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깊은 관계로 발전하고 싶다면

쥐고 있던 주먹에 힘을 살짝 빼보길

by 작가 전우형


주먹을 말아 쥔 채 악수할 수는 없다.


악수를 청하는 것은 진심을 표현하는 행위다. 손에 아무것도 감춘 것이 없음을, 내가 가진 것을 내려놓고 상대방을 위한 공간을 내어주는 것이 관계의 시작이다. '아집'은 내가 가진 것을 놓지 않는 태도다. 자신의 경험과 생각, 근거에 입각하여 자신의 의견, 방법, 관점만이 옳다고 여긴다. 주먹을 꽉 말아 쥔 채로 상대에게 내밀며 그 안에 든 것을 받아들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


아무리 좋은 의견도 상대에 대한 존중이 결여된 상태에서는 온전히 전달되기 어렵다. 상대의 신뢰와 동의를 얻으려면 우선 주먹을 펼치고 아집을 내려놓아야 한다. 도박에서 이기려면 내 패를 상대에게 숨겨야 하지만,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속마음을 드러내는 용기가 필요하다. 마음의 자력은 마음을 끌어오는 힘이 있다. 깊숙한 곳에 진심을 숨겨둔 채로는 그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N극과 S극처럼, 인간에게는 나와 다른 사람과도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는 능력이 내재되어 있다. 그 능력을 꺼내어 쓰는 방법은 진심으로 상대를 존중하는 것이다.



자존심이라는 '가시'


모두에게는 나름의 강박이 있다. 수치심을 못 견뎌하는 사람은 타인에게 폐가 되는 상황을 견디지 못한다. 자신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지 못하면 반드시 미움받고 말 것이라는 두려움이 내재되어 있다. 이런 사람은 자신이 무언가를 베풀 수 있거나, 도움을 줄 수 있는 상황을 만들기를 원한다. 더불어 그런 상황이 아니거나, 그런 상황으로 이끌 자신이 없다면 함부로 나서지 못한다. 설사 상대가 간절히 도움을 청하더라도 말이다. 괜히 돕겠다고 나섰다가 오히려 상대를 더욱 곤혹스럽게 하거나 상황을 악화시킬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그런 마이너스적인 상황을 초래했을 때 다른 사람들이 나를 지켜보는 시선이 두렵고, 그런 상황에서 나 스스로 느낄 수치심이 두렵다. 도전적 상황에 쉽게 뛰어들지 못하는 강박은 이런 식으로 형성된다. 가벼운 강박이지만 선택의 순간에 우리를 충분히 한쪽으로 몰아세울 수 있고, 그 약간의 오차가 누적되어 전혀 다른 장소에 도달할 정도로 삶의 방향을 비틀어버리기도 한다.


타인의 시선은 스스로에 의해 만들어지기도 한다. 누구도 실제로 자신을 경멸 어린 시선으로 보지 않지만, 스스로 타인의 입장을 상상해 그들이 나를 경멸하고 있을 거라고 판단하고 몸을 움츠린다. 그들의 시선을 실제로 확인하기가 두려워 눈을 마주치지 못한다. 그래서 사실은 따뜻하고 걱정스러운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조차 하지 못한다. 스스로를 수치스럽게 바라보는 시선은 과연 누구의 것일까? 그들의 시선은 사실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상처와 두려움, 그림자, 자기혐오와 같은 것들이다. 이들을 제삼자에게 투영하여, 자신에 대한 이미지를 상대방이라는 '거울'을 통해 스스로 보고 있는 것일 뿐이다. 세상이 생각보다 각박하고 험해 보이는 이유는 나 스스로가 세상을 그렇게 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잔뜩 세우고 상대에게 다가가려고 하니 상대방 역시 몸을 움츠리고 피하기 바쁘다. 마음을 얻으려면 날카롭게 세웠던 자존심을 접고 불신의 눈길을 거둬들여야 한다.



우선 신뢰받는 사람이 되어보길


문자가 만들어지기 이전에도 언어는 존재했다. 정확한 어휘로 문장을 구성하지 않더라도 의사소통은 이루어져 왔다. 마음은 분위기를 통해 온몸으로 전달된다. 멋들어진 어휘력과 논리 정연하고 박학다식한 문자를 구사하지 않더라도, 상대방에 대한 관심과 진심이 있으면 사람과 사람 사이는 연결된다. 정돈되고 고상한 어휘를 구사하더라도 비아냥인지 칭찬인지 사람은 본능적으로 알아차리는 능력이 있다. 당시의 상황과 말투, 그리고 상대방의 분위기, 그동안의 언행이 상대방의 진심을 짐작케 하는 근거가 된다. 아무리 훌륭한 조언도 평소에 꼰대력 200%였던 사람이 말하면 잔소리가 될 뿐이다.


상대방이 왜 나의 진심을 몰라줄까 답답해할 필요 없다. 스스로를 가만히 성찰해보면 알 수 있다. 상대가 나의 진심을 몰라준 것이 아니라, 내가 진심을 전달하는 방법을 몰랐을 뿐이라는 걸. 관계가 조금 더 깊어지려면 우선 벽을 허물어야 한다. 주먹을 내밀며 악수를 청하지 않아야 한다. 내가 충분히 상대방이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주먹을 펴서 확인시켜줄 필요가 있다.


어떤 물건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무작정 돈을 지불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그 물건을 만든 사람이 누구인가에 따라 확인의 과정은 건너뛰어지기도 한다. 그것이 바로 '신뢰'다. 명품에 비싼 돈을 내고 구입하는 사람들은 샤넬이 그들의 허영심을 자극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명품을 만들어온 브랜드 자체에 대한 신뢰 때문이기도 하다. 신뢰를 얻는 것은 누군가에게 명품 브랜드가 되는 것과도 같다. 속된 말로 팥으로 메주를 씐다고 해도 그 사람의 말이라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신뢰'다. 그래서 좋은 관계는 짧은 시간에 만들어지기 어렵다. 오랜 시간 탐색의 과정을 거치며 정보를 수집하고 상대에 대한 스스로의 믿음이 섰을 때 꽁꽁 닫아두었던 마음의 문을 활짝 연다. 섣불리 바깥에서 잠긴 문을 두드린다고 해서 사람들은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늑대를 두려워하는 돼지 삼 형제처럼 더욱 문을 꽁꽁 걸어 잠글 뿐이다.


신뢰받은 사람은 주먹을 내밀고도 악수를 청할 수 있다.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든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는 손을 내민다. 상대가 주먹을 내밀면 같은 주먹을 내밀어 가볍게 부딪히면 된다. 진심이 통할 때 표현방식은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상대에게 내 마음이 도저히 전달되지 않는다고 느낀다면 내가 혹시 주먹을 꽉 말아 쥐고 있지는 않았는지, 아집으로 똘똘 뭉쳐 내 의견만 맞다고 고집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자존심을 세운채로 상대에게 일말의 다가올 틈도 주지 않았는지 가만히 되돌아보기 바란다. 관계의 시작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 조심스러운 발걸음에 뒷걸음질 치거나 오히려 상대를 밀어낸 적은 없었는지 생각해본다면 좋은 관계를 위한 각자의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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