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인사로 톺아보다
노을은 3개의 층위로 나뉜다. 가장 아래, 능선에 닿은 곳부터 노을은 붉어진다. 그 위로 저녁바다를 닮은 푸른 어스름이 얕은 담을 쌓고 아직 하늘의 넓은 공간은 파르스름한 낮의 기운이 일렁이고 있다. 하지만 이내, 능선이 붉게 타오르기 시작하면 마치 푸름을 연료 삼듯이 저녁바다는 밤바다를 닮은 군청으로 물들고, 낮에 가깝던 곳은 빛이 사라지며 어둠에 휩싸인다. 그 어둠마저 내려앉아 마지막까지 빛나던 붉은 선을 집어삼키면, 비로소 완연한 박명에 이른다. 마치 그렇게, 하루가 더디 더디 저물듯, 그 시각과 형상과 변화를 먹먹한 눈으로 살피듯, 3월은 찾아왔다. 겨울의 기세에 눌리면서도, 어서 가자는 봄의 등쌀에도 밀려, 나는 3월을 걷게 되었다.
때때로 나는 3월을 걷는 일에 대해 빙판길을 상상했다. 자주 미끄러졌고, 넘어졌으며, 길을 잃었다. 출발을 알리는 총소리에 일제히 달려 나가는 혼재된 계절의 질주 속에서 나는 속도를 내지 못했고 주춤거렸고, 어깨를 움츠린 채 지나친 이의 얼굴을 찾는데 열중했다. 그것은 구름을 붙잡는 일과 같았다. 손을 뻗었고 닿지 않는다는 걸 알았지만 허공을 응시하는 걸 멈추지 못했다. 마치 허무함만이 한 줌의 의미라도 남길 수 있다는 듯이. 그러나 구름은 잡을 수 없다. 찬 기운의 일부를 만질 수 있을 뿐. 눈송이를 거머쥐면 물꽃 한줄기가 마른 손을 적시듯, 나는 잡을 수 없는 무언가를 잡기 위해 아등바등했다. 미끄러지고 넘어지고 길 잃은 나를 끝내 붙잡아준 것은 3월의 손길이었다. 3번의 빙판길. 떠나고자 했던 순간들 속에서, 맞지 않는 조각과 헝클어진 인과관계 속에서, 나는 무엇을 갈망했을까. 무엇이 타는 듯한 붉음이었고, 무엇이 저녁바다이자 밤바다였으며, 무엇이 그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어둠이었을까.
어둠아래 홀로 서서 긴 하늘을 보면 아무것도 보일 것 같지 않던 그 속에서 빛이 하나둘 눈을 뜨는 게 보인다. 기다림이란 어쩌면 그런 것이 아닐까. 나를 기다려온 별빛을 발견하는 것. 비로 쓸듯 시간의 티끌을 모아 삶이라는 글자 하나를 만들어내는 것.
3월에 대해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삼베' 할 때의 '삼'이었다. 우리나라에서 대마를 부르는 말인 '삼', 대마 줄기 껍질에서 채취한 섬유로 실을 만들고, 옷감이라는 뜻을 가진 '베'를 붙여 삼베라는 이름이 만들어졌다. 문헌에는 '마포' 또는 '포'라고 표기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유래나 과정과는 별개로, 내가 삼베를 떠올렸던 것은 '삼'이라는 발음과, 그 질감을 떠올렸을 때 생생하게 만져질 것 같은 질감, 삶과 올올이 맞닿아 있을 시간의 결들 때문이었다. 그 시간의 올들이 가진 마취력 때문이었을까, 상처 입어도 웃고, 모멸과 멸시도 그저 웃어넘기던, 끝내 터지던 통곡과 떨어지는 알알이 깊이 스며 적시던 삼의 옷자락. 그래서 상주는 무명의 삼베로 모진 생 접고 떠나는 부모를 기리었던가.
하지만 이만하면 아주 잘 살아낸 것 아닌가. 유지에는 공이 든다. 물리는 운동이어서, 아무 변화가 없어 보이는 모든 것들은, 무질서를 향해 나아가는 운동에 저항하는 노력을 매 순간 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럼에도 서서히 변하고, 모서리가 닳고, 시간을 거스를 수 없음을 깨닫지만,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은 증명하고 있다. 나와 내 삶과 가족, 친구와 일터와 그 티끌 같은 것들이 모인 세상을 떠받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는 것. 차고 넘칠 정도는 아니더라도 각자의 몫을 어떻게든 해내고 있다는 것. 통증을 견디며 때로 신음하고 무너지더라도, 격려하고 격려받기에 충분한 삶을 살아내고 있다는 것. 또 살아내었다는 것. 그런 것들을.
살아낼 거라는 거창한 믿음 없이도, 해낸 모든 것에 '잘'이라는 수식어가 붙지 못해도, 순간을 매만지는 생생한 감촉과, 바람이 전하는 산수유, 매화의 노래와, 묵묵히 살아갈 누군가의 눈에 같은 하늘 같은 노을이 담긴다는 믿음, 그런 것들이 합쳐져 삶은 또 한걸음 이동해 있을 거란 걸 안다면, 오늘의 통증과 내일의 두려움도 이제 맞이할 4월의 봄기운에 서서히 밀려가지 않을까.
* 3월을 살아낸 당신께 찬사를 보냅니다. 더불어 3월을 살아낼 수 있게 격려하고 지지해 준 누군가가 있다면 지금 이 순간, 감사인사를 전해 보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