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와 공감은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부터

오만과 공감은 공존하지 못한다.

by 작가 전우형

살아가면서 가장 큰 상처와 고통은 대개 사람으로부터 받는다. 하지만 인간관계에서 오는 어려움은 피할 방법이 없다. 타인과의 관계 속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돕고 싶다면 그들이 겪는 사회적 고통을 인정해주어야 한다. 사회적 고통과 같은 심리적 또는 정서적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에게 "그런 건 네가 마음먹기에 달렸다"며 상대방의 마음가짐이나 태도를 탓하거나, "사회생활하면서 그 정도도 힘들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냐?"며 그들의 어려움을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여기거나 엄살떤다는 식으로 치부해버리는 경우가 있다. 이런 말은 그들을 두 번 죽이는 것이나 다름없다.


인간은 각자의 해석에 의해 만들어진 유일하고 주관적인 세상을 살아가며, 그 세상에서 느끼는 고통 또한 뇌에서 통증을 해석한 결과로 나타난다. 마취는 신경을 마비시켜 고통을 없앤다. 정확히는 통각 신호가 뇌로 전달되지 못하게 한다. 신체에 똑같은 일이 일어나지만 마취상태에서는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 현상은 동일한데 우리는 그 안에서 고통을 느낄 수도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심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물리적 고통과 정서적 고통에서 활성화되는 뇌의 부위가 동일하다고 한다. 즉, 정서적 고통이라고 해서 특별할 것이 없다는 말이다. 다리가 부러지는 것이나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린 것이나 똑같은 고통이며, 고통의 정도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 고통에 둔감한 것은 결코 좋은 현상이 아니다. 무통증에 걸린 사람은 뜨거운 냄비를 맨손으로 잡아도 아무런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손은 화상을 입고 문드러지는데도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못한다. 고통은 '신호'다. 고통에 민감하지 않으면 자신을 적절히 보호할 수단을 잃어버리는 꼴이다.


몸과 마음은 연결되어 있다. 몸 상태가 좋지 않거나 피로감으로 힘들 때는 판단력도 흐려지고 후회할 선택을 내리는 경우도 많다. 가급적 오후 늦은 시간에는 중요한 결정을 내리지 말라고 할 정도다. 마음은 몸을 활성화할 동기로 작용해서, 마음이 처져 있으면 신체활동도 덩달아 적어진다. 몸에 존재하는 모든 기능은 사용하지 않으면 퇴화되고 기능이 떨어진다. 마음이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 의지력을 발휘해서 해결하려는 시도는 오히려 역효과를 일으키기 쉽다. 마음에 난 상처도 치유되려면 시간이 걸린다. 넘어져서 무릎이 까졌을 때 마음을 단단히 먹으면 빨리 새살이 돋아날 거라고 믿는 사람은 없다. 상처가 잘 아물려면 깨끗이 소독하고 연고를 바르고 밴드를 붙여주어야 한다. 더불어 상처가 잘 치유될 수 있도록 휴식을 취하고 몸이 여분의 에너지를 생성해 자가 치유에 힘쓸 수 있도록 배려해주어야 한다.


마음의 상처도 마찬가지다.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데도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 에너지는 마음으로부터도 나오지만 몸으로부터도 나온다. 몸이 건강하고 활기가 있으면 마음도 덩달아 가벼워진다. 죽을 것 같던 이별 상황에서 사람들은 식욕이 떨어지고 사람들을 만나지 않거나 외부활동을 중지한다. 차분히 감정을 정리할 수 있는 혼자만의 시간도 중요하지만 정서적 허기는 스스로 채우기 쉽지 않다. 이런 힘든 시기에 옆에서 따뜻한 밥 한 끼를 차려주는 사람만 있어도 큰 힘이 된다. 잠깐의 웅크리는 시기가 지난 후에는 일단 몸에 활기를 불어넣고 일상생활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으로 인해 생긴 상처는 사람을 통해 치유받아야 한다.




칼로 찌르는 것만이 사람을 죽이는 것은 아니다. 상대의 마음을 도려내는 행위를 아무렇지 않게 하는 경우가 있다. 배신은 상대의 심장에 송곳을 박아 넣는 행위다. 공감능력의 결여는 소시오패스의 주된 특징이다. 공감능력은 상대방이 어떻게 느낄지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이다. 상대방이 느낄 고통을 전혀 공감하지 못하기에 스스럼없이 상대방을 배신하고 자신의 필요에 따라 이용하고 버릴 수 있다. 사이코패스는 여기에 더불어 자신의 행위에 대한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자신의 욕구에 따라, 옆에서 함께 웃고 떠들던 사람이나 꼬리를 흔들고 얼굴을 비비던 동물을 태연하게 혹은 아무렇지 않게 죽일 수 있다. 이런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더라도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은 자신의 행위나 말로 인해 상대방이 느낄 수 있는 정서적 고통을 고려사항에 포함하지 않는다. 그러니 십수 년을 모은 쌈짓돈을 투자한 사람들을 내팽개치고 사기를 치거나 유유히 투자금을 들고 사라질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이 그 돈을 어떻게 모아 왔을지, 그 돈이 사라졌을 때 어떤 감정을 느낄지에 대해 일말의 공감능력이라도 발휘되었다면 도저히 저지를 수 없는 일들이다.


가장 위험한 사람은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이 결여된 채 이론과 지식, 기술, 수단 등으로 무장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신이 갖춘 능력을 바탕으로 타인을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에 골몰한다. 쾌락, 즐거움, 능력의 입증, 부의 증식, 지위향상 등을 위해 자신이 가진 능력을 서슴없이 사용한다. 옆사람이 넘어졌을 때 안타까움보다는 승리했다는 희열만이 남는다. 상대방을 고꾸라트릴 트릭을 설치하기도 한다. 치부를 파 해쳐 그들의 삶이 망가지는 것을 즐기고, 정치적 이점을 챙기거나 경쟁우위를 달성하는데 만족한다. 해킹기술을 이용해 컴퓨터를 해킹해서 DB를 폭파시켜버린다. 이들의 공통점은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하다는 점이다. 타인을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자신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점에서 이들은 강력하다. 하지만 결국 이런 행동과 태도는 인간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불러온다. 인간에 대한 존중과 사랑이 결여된 기술과 지식 집약체. 결국 인간 스스로 AI에 의해 대체될 근거를 만들어가는 것이나 다름없다.


공감능력은 인간 본연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된다. 사랑이 모든 관계를 만들었고, 사람 또한 사랑의 결과물이다. 아무리 혹독한 시대를 살더라도 사랑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 이웃에 대한 사랑은 '감사'다. 코로나 시대에 집안에서 안전하고 편안하게 생필품을 받아 쓸 수 있는 것은 택배비 3,000원을 지불했기 때문이 아니다. 원하는 물건이 집으로 도착하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친다. 그들의 노력에 감사하는 것이 인간에 대한 사랑이고 공감의 시작이다. 사람은 결국 관계를 떠나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 자기 스스로 모든 것을 이루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타인을 신경 쓸 이유도 겨를도 없다. 오만과 공감은 공존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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