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내가 좀스럽게 느껴질 때가 있다.
저녁을 먹을 때였다. 밥알이 까칠했다. 점심을 차리면서 냉장고에 있던 밥을 전자렌지에 돌렸다. 아내와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그 이야기를 했더니 눈을 크게 뜨며 이렇게 되물었다. “그 많은 밥을 다 돌렸다고?” 나는 그게 뭐 어떠냐는 듯 당당하게 “응”이라고 대답했다. 한숨을 참으며 아내는 말했다. “그 밥 이제 버려야겠네.” 나는 “왜 버려?”라고 물었다. 아내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대답했다. “냉장고에 있던 밥이라 볶음밥 할 때나 쓰려고 했는데 전자렌지에 다 돌려버렸다니. 많이 남아있지?” “응” “그 밥 이제 맛없어서 못먹어.” “...”
나는 말문이 막혔다. 그 후로 입을 다물었다. 기분이 좀 그랬다. 애들 먹을 점심밥이 부족해서 돌려먹였는데 그게 이렇게 핀잔을 받을 일인가. 내가 실수 한 것 같으면서도 수긍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런데 그 까칠한 밥이 저녁밥상에 올려져 있었다. 아내와 나의 밥그릇에. ‘아까 맛없어서 못먹겠다고 해놓고는...’ 나는 버릴 밥을 먹는 것 같아 기분이 더 나빠졌다. 속으로 짜증이 치솟았다. 밥이 무슨 맛인지도 알 수 없을 정도였다.
잊어버리려고 급히 물을 말아왔고 한 숟가락 가득 떠서 입에 밀어넣었다.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밥알들을 씹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버릴만큼 맛없는 밥을 왜 나와 아내가 먹어야 할까? 그렇다고 쉰 밥을 애들을 먹일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결국 그 밥을 먹을 사람은 나 아니면 아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배알이 틀렸다. 힘들게 일하고 온 아내가 쉰 밥을 먹는 것도 싫었고, 부모라고 해서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게 마음적으로 받아들여지지도 않았다.
생각하면 할수록 기분은 더 나빠졌다. 내가 아이들을 많이 사랑하지 않는 부족한 부모인 것처럼 느껴지는 것도 싫었고, 당연한 듯 아내와 내 밥그릇에 딱딱한 밥을 담는 현실도 싫었다. 자식들을 나은게 죄는 아닌데 자꾸만 죄인이 된다. 마음도 그렇고 실제로도 그렇다. 내가 아직 부모의 삶을 받아들이지 못한것일까?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좋은 부모란 뭘까? 여전히 나는 아이들과 나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한다. 전직기간동안 집에서 쉬게 되면서 그런 생각이 들곤한다. 왜 모든 것은 부모의 몫일까. 집이 지저분해진 것도 내 탓, 아이들이 밥을 안먹는 것도 내 탓이다. 내가 어지럽힌 집이 아니지만, 지저분한 집을 보면 내가 마음이 무겁고, 밥을 안 준 것도 아니지만 치우지 않은 채 먹던 밥그릇이 남아 뒹구는 것을 보면 마치 치우지 않은 내가 잘못한 것 같이 느껴진다. 나는 밥을 먹지 않아도 싱크대에는 설거지거리가 가득하고, 내가 옷을 벗어던지지 않아도 세탁기는 빨랫감들을 토해낸다.
나는 아이들을 책임져야 하는 부모이지만, 왜 나는 그 모든 것들에 죄의식을 느껴야만 하는 걸까? 누가 그렇게 다 네 책임이냐고 캐물어서가 아니다. 그냥 살다보면 그렇게 된다. 매일 아무렇지 않은 듯 살고,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지만, 가끔 ‘그러려니’가 안되는 날이 온다. 그날은 왠지 비참해지고 그런 생각을 하는 내가 참 좀스럽게 느껴진다.
사랑하면 다 되는 줄 알았다. 결혼하면 부부가 되고 아이를 낳으면 부모가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게 참 쉽지 않다. 자꾸만 창밖을 멍하니 보게 되고 내가 뭐하고 있는 건지 생각해보게 된다. 무엇을 바라고, 무엇을 원해서 나는 결혼을 했고, 아이를 가졌을까? 내가 원하던 삶의 모습이 이런 것이었을까? 이게 부모의 삶인건가. 물론 아이들은 소중하고, 그들에게는 죄가 없지만, 나는 무슨 죄를 지었길래 남 뒤치다꺼리나 하면서 살아야 하는걸까? 그래. 나는 지금 아이들을 ‘남’이라고 여기는구나. 이게 부모로서의 내가 도달한 현재 위치겠지. 그렇게 또 다시 자책하는 나를 보게 된다.
예고도 없이 내 삶속에 불쑥 불쑥 끼어들어오는 아이들. 그리고 이미 예전부터 완벽한 부모로 변신해서 엄마의 삶을 살아가는 아내. 나는 이들에게 고마움과 미안함, 부러움, 열등감, 외로움, 그리고 섭섭함과 같은 복잡한 감정을 느낀다. 사랑과 증오. 이 변덕이 심한 애증의 관계 속에 또 하루가 저물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