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