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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간

by 작가 전우형

어제는 채송화가 꽃을 피웠고

잔잔한 호수 표면에 파문이 일듯

색채인지 햇살인지 모를

유려한 빛무리가

마음 끝을 툭

건드리고 갔다

핑, 그리고 파르르

여진처럼 떨림이 남았다


같은 시간을 살아간다는 느낌이

손으로 만져질 것처럼

형체를 갖추었고

봄의 열매들

이름 모를 들꽃

때때로 취할 듯 자욱한 아카시아향

바람에 훅 눈처럼 쏟아지던

이팝나무 꽃잎과

산들산들 불던

그러나 대지를 뒤덮을 듯 번지던

버드나무 씨앗들

하나하나의 그림들

끝 간데없던 그리움과

이리저리 떠돌던 사랑

이내 완성될

끝내 미루어야 할

단어와 순간들

입술 끝에 봉오리 져

개화를 기다리다 계절을 놓친

봄의 수많은 순간들이

이제 고개를 숙인다

아니, 든다

때때로 이는, 부는, 미풍을 타고

일제히, 산발적으로

무늬와 색채와 형상을 만든다


같은 시간을 살아간다는 건

곤히 잠든 꿈속

흐드러진 머리칼

작고 여린 향기

그 속에 깃든 이야기를

별의 시간을 거치지 않고도

당신께 전할 수 있는

멋지고 사소한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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