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심을 버려!

그런데 과연 버릴 수 있을까?

by 작가 전우형

자존심이 상해서 그랬다는 말. 종종 듣는 말이다. 자존심은 왜 상할까? 자존심이 상하면 왜 화가날까? 그깟 자존심 남들이 말하는대로 좀 내려놓고 싶은데 왜 잘 되지 않을까? 이유가 있다.


사람은 각자에 대한 심상이나 이미지를 가진다. 예를 들어, '남을 잘 돕는 사람,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 거짓말하지 않는 사람, 능력있고 똑똑한 사람, 글을 잘 쓰는 사람, 말주변이 좋은 사람, 학식이 뛰어난 사람, 이성적인 사람, 감정이 풍부한 사람, 공감능력이 뛰어난 사람'과 같이 자기 자신을 평가하는 강한 확신을 가진 어떤 이미지들이 있다. 이러한 이미지들은 오랜시간 경험 또는 타인의 평가, 객관적인 지표(예를 들면 자격증, 학위, 학벌 등과 같은) 등을 통해 만들어진다. 혹은 유전적으로 물려받은 기질 자체가 자존심이 강하게 발현되는 경우도 있다.


어쨌든 이런 자존심은 자신이 갖고있는 자신의 이미지를 지키려 하는 마음이며, '조건부' 자기애다. 자존심에는 어떤 조건들이 있다. 그 조건들이 자신이 갖고 있는 '자아상'이다. 이 조건이 지켜지고 자아상이 훼손되지 않아야만 나에 대한 존중과 사랑을 이어갈 수 있다. 그래서 누군가가 이러한 자아상과 배치되는 의견을 갖거나 말을 할 때, 그 발언이나 생각이 나를 공격한다고 느껴 분노하고, 그런 상대의 의도를 반박해 자신을 지키려고 한다. 흔히 자존심이 세다고 평가받는 사람은 타인의 충고나 질책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한다. 정확히는 자존심이 세다기보다, 자존심이 작용하는 기준이 과도하게 넓거나 높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자신에 대한 무슨 말만 하면 날선 반응을 보이고 다툼이 일어나기 쉽다.


어떤 경우에 자존심이 상했다고 느끼는지 잘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절대 거짓말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자아상이 존재하는 사람은 누군가가 자신을 의심할 때, 혹은 의심받는 상황에 놓였을 때, 그런 상황을 초래한 사람이 증오스럽고, 자신이 의심받는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며 분해한다. 자존심이 상한 것이다. 때때로 이런 상황은 수치심마저 느끼게 한다. 그 수치심을 덮기 위해 화를 내거나 강하게 부정하고 상대를 공격하기도 한다. 그런데 '절대 거짓말하지 않는 사람'과 같은 기준이 여러개이거나 스스로도 완벽히 지켜내지 못할 정도로 매우 강하거나 완벽을 추구한다면,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칼을 빼들어야 할 상황이 많아질 수 밖에 없다.


자존심은 분노나 공포, 불안같은 감정처럼 자신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요소이기는 하나, 지나칠 경우 주위에 날을 세우는 순간이 많아져 적을 만들기도 쉽다. 자신에 대한 자신의 평가와 타인의 평가는 다를 경우가 많은데, 그때마다 자존심은 타인의 평가를 무시하고 누르고 틀린 것으로 만들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조건을 지켜야만 내가 사랑받고 인정받을 수 있다는 밑바탕이 깔려 있다. 심지어 자기 자신에게도 말이다.


자존심을 내려놓으려면, 자존심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자존감을 키워야 한다. 자존감은 조건 없이,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존중하고 수용하는 능력이다. 내가 실수를 저지르더라도, 유창하게 말하지 못하더라도, 체력이나 건강이 좋지 못하더라도,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약간의 거짓을 섞어 말하더라도 그런 자신을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에 대한 과도한 기준은 자기혐오에 빠트리기 쉽다. 내가 나를 보호하지 못하고 공격하고 미워하는 자기혐오는 자존감을 낮추는 주요 요인이다. 타인의 평가를 있는 그대로 내면화하거나 무비판적으로 수용할 때 자기혐오는 악화되며, 낮아진 자존감과 상호작용을 하며 자신을 동굴속으로 밀어넣기도 한다. 자존감 저하는 우울증의 주요 원인 중 하나이기도 하다.


모든 관계에서 그렇듯, 선을 긋는 것이 중요하다. 마지노선을 정하는 것이다. 자아상은 매우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져왔기 때문에 그것을 갑자기 내려놓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자신에게 형성된 자아상들이 얼마나 현실성을 갖추고 있는가에 대해 스스로 판단해볼 필요가 있다. 때때로 과도하게 높은 자기평가나 비현실적으로 이상화된 자아상이 존재하기도 한다. 그런 자아상을 가질 때 타인의 판단과 괴리감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내가 보기엔 아닌데, 상대방이 맞다고 박박 우기는 경우, 두 사람의 생각에 차이가 매우 큰 것이다. 하지만 자존심을 내려놓고 잘 생각해보면, 이 사람 말도 맞고, 저 사람 말도 맞는 경우들이 매우 많다. 각자의 생각에는 모두 그럴듯한 이유와 근거가 있다. 그것을 일방적으로 무시해서는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내가 어느정도까지 상대의 비판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 스스로의 기준을 정해야 한다.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은 받아들이고,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부분은 참지 말고 대응해야 한다. 만약 수시로 부딪혀야 할 가까운 관계라면(예를 들면, 부부나 직장 동료와 같은) 자신의 역린이 무엇인지 알려주고, 그 부분은 건드리지 말아달라고 말하는 것이 좋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가 계속 자신의 민감한 부분을 건드린다면 "나 아까 당신이 한 말을 듣고 정말 너무 화가 났어."라고 솔직하게 이야기해주는 것이 좋다. 관계를 끝장내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면 신경을 쓰거나 조심할 것이다. 물론 이런 대화는 'I-Massage'형태로 이루어지면 가장 이상적이다.


