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지도 웃지도
팽성에서 카페를 마치고 가던 길에 늘 들르던 나무가 있다. 하늘이 핑크빛으로 물들면 돌아오지 않던 시간을 두고 마음문을 두드리듯이 마주 보며 서 있던 그 나무. 이름을 지어주고 싶었는데 그마저도 내 욕심인 것 같아, 그저 나무야 나무야 그렇게 불러보기만 해도 하루치의 고백을 모두 들어주는 것 같던 나무. 봄이면 하나둘 여리고 곧은 잎사귀들 내다 초여름 장맛비 지고 나면 어느덧 무성한 모습이 되어 나를 놀라게 했고 새삼 곱디고운 가을저녁 아래 앉아 바라보면 금세 서글픈 몸짓으로 나를 울지도 웃지도 못하게 만들어버리곤 했다. 그러다 또 겨울. 터를 많이 낸 어찌 보면 앙상한 나무의 두 눈은 차라리 개운해 보였고 우리 또 한 해를 살아내었구나, 묘한 안도가 그맘때 이미 깊어버린 저녁 어둠 앞에 살며시 뿌리내리곤 했다. 작년 중순을 넘어서며 카페와 교회가 이전했고 자연스레 나무를 만날 일도 줄었다. 그러다 우연히 생일즈음해 가까운 곳이라도 다녀오고픈 마음에 생각 없이 핸들을 꺾으며 길을 헤매던 중 어여쁜 봄빛으로 저녁하늘이 물드는 것을 보았다. 여섯 시쯤이었나. 해가 벌써 이만큼이나 길어졌구나. 아직 사위는 푸르고 그럼에도 어느 한쪽 하늘은 여러 빛깔로 세세히 물들어가던 시각. 나는 그 하늘을 보았을 때 오로지 나무 생각밖에 나는 것이 없었고, 급작스러운 두근거림을 느꼈다. 너무 오래 보지 못했어. 거기 그대로 있긴 할까. 기다려준다는 사실을. 거기 있어준다는 사실을. 나는 너무 쉽게 생각했구나. 가빠오는 숨처럼, 점점 멀어지는 수면을 향해 팔다리를 젓는 기분으로 달려간 그곳. 보이지 않는 곳에서부터 불어오던 바람. 늘 멈춰 선 채 건너편을 바라보던 작은 공터. 밤이면 빛 하나 들지 않던 꿈속의 어둡고 짙은 공간. 때로 오래도록 머물며 책 한두 페이지를 넘기다 푸른 진주처럼 박힌 달도 한번 올려다보고 나무가 다가오는 거리만큼 나의 마음에도 숨구멍을 뚫어가던 시절. 때로 빈 공간 같던 카페에 앉아 누군가를 기다릴 때면 막막함인지 서글픔인지 인생의 작은 목소리나 귀뚜라미 울음소리마저 반갑던 그 고요의 이중적인 면에도. 나는 늘 기다리는 입장으로 하루의 긴 시간을 흰머리 세듯 변하지도 그렇다고 그 모습 그대로이지도 않는 나와 너와 세상의 여러 가지 입장들을 헤아려보곤 했다. 그런 마음이면 시간은 오래 머물기도 했거니와 보이지 않던 것들도 볼 수 있을 것 같기도 했기에 나는 오랜만에 그 길에서 그런 기분을 느꼈다. 익숙한 도로. 익숙한 풍경. 익숙한 냄새. 익숙한 시간. 나무는 거기 그대로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이 반갑기도 가슴이 아리기도 했다. 어떤 생명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줄곧 한자리를 터삼아 평생을 보낸다는 것. 그곳에서 자신에게 불어오는 바람과 허락된 햇빛과 구름과 달. 지나치는 타이어 소음과 빗방울. 때때로 뉘엿뉘엿 초저녁을 밝히던 전구. 어슴푸레 거기 어딘가에서 자신을 바라보던 숭한 눈동자까지. 받아들이고 버티는 힘이 누구보다 강하고 그렇기에 나를 안심시켜 준 나무. 나도 그런 사람이고 싶다고, 또 한 번 나무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