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를 떠나기보다 관계 안에서 살아남기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 결점을 숨기고픈 마음, 수치심과 같은 감정들은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도록 강요한다. 센척하기도 하고, 담담함과 당당함을 가장하며 외강내유가 된다. 나는 누구도 필요하지 않다고, 독립적인 존재라 주장한다. 하지만 그런 사람일수록 오히려 내면은 헐벗고 외롭다. 혼자로 충분하다는 말과는 달리 자신의 곁을 지켜줄 누군가를 원하며 전전긍긍한다.
속내는 만남이 두렵고, 거절이 두렵고, 사랑을 하는 것도, 받는 것도 두렵다. 상대의 진짜모습이 알고싶지만 정작 그 모습이 자신이 꿈꾸던 모습이 아닐까 두렵다. 그렇게 상대를 미워하게 되고 스스로 이별을 선택하게 될 것이 두렵다. 마음 깊숙이 상대를 끌어당기는 것도 두렵다. 내가 상대방을 더 사랑하고, 상대에게 더 많이 의존하게 될까 두렵다. 상대에게 휘둘리게 될까 두렵다. 나는 여전히 사랑하는데 상대방은 내가 없어도 살 수 있게 될까 두렵다.
관계에 대한 두려움은 본질적으로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며, 결과를 충분히 예측할 수 없는 안갯속으로 걸어들어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안갯속에 길이 있을지, 낭떠러지가 있을지 사람속은 누구도 알 수 없다.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면 누구나 두려움에 떨기 마련이다. 그 안에 내가 편안히 머물 수 있는 따뜻한 공간이 존재한다고 해도 그만한 확신은 함부로 생기지 않는다. 주변사람들의 상처를 본다. 이별의 상처는 관계에 대한 두려움을 강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관계가 깊어질수록 그 사람은 나의 일부가 되며, 그런 이별은 신체 일부가 뜯겨져나가는 듯한 고통을 준다. 가슴을 쥐어짜는듯한 이별의 슬픔은 또 다른 누군가를 만나지 못하게 가로막는다.
자신감이 부족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는 편견을 가슴에 담고 살아간다. 내가 바라보는 나는 누구도 좋아하지 않을 사람이라고 평가내린다. 애써 누군가를 만나더라도 내가 더 참고 노력해야 한다는 마음이 강한 탓에 일방적인 관계에 이끌려가다 지쳐버린다. 상대의 마음에 들어야 한다는 강박에 시름한다. 주눅들어 살고 눈치보기 바쁘다보니 관계 사이에 불편함이 끼어들기 쉽다. 더 잘하고싶다는 마음이 부담스럽게 여겨지고 편안한 관계를 방해한다. 관계에 서툰 자신이 싫어 더욱 자책에 빠지고 관계는 계속해서 두려워지는 악순환에 빠진다.
관계는 어떻게 하면 편안해질 수 있을까? 사람에 대한 두려움은 결국 상대방이 나를 거절할 것이 두려운 것에서 출발한다. 상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괜한 말을 건네 오히려 불편해지는건 아닐까? 괜히 바쁜 사람에게 쓸데없이 부담을 주는 건 아닐까? 상대방의 마음을 신경쓰느라 다가갈 수 있는 관계도 다가가지 못하고 상대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상상하고 전전긍긍하며 힘들어한다. 이론은 빠삭하지만 정작 사람 앞에 서면 하고싶었던 말 따윈 저 멀리 안드로메다로 떠나버리고 백짓장이 된 머리를 부여잡고 고민에 빠지고 만다.
관계는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에 발생하는 함수다. 나는 X에 지나지 않는다. 상대방이 어떤 Y값을 가졌는가에 따라 결과인 Z값은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애초에 나 혼자서 고민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원하는 Z값을 얻기를 바라는 마음을 조금 내려놓을 필요가 있다. 누구나 좋은 결과를 바라지만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기대에 못미칠 때도 많다. 관계를 시작하기 위해선 내가 먼저 X라는 값을 써넣어야 한다. 거기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어려워 말고 편하게 대하는 것은 정답일 수 없다. 어떤 사람은 정중하고 다소 격식을 갖추고 눈치를 보며 접근하는 것을 예의있는 사람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일단 부딪혀 보고 결정하는 것도 정답은 아니다. 관계에는 많은 계산과 시뮬레이션이 필요하기도 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어떤 결과도 받아들일 수 있는 열린 마음이다. Z값을 결정하는 건 내가 아닌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