상대의 역린은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 누구에게나 자존심이 매우 강하게 형성된 영역이 있다. 그것이 바로 '역린'이다. 민감한 부분이 건드려지면 대번에 수치심이 치솟는다. 수치심은 매우 고통스러운 감정이어서 곧바로 상대에 대한 증오로 이어지기 쉽다. 바꿔말하면, 상대와 싸우고 싶다면 역린을 건드리면 된다. 그 자체가 나랑 한판 붙자는 의사표시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자꾸만 내 기분을 슬금슬금 긁는 사람이 있다면 제대로 한판 붙어주는 것이 좋다. 자존심은 그럴 때 쓰라고 있는 것이다.


자존심을 정상수준으로 내리는 방법은 '아집'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나'만' 옳다고 여긴다면 내 생각과 판단에 근거한 모든 것들은 제대로된 것이며, 그렇기에 타인의 생각이나 관점, 평가는 잘못된 것이고, 여기에는 일체의 양보나 협상의 여지가 없다. 가장 좋은 방법은 "그렇구나, 그런가보다. 저 사람은 저렇게 생각하나보다." 하고 넘기는 것이다. '틀린 것'을 '다른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자존심의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


자존감에는 '조건'이 없다. 즉 Pass/Fail이 아닌 것이다. 사랑받을 자격은 누구에게나 있다. 적어도 자신에게는 말이다. 내가 나를 사랑하는데는 '조건'이 없어야 한다. 기말고사에서 내신 1등급을 받아야 내가 나에게 사랑받을 수 있을까? 번듯한 직장은 있어야 내가 나에게 인정받을 수 있을까? 중요한 것은 타인의 평가와 자신에 대한 평가를 혼돈하지 않는 것이다. 여기에서도 선이 중요하다. 타인의 평가는 말그대로 '타인'의 평가일 뿐이다. 궁극적으로는 불필요할 정도로 많은 '평가'들로부터 자유로워진 상태가 자존감이 높은 상태다. 나까지 나에게 평가내릴 이유가 없는데, 어릴 때부터 수많은 평가에 포위당하다보니 언제나, 어디서나, 심지어 내면에서도 자신을 평가해야만 할 것처럼 여겨진다. '타인은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태도를 가지면 좋다. 그들이 보는건 내 껍데기 뿐이라는 사실을 알면 타인의 평가에 전전긍긍하지 않고 자존감을 키울 수 있다.


자존감과 자존심의 균형이 중요하다. 인간은 혼자인 동시에 관계를 이루고 살아간다. 혼자 사는 것이 아니기에 타인으로부터 어떤 평가를 받는지도 삶의 굉장히 중요한 요소가 된다. 이것은 내가 나를 평가하지 않는 것과 완전히 다른 문제다. 오히려 내가 사랑하고 존중하는 내가 타인에게 미움받지 않도록 적절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자존감을 높이는데도 더 도움이 된다. 인간은 자신에 대한 이미지 뿐만 아니라 타인에 대한 이미지도 만들어낸다. 즉 타인에게 '나'란 내가 생각하는 내가 아니라, 타인에게 이미지화된 나의 모습이다. 그 모습을 적절히 가꾸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여기에는 적절한 자존심이 도움이 된다. 타인에게 비춰진 나의 이미지가 함부로 망가지도록 내버려둬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존심의 영역을 자존감으로 끌고 들어와서는 안된다. 한편으로는 '나는 지금 이대로도 충분해. 나는 얼마든지 사랑받을 자격이 있어.'와 같은 마음가짐도 필요하다. 타이트하게 잠근 셔츠의 끝단추를 하나 풀어주는 것이며, 숨통을 트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마음가짐은 과도한 자책이나 자기혐오에 빠지지 않게 하고, 타인의 평가를 과도하게 마음 깊숙이 끌고들어오지 않도록 방어벽을 형성해준다.


우리에게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각자의 쓰임새가 있다. 필요성이 전혀 인정받지 못한 것은 진화 과정에서 도태되어 현재까지 남아있지도 못한다. 간혹 자존심을 대단히 불필요하고 좋지 않은 것으로 치부할 때가 있다. 하지만 적절한 자존심은 분명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 모든 것은 과할 때 독이 된다. 약물에 적절한 복용법이 존재하듯, 우리가 가진 모든 감정이나 생각들 역시 사용법을 익힐 필요가 있다. 조건 없이 자기를 사랑하고 수용해야 한다지만, 살인을 저지르거나 사기를 쳐서 타인의 가정을 쑥대밭을 만들고도 여전히 나는 사랑받을 존재라고 느낀다면 그건 싸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가 될 뿐이다. 모든 사람은 사랑받고 존중받을 자격이 있다. 그것은 나 뿐 아니라 상대방도 마찬가지다. 자존심과 자존감을 균형있게 갖춘사람은 나를 존중하는 동시에 상대방 역시 존중받을만한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이다. 내 자존심이 중요한만큼 상대방의 자존심도 소중히 여겨 그것을 훼손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사람이다. 관계는 쌍방이며, 그것은 자신과의 관계에서도,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자신과의 관계를 회복하려면 외적인 면, 즉 조건을 중요시하는 자존심과 내면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마음, 자존감을 적절히 챙길 수 있어야 한다. 어느 한쪽도 방치해서는 안될 소중한 자신의 일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