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서 지금까지 줄곳 바닷가에서 36년을 살았다. 그런데도 여전히 바다와 친해지지 못했다. 바다를 좋아할 수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배멀미'였다. 10년 가까이 배를 탔지만 여전히 '배멀미'는 나를 고통스럽게 한다. 바닷가에 살면서도 가까운 해수욕장조차 찾지 않았던 것은 짠내나는 바닷바람이 이미 충분히 속을 뒤집어놓았기 때문이었다.
이제 나는 14년의 해군장교 생활을 마치고 전역을 목전에 두고 있다. 바다에 어울리지도 않는 내가 맞지않는 제복을 입고 바다를 지켜온 이유는 그저 내가 선택하고 시작한 길이었기 때문이었다. 일찍 시작한 군대, 사회생활, 직장생활, 그리고 결혼생활에 이르기까지. 나는 내가 다른 선택을 내리기에 너무 늦었다고 단정지었다. 하지만 이제 상황은 변화되고 있다. 부담감에 시름하던 혹독한 바다를, 바다 위가 아닌 육지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된다는 기대감에서였을까? 갑자기 바닷가를 찾고싶어졌다.
벌써 9월도 막바지였다. 가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이다. 아침저녁으로 많이 쌀쌀해짐을 느낀다. 이대로 날씨가 더 추워지면 바닷물에 발도 담궈보지 못하겠다 싶어 일요일에 갑자기 바람이나 쐬러가자며 이른점심을 해치우고 대천해수욕장을 찾았다. 집에서 1시간 조금 더 걸리는 거리. 해수욕장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1시경이었다.
대천해수욕장 가는 길, 청초하고 맑은 하늘에 떠 있는 악어구름을 보며
여름은 이미 지나갔지만 정오를 막 지난 시점의 가을볕은 꽤나 따사로웠다. 그림같은 푸른바다 위로 파란하늘이 펼쳐졌고 곳곳에 조각배같은 구름들이 하늘바다를 떠다녔다. 근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간이의자 2개를 짊어지고 해변을 향했다. 해수욕장을 찾은 사람들은 많지 않았고 마스크를 쓴 채로 물장구를 치는 아이들도 있었다. 멀리 통제실에서는 연신 코로나 상황을 알리며 마스크 착용과 거리두기를 강조하는 방송이 울려퍼지고 있었다.
한산한 바닷가. 해수욕장에 사람보다 모래가 더 많이 보이는 풍경. 참 이국적이다.
미리 아이들에게 주의를 주었다. 여벌의 옷은 안가져왔으니 발만 담그라고. 마스크도 하나 뿐이니 물에 적시지 말라고. 하지만 실현가능성이 없는 말이었을까. 바짓단을 걷어올린채 얕은 바닷물에 발을 담그던 아이들이 조금씩 시야에서 멀어지더니 점점 물속으로 자취를 감추어갔다.
이때까지만 해도 아직 괜찮았다. 하지만...
금새 아이들은 조금씩 더 바다에 몸을 맡기기 시작했고, 너무나 재미있게 노는 모습에 물에 들어가지 말라는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아이들은 바다와 하나가 되어 갔다.
나도 가까이 가서 바닷물을 가만히 보았다. 물이 참 맑고 깨끗했다. 그러고보니 해변도 쓰레기들로부터 자유를 되찾은 것 같았다. 코로나로 인간의 삶은 정체되었지만, 그와 반대로 지구와 자연은 회복되는 모양이었다. 사람의 욕심이 환경을 망가트려온 벌을 지금 받고 있는 것일까? 잠시 생각에 잠겼다.
셋이서 놀기 바쁜 아이들을 잠시 뒤로하고 아내와 함께 맨발로 해변을 걸었다. 파도는 잔잔했고 모래는 부드러웠다. 따사로운 햇살 아래에서 발끝을 적시는 적당히 시원한 바닷물. 지금껏 이토록 바다가 호의적이었던 때가 있었을까?
이제 바다를 떠나려 하는 내가 왜 바다를 다시 찾게 되었을까? 그동안 자발적으로 바다를 찾은 적은 없었다. 그런데 막상 바다를 떠난다고 생각하니 바다가 그리워진걸까? 아니다. 나는 다만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갔을 뿐이다. 바다를 사랑하고 좋아했던 그 시절로. 태어나면서부터 바닷가에서 자랐던 나는 바다와 친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언제나 주위엔 바다가 있었고 그 친근함이 내가 해군생활을 시작하게 한 원천이었다. 하지만 해군생활을 시작한 이래 바다는 의무감으로 가득찬 전장이었다. 바다 위에서 언제나 긴장해야만 했고 고민에 빠져야 했으며 멀리 북녘바다를 살피느라 바빴다. 그곳에서 나는 편안할 수 없었고 나를 살필 여력이 없었다. 그렇게 바다 위에서 나는, 바다로부터 점차 멀어져갔다.
내가 변하면 세상도 변한다. 우리는 자신의 해석에 의해 만들어진 독특한 세상을 살고 있다. 그때의 바다와 지금의 바다는 다를 것이 없지만, 그때의 바다는 엄혹했다면, 지금의 바다는 평온하다. 바다를 대하는 '내'가 달라진 것이다. 나는 앞으로의 삶에서 무엇을 만들어갈 수 있을까? 삼십대 중반을 넘어선 지금도 내 인생은 물음표 투성이다. 다만 한가지 스스로 결정한 것은 '작가'의 삶을 이어나갈 것이라는 다짐이다. 보고 듣고 경험하고 생각하고 글을 쓰는 이 단조로운 작업 속에 또 다른 나를 발견하고 삶의 가치를 축적해가는 것이 인생의 바다를 항해하는 나에게 주어진 유일한 '방향타'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