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어제는 채송화가 꽃을 피웠고
잔잔한 호수 표면에 파문이 일듯
색채인지 햇살인지 모를
유려한 빛무리가
마음 끝을 툭
건드리고 갔다
핑, 그리고 파르르
여진처럼 떨림이 남았다
같은 시간을 살아간다는 느낌이
손으로 만져질 것처럼
형체를 갖추었고
봄의 열매들
이름 모를 들꽃
때때로 취할 듯 자욱한 아카시아향
바람에 훅 눈처럼 쏟아지던
이팝나무 꽃잎과
산들산들 불던
그러나 대지를 뒤덮을 듯 번지던
버드나무 씨앗들
하나하나의 그림들
끝 간데없던 그리움과
이리저리 떠돌던 사랑
이내 완성될
끝내 미루어야 할
단어와 순간들
입술 끝에 봉오리 져
개화를 기다리다 계절을 놓친
봄의 수많은 순간들이
이제 고개를 숙인다
아니, 든다
때때로 이는, 부는, 미풍을 타고
일제히, 산발적으로
무늬와 색채와 형상을 만든다
같은 시간을 살아간다는 건
곤히 잠든 꿈속
흐드러진 머리칼
작고 여린 향기
그 속에 깃든 이야기를
별의 시간을 거치지 않고도
당신께 전할 수 있는
멋지고 사소한
기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