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귀가 멀어버린 사람

소통이란,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

by 작가 전우형

자신의 목소리를 녹음해서 들어보면 평소에 듣던 목소리와 많이 다른 것을 느낄 수 있다.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가지 못하지만 예전에는 코인 노래방을 자주 갔었다. 노래 부른 것을 재미 삼아 녹음해서 들어보곤 했는데, 노래를 부르면서 내가 들었던 목소리보다 훨씬 탁하고 갈라져 있었다. 자신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것과 타인에게 들리는 목소리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가수들은 자신의 노래를 녹음한 뒤 다시 들어보며 피드백을 받는다. 연기자 역시, 자신이 연기한 장면을 카메라로 다시 보며 감정 표현이나 시선 처리 등을 확인한다. 이것은 자신의 목소리는 자신이 들어서는 정확히 알 수 없고, 연기자 역시 자신이 연기한 모습이 타인에게 어떻게 비치는지 자신의 시선으로는 정확히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스스로를 제대로 볼 수 없다. 자신에 대해 잘 안다고 과신하지만, 거울에 의존하지 않으면 자신의 생김새조차 알 수 없는 것이 인간이다. 자신에 대해 '스스로' 알아차리기 위해서는 또 다른 노력이 필요하다.


자신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기 위해서는 녹음해서 들어보아야 한다. 이러한 과정이 곧 '피드백'이다. 피드백은 두 가지 경로를 통해 이루어진다. 두 가지 경로란, 자신에 대해 살펴보는 '성찰'의 과정과, 타인의 시선에서 이루어지는 '조언'을 말한다. 스스로의 생각과 상상, 연상 등을 통해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려보고,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 예측해보는 것이 '성찰'의 영역이라면, 나의 생각이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전달되고 받아들여지는지 상대방으로부터 피드백을 받는 것이 '조언'의 영역이다. 이 두 가지가 이루어지지 않을 때 꼰대가 되고, 꼰대가 권력을 가질 때 독재자가 된다. 이 둘의 공통점은 ‘소통’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오해’와 ‘단절’이라는 견고한 성벽을 만들고 깊은 해자를 판다.




상대방에는 '자기 자신'도 포함된다.


‘피드백’은 들을 준비가 된 사람에게만 들린다. 귀를 열고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었을 때 비로소 피드백은 의미를 갖는다. 방어적인 사람은 종종 마음의 귀가 멀고, 이들은 다른 이의 조언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여기서 '다른 이'의 범주에는 '자기 자신'도 포함된다.


마음의 귀가 먼 사람은 청각장애인보다 더 심각한 소통장애를 겪는다.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은 자신의 한계를 명확히 알기 때문에, 필담을 나누거나 수화, 바디랭귀지, 표정 등의 비언어적 신호를 통해 소통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마음의 귀가 먼 사람은 자신과의 소통조차 되지 않기에, 지극히 방어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한다는 사실조차 알아차리지 못한다. 이러한 ‘자각’이 없기에 한계를 인정하지 못하고, 문제 해결을 위한 시도를 할 수 없다. 타인의 피드백을 받아들일 수 없으므로, ‘아웃소싱’에 의한 피드백도 불가능하다.


‘마음의 귀’를 닫아버린 사람 주위에는 아무도 남지 않는다. 물론, 그가 권력자일 경우, 모든 이가 등을 돌리고 떠나지는 않는다. 예로부터 독재자와 독선적인 군주 옆에는 간신들만 가득했다. 이들은 자신의 심기를 건드리는 자들을 용서하지 않기에, 간신들은 왕이 듣고 골치 아플만한 이야기는 절대 하지 않았다. 그들은 귀에 달콤한 소식들만 전달하기 때문에, 세상을 왜곡하고 편향된 시선으로 바라보도록 유도하는데 최적화되어있다. 왕은 스스로 둘러친 간신들의 벽 안에서 누구보다도 평안한 하늘을 보며 살아갈지 모르지만, 정작 세상이 자신에게 점차 등을 돌리고 있음을 알지 못하기에 그들의 말로는 언제나 비참했다.


우리는 타인의 목소리를 '경청'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이 들을 준비가 되었다는 것을 타인에게도 알려주어야 한다. 이 과정이 곧 ‘신뢰 형성’이자 ‘소통’이다. 애써 피드백을 주는 사람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그들은 적어도 우리에게 ‘관심’이 있는 사람이다. 그들의 관심은 우리에게 먼저 손을 내민 것과 같다. 함께하기를 원한다면 그 성의를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


오만과 아집에 사로잡힌 사람은 피드백의 가치를 무시한다. 타인의 의견을 잘못된 것으로 치부한다. 호의를 무시당한 사람은 거절감과 수치심으로 상처 받고, 더 이상 손을 내밀지 않는다. 물론, 때때로 잘못된 피드백도 분명 존재한다. 어떤 이들은 근거 없는 ‘비난’ 또는 자신의 감정을 마구잡이로 분출하는 것과 피드백을 구분하지 못한다. 자신에게 거슬리는 것을 무작정 비판하는 것은 불평이고 불만일 뿐, 피드백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옥석을 가려 취할 수 있는 것과 보석 같은 조언조차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상대의 닫힌 마음을 열게 하는 법


갈등 상황에 있을 때는 그 어떤 의미 있는 피드백도 의미가 없다. 갈등 상황에서 최선책은 무조건 말을 '아끼는' 것이다. 갈등 상황은 뇌가 일종의 '전투 상황'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방어적’인 태도를 지닌다. 이런 상태에서는 그 어떤 좋은 말도 잔소리나 간섭, 비난, 폭언으로 들린다. 좋은 의도에서 한 말을 상대가 꼬아들을 때 관계는 크게 어그러지고, 갈등은 더욱 심화된다. 이런 상태에서는 상대가 진심을 몰라준다고 느낄만한 사건들을 경험하기 쉽다. 이것은 부정적인 기억을 양산할 뿐이다.


