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동물이라는 존재적 코드

비오는 날 문득 드는 생각

by 작가 전우형

비 오는 창밖을 본다. 바람은 거칠고 하늘은 구름이 가득하다. 유리창을 타고 흐르는 빗방울은 바깥의 풍경을 일그러트리고 세상을 굴절시킨다. 우산은 자신의 넓이만큼만 빗방울을 막아줄 수 있을 뿐이다. 아이에게 떨어지는 빗방물을 막느라 부모는 어깨가 젖는 줄도 모른다.


수분을 가득 머금은 바람은 서늘하게 나를 스쳐 지나간다. 오늘이야말로 너희들이 한 곳에 모아둔 어둡고 악취 나는 것들을 세상에 드러낼 절호의 기회라는 듯, 상승기류를 탄 하수구 냄새는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만 그래도 비 오는 날은 끝내 기분이 좋아진다. 머리 아프고 온몸이 찌뿌드드한 아침을 뒤로하면 상큼한 공기가 온몸의 세포를 깨운다. 생각을 가득 메운 먼지를 씻어내는 빗소리를 듣고 있으면 어제까지의 모든 고민들이 깨끗하게 정리되는 느낌마저 든다.




빨간색 세단 한대가 인도로 물보라를 뿌리며 지나간다. 지나던 모자는 황급히 피하며 쏘아보지만 빨간색 세단은 무심히 갈길을 갈 뿐이다. 엄마의 날카로운 눈빛은 한바탕 욕이라도 퍼부을 것 같지만, 함께 걷던 아이를 보며 애써 그것들을 누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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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그저 지금의 순간이 즐거울 뿐이다. 옷에 흙탕물이 튀는 것 따윈 아랑곳하지 않으며 물보라가 만들어낸 새로운 물웅덩이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본다. 엄마의 굳은 얼굴만 아니었다면 물웅덩이로 달려가 철벅철벅 뛰고 싶은 모양새다. 눈빛만으로도 엄마의 마음을 읽고 있다. 그 어린 나이부터 다른 누군가의 마음을 읽는 법을 배운다.




이것은 뿌리 깊은 본능이다. 사회적 동물로써 가진 또 다른 본능. 인간은 태어났을 때부터 이 본능을 갈고닦기 시작한다. 갓난아이는 엄마의 표정과 눈빛, 목소리 등을 살피며 그것을 흉내 낸다. 엄마가 웃으면 아이도 웃고, 엄마가 울면, 아이도 운다. 아이는 그것이 엄마의 감정인지 자신의 감정인지 알지 못한 채 그저 따라 하는 것으로 감정에 대해 배우기 시작한다. 감수성이라고도 하며, 눈치, 영리함, 사회성 등 여러 가지 말들로 표현되는 인간의 고유한 기능이자 족쇄다.


타인의 눈치를 살핌으로써 무의식적인 본능의 발현을 억제하고, 무자비한 쾌락과 폭력을 예방한다. 타인의 감정과 고통을 공감함으로써 나만의 쾌락을 추구하는 것을 제지시킨다. 사회적 동물이라는 존재에 대한 코드 속에서 생명체라면 누구나 지니고 있을 공격성과 성적 본능 같은 것들을 억누를 수 있다. 한편으로는 당연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유롭지 못하다.


인간은 자유를 갈망한다. 자신의 의지대로 살고 싶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추구하고 싶다. 원하지 않는 생각이나 상상을 하지 않을 수 있는 것도 자유의 파편이다. 하지만 우리는 생각하고 싶지 않아도 어떤 생각이나 상상에 빠질 때가 많다. 누군가를 미워하고 싶지 않지만 자기도 모르게 미워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용서하고 싶지만, 말로는 용서했다 하지만 순간순간 치밀어 오르는 욕지기들이 마음속 화로에 불씨를 던진다. 잊어버리고 싶은 장면들이 끊임없이 꿈에 나타나고, 어떤 이미지가 불현듯 뇌리를 강타한다. 뇌 용량은 가득 찬 것 같은데 사진 파일은 지워지지도 않고, 내가 클릭하지도 않았는데 이미지가 재생된다. 이토록 인간은 자유롭지 못하다.




자유롭지 못하기에 자유를 그토록 원하는 것일까. 완벽하지 못하기에 그토록 완벽함을 추구하는 것일까. 결핍이 제공하는 동기가 우리를 움직이는 강력한 에너지가 되어주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과연 나의 부자연스러움을, 나의 부족함을 어디까지 ‘인정’ 해야 하는 것일까? 현실과 이상의 끊임없는 갈등에서 헤어 나오기 어렵다. 인간에게는 영원한 '만족'이란 존재하지 못한다. 인간은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바라고 동경하며, 내가 가진 것과 상대방이 가진 것을 비교한다. 빈자는 부자를 부러워하지만 그 부자는 다른 부자를 바라보며 자신을 가난하다고, 부족하다고 여긴다. 마음의 부유함은 자리를 잃고 자신이 얼마나 안타까운지, 그것만을 곱씹는 인생을 살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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