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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일을

에세이

by 작가 전우형

내가 한을 극대화시키는 정서를 가졌다면 그대는 슬픔을 승화시키는 문학을 가졌습니다. 그대는 힘든 순간을 더하지도 덜어내지도 않은 채 품고 애도할 수 있습니다. 내버려 두거나 증발하는 방식으로 한을 녹여낼 수도 있지요. 삶은 색을 입히기 전까지는 진가를 알 수 없는 걸까요. 하지만 나는 채색 전의 삶도 온전할 수 있다고 믿고 싶습니다. 거친 단면이야말로 삶의 이유가 되어준다는 이기적이고도 얄팍한 바람을 옮겨 적는 마음입니다.


살아가는 순간은 자체로 의미를 지닐 거예요. 별 것 아닌 순간들도 살아가던 때만큼은 뜨겁고 찬란합니다. 삶을 연소시킬 때 발생하는 빛과 에너지 없이 '지나고 보면'은 존재할 수 없기도 하고요. 조건 없는 사랑의 방식으로 나는 내가 살아온 순간들에 의미를 부여하기로 합니다. 선 하나 긋지 못한 삶도, 이제 돌아봄은 살아낸 자의 특권이라고 두터운 밑줄을 그어봅니다.


그런 마음으로(아니, 오기로) 지나온 삶을 돌아봅니다. 삶을 쌓아나가는 방식은 고칠 수 없고, 여전히 나는 그 속에 한처럼 서린 아쉬움부터 들여다보지만, 아파할지언정 비판은 하지 않기로 합니다. 깊이 없는 시간 속에도 아름다움은 있습니다. 발견하려는 마음만 있으면 가능한 일이지요. 일단 내디딘 한걸음이 걸어가는 일의 본질인 것처럼, 살아가는 일이란 단순하지만 용기 낸 한걸음을 필요로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살아가는 일을 사랑해 보기로요.

살아가는 일 자체가 가진 아름다움을 믿고서.


이것은 삶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대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 표지 : 도종환, '접시꽃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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