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탓의 반대는 자책이 아니다.
남탓은 자신의 문제를 부정해버리는 사고방식이다. 남탓은 '내탓은 아냐!'라는 무의식에 동조한다. 남탓을 외치는동안 정작 자신이 해결해야할 스스로의 문제로부터는 눈을 돌리게 만든다. 내면의 문제를 직시하지 못할 뿐 아니라, 타인의 피드백에 대해 방어적이 된다. 스스로 물을 마시지 못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이 내미는 물잔도 쳐내버리는 가장 나쁜 상황이다.
남탓은 또 다른 남탓을 부른다. 남탓하는 사람 주위에는 유사한 패턴을 보이는 사람들이 모인다. 사고방식은 생각의 경향성, 습관 등으로 고착되는데, 타인을 문제삼는 사람은 또 다른 문제앞에 섰을 때 같은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이 높다. 길을 가다 서로 어깨가 부딪혔을 때 조심해야 할 의무는 쌍방에 있다. 하지만 남탓에 익숙한 사람은 "길 좀 똑바로 보고 다니세요"라며 날을 세우고는 상대를 탓한다. 이 때의 반응은 "죄송합니다. 괜찮으세요?"가 되어야 한다. 우선 자신의 잘못에 대한 사과와 반성이 선행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상대방에 대한 지적은 목적은 달성하지 못한채 오해와 갈등만을 부추긴다.
순간적인 감정의 폭발로 공격적인 에너지를 뿜어내는 것이 남탓이 될 수도 있다. 방어기제로 인해 일단 남탓부터 하고 봤다면, 잠시 흥분을 가라앉히고 자신의 행동 매커니즘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용에는 다른 비늘과 달리 거꾸로 달린 비늘이 있는데 이것을 '역린'이라고 한다. 전통적으로 이르기를 용의 역린은 절대 건드려서는 안된다고 한다. 역린을 건드리는 것은 용의 노화를 자초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비단 용 뿐 아니라 사람에게도 '역린'이 존재한다. 각자의 치부나 콤플렉스와 같은 민감한 문제들이다. 이것을 건드렸을 때 사람은 감정에 치우친 상태가 되고 방어적으로 행동하기 쉽다. 예를 들어, 키가 작은 것이 콤플렉스인 아이가 키와 관련된 별다른 의미없는 말을 들었을 때 "그러는 너는 뭐가 그렇게 잘났어?"와 같이 날 선 반응이 나오는 것과 같다. 자극에 대한 이런 반응은 상대의 말에 대한 해석과 반응과정에서 내면의 고유한 상처가 얽혀버리면서 발생하는 문제들이다. 왜소한 키로 대변되는 자신의 외모를 수용하지 못하는 내면의 불만요소가 상대의 말에 투영되며 분노가 자극되는 것과 같다. 그 결과 자신을 공격하지 않은 상대방을 자신이 공격하게 된다. 상대를 헤아리지 못하고 민감한 부분을 건드린 상대방의 언행에도 문제가 있지만, 더 큰 문제는 그런 자신을 있는그대로 수용하지 못하는 자신의 내면에 있다. 하지만 남탓에 익숙한 사람은 상대를 탓하며 자신의 문제를 직시하지 못한다.
문제의 원인은 단편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교통사고에서 과실비율 100%가 나오지 않듯이 모든 관계에 있어 일방과실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문제는 쌍방과실이며, 잘못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귀책사유는 서로에게 동등하다. 남탓은 원인에 대한 자신의 포션까지 상대방에게 모두 전가시키는 사고방식이다. 남탓을 통해 자기방어의 실현이 가능하다는 믿음은 '허구'다. 오히려 남을 탓할수록 더욱 고립되고 더 많은 공격을 받게 된다. 자기방어는 자신을 지키는 것이지 남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자신의 내면에 존재한다. 원인을 상대방 또는 환경, 상황과 같은 자신 이외의 방향으로 돌리다보면 공격적이고 배타적인 에너지를 사방으로 내뿜게 된다. "너 때문이야"가 일상속에 자리잡는다. 사방으로 날을 세운 고슴도치에게 가까이 다가갈 사람은 없다. 누군가와 친구가 되고 싶다면 우선 날카로운 가시부터 접어야 한다.
남탓은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돌보지 못하게 한다. 자신의 고유한 문제를 풀 수 있는 사람은 자신뿐이다. 타인이 내면의 문제를 바로잡아줄 수 없는 이유는, 누군가의 내면을 내시경 보듯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없는데서 기인한다. 마음의 영역에 대해 "지금 네 마음 상태는 이렇다"라고 단언할 수 있는 기술은 아직까지는 없다. 궁예처럼 '관심법'이라도 익히지 않는 한에는 말이다. 백번 양보해 '마음을 볼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한다 하더라도, 누군가에게 속마음을 들킨 기분은 결코 달갑지 않다. 수치스러운 비밀이 모두 까발려진 듯한 이 기분은 방패를 꼬나쥐게 만든다. '라포'가 형성되지 않은 관계에서는 더욱 그렇다. "저에 대해 뭘 안다고 그런 말씀을 함부로 하시는거죠?"라는 식의 대답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이처럼 내면의 문제나 고민은 당사자가 자신의 문제를 부정해버리면 해결 방법은 없다. 내면에 존재하는 고유한 문제들은 스스로에 대한 문제의식 없이 해결되지 않는다. 마음을 정확히 파악하고, 인정할 수 있는 주체는 자신 뿐이다. 그 외에는 '조력자', '지원자'의 역할에 그칠 수 밖에 없다. 스스로의 동기가 가장 중요한데 남탓하는 습관은 자성의 동기를 희석시켜버린다.
문제의식 없이 해결은 불가능하다. 자신에게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단정적 사고는 스스로의 문제를 성찰하지 못하게 한다. "그럼 무조건 내가 잘못이었다고 해야 하나요?"라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누구의 탓도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잘못된 부분은 수정하고 고쳐나가면 된다. 남탓의 반대는 자책이 아니다. 남탓을 그만두는 것은 그저 남을 탓하던 무의식적인 편향에서 벗어나는 것을 말한다. 상황을 균형적으로 바라보려면 한쪽으로 일방적으로 치우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땅이 기울어져있지 않아도 내 시선이 기울어져 있으면 세상은 기울어진 것처럼 보인다. 중요한 것은 상황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며, 세상을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나의 사고방식이다.
자책과 성찰은 분명히 구분되어야 함에도 간혹 '내탓 아니면 남탓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에 갇혀있는 경우가 있다. 누구의 일방적 탓도 아니다. 특히 인간관계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남탓은 문제를 종결하기는 커녕 계속해서 새로운 갈등요소를 만들어낼 수 밖에 없다. 공격은 또 다른 공격을 부르고 공격받은 사람은 정당방위라는 생각으로 상대를 공격할 명분을 찾는다. 이 굴레에서 벗어나려면 우선 남탓을 그만두는 것이 현명하다.
남탓. 남을 탓하는 것. "내가 화를 내는 건 네가 나를 화나게 만들었기 때문이야. 나를 극단적 상황으로 몰고 간건 모두 너 때문이야." 남을 탓하지 않으면 자신을 탓해야 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남탓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그저 남을 탓하지 않는 것이다. 말장난같이 들리지만 진리는 단순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