신뢰가 형성되지 못한 상태에서 하는 조언은 입바른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피드백의 전제조건은 ‘신뢰 형성’이다. 신뢰할만한 사람에게 우리는 자연스럽게 마음을 연다. 귀담아들으라고 하지 않아도 먼저 귀를 기울이고 한마디라도 더 들어보려고 한다. 같은 말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들리는 것처럼 상대방에게 조언을 던지기 이전에 자신이 먼저 신뢰할만한 사람이 되었는가를 생각해보는 것이 좋다.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관심, 발전을 바라는 마음을 바탕으로 피드백이 이루어질 때 피드백의 가치는 극대화된다.




좋은 피드백은 무엇일까?


피드백은 상대방이 아니라 상대방의 행동이나, 방법, 기술 등이 되어야 한다. 상대방의 존재 자체에 대한 평가나 피드백은 자신을 비난하는 것처럼 느껴지고, 깊은 곳에 잠재된 수치심을 불러일으킨다. 상대를 방어적으로 만들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예를 들어, "오늘 옷차림이 별로네요."라는 말은 상대방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으로 들릴 수 있다. 이런 말을 들은 상대는 자신의 옷차림을 살펴보는 대신, "그쪽은 얼마나 옷을 잘 입었다고 저한테 그런 말을 하는 거죠?"라고 되받아치거나 불필요한 감정싸움을 발생시킬 수 있다. 제대로 된 피드백은 사실을 기반으로 구체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오늘 입은 원피스는 색이 어두워서 피부색과 조금 덜 어울리는 것 같아요. 피부색이 밝은 편이니까 밝고 화사한 색으로 코디하시면 더 잘 어울릴 것 같네요."


브리퍼에 대한 피드백의 예를 들면, “지금의 목소리도 좋지만 톤이 낮아서 듣는 사람의 마음을 가라앉게 하는 느낌도 있군요. 목소리의 톤을 조금 높여보고 억양을 부드럽게 하면 어떨까요?”, “시선 처리가 불안정하군요. 직접 청중의 눈을 바라보기 어렵다면 인중을 바라보거나 5초 정도 간격으로 시선을 옮겨보는 연습을 하면 어떨까요?” 와 같이, 상대방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세부적인 사실에 대한 솔직한 느낌과 대안을 전달해주면 좋다.



‘조급함’은 ‘독’이 될 뿐 ‘득’이 되지 않는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관심을 갖고, 피드백을 주는 이유는 상대방의 긍정적인 변화를 바라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 삶에 극적인 변화는 바람직하지 않으며, 인간은 생각처럼 쉽게 변화되지 않는다. 이러한 한계를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큰 기대는 큰 실망을 부르는 법이다. 상대가 '당연히' 나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드라마틱한 변화를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어떤 비판이나 조언에 직면했을 때, 누구나 잠깐은 '방어적'으로 반응할 것이다. 이것은 무의식적인 현상이며, 본능에 가까운 반응이다. 겉으로 표현하지 않더라도, 때로는 "알겠다.", "생각해보겠다."라고 말하더라도, 그 대답은 진심을 덮어두기 위한 인사치레성 발언일 가능성이 높다. 사람 사이에는 '공간'이 필요하다. 인간이란 단어 자체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공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처럼, 누군가에게 나의 뜻이 전달되는데도 시간이 필요하다. 몸에 좋은 것도 우리 몸에 흡수되는데 시간이 필요하듯, 누구에게나 자신에게 맞고 가장 편안한 방법이 있기 마련이다. 생각과 판단을 통해 스스로 납득하는 과정을 건너뛴 채 다른 이의 전략을 받아들일 사람은 없다.


좋은 피드백은 상대에게 '제안'하되 '강요'하지 않는 것이며, 생각의 여지를 남겨주는 것이다. 바람이 통할 공간을 열어주면 상대를 답답하게 만들지 않고, 스스로 충분히 생각하고 판단해본 뒤 적용 여부를 결정할 마음의 여유를 제공해준다. 개인에게는 각자의 '특수성'이 있는 것처럼, 모두에게 맞는 방법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70억 명의 사람에게는 70억 개의 세상이 있으며, 그보다 더 많은 수의 해법이 존재한다. 다양성에 대한 인정은 모든 관계를 만들어감에 있어 가장 기본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이다.


많은 것들은 '시간'이 해결해준다. 충분히 생각해보고 여러 가지 다른 시도를 해본 후에도 상대방의 의견이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면, 변화에 대한 동기가 충만해진다. 스스로의 의지가 바탕이 되면 자연스럽게 변화와 성장의 동력이 뒤를 받쳐주며, 마음으로 받아들인 것은 내면화되어 우리를 뿌리에서부터 변화시킨다. 변화란 그런 것이며, 좋은 피드백은 이런 변화의 계기를 제공해줄 뿐이다. 인간은 스스로 변화하는 존재일 뿐, 누군가에 의해 변화되는 존재가 아니다. 인정할 것은 인정할 때 마음에도, 관계에도 평화가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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