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오늘이 5월의 마지막 날이라는 사실에는 사실 특별할 것이 없습니다. 시간은 공무원처럼 일합니다. 일초를 쌓아 일분. 일분을 쌓아 한 시간. 한 시간을 쌓아 하루. 하루를 쌓아 일주일. 일주일을 쌓아 한 달.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그러다 보면 5월은 지나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지막이라는 말은 수식어에 불과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언가를 꾸미고 싶을 때, 기념하거나 기억하거나 의미를 부여하고 싶을 때, 저는 마지막이라는 말을 쓰는 것 같습니다. 마치 그 말을 사용하기 위해 하루하루를 쌓아가는 것처럼요.
살아가는 일에도 동력이 필요합니다. 구멍 난 뼈를 회복시키기 위해 인접부위를 긁어내거나 연골을 재생시키기 위해 미세천공을 내는 것처럼 어떤 상처를 회복시키려면 그만한 상처를 다시 내어야 하는가 봅니다. 혈관이 지나지 않는 마른땅에 한차례 빗길을 내어주면 물 댄 자리마다 싹을 틔우듯 잠들어있던 세포 하나하나가 비로소 일을 하기 시작합니다. 살아가는 일도 같습니다. 매 순간 평탄하기만 한 삶이란 죽은 것과 같습니다. 구르고 넘어지고 흙 묻은 얼굴을 비비며 노란 하늘을 봅니다. 구슬땀이 질겅질겅 엉겨 붙은 머리칼을 넘기고 미지근한 물 한 모금을 입에 뭅니다. 차라리 막혀오던 숨이 탁 트이는 걸 느낍니다. 살아가는 일에서 상처란 변화를 뜻하는 말일지도 모릅니다. 변화는 어쩔 수 없이 인간을 움직이게 하니까요.
고전 역학에서는 외력이 작용하지 않는 한 물체는 정지해 있거나 일정한 속도로 움직인다고 말합니다. 흔히 이러한 상태를 관성이라고 부릅니다. 관성은 움직이고 있으나 움직이지 않는 상태를 비유적으로 이르기도 합니다. 관성을 잘 이용하면 힘을 들이지 않고도 정해진 일들을 해낼 수 있습니다. 뇌에 길을 내 관성적으로 해내게 만든 것들을 습관이라고 합니다. 습관적으로 행하는 일들에는 에너지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특히 고민비용은 0에 수렴합니다. 안정적인 삶을 추구하는 저 같은 사람에게 습관은 중요합니다. 마치 시간이 매 순간 똑같은 속도로 나아가는 것처럼, 저는 일정한 속도로 움직일 때가 가장 편합니다. 하지만 영구기관은 존재하지 않고 삶은 늘 일정 수준의 저항에 직면합니다. 저항은 운동의 방향이나 속도를 변화시킵니다. 즉, 언제나 일정 수준의 외력을 받습니다. 그것을 무시한 채 고민비용을 0에 둘 때 문제는 생깁니다. 틀어진 방향을 바로잡지 않으면 바라는 지점으로부터 외려 멀어져 있다는 걸, 마지막이라는 말 하나가 제게 알려줍니다. 시간이라는 관성에 편승해 살아온 삶의 좌표를 확인할 기회는 흔치 않고, 이런 시기를 빌어 인위적인 중단을 경험하고 변화 또한 맞이합니다. 상처를 내고 피를 흐르게 합니다. 삶은 다시 일을 시작합니다.
오늘이 5월의 마지막 날이라는 사실에는 사실 특별할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때때로 저는 오늘이 마지막 날임을 상기시킵니다. 고장 난 관성에 상처를 냅니다. 삶에 변화를 일으키고 운동을 시작합니다. 그러니 힘들고 괴롭지만 슬퍼하지 않기로 합니다. 이것은 5월을 살아낸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