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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기휴업 Aug 28. 2022

2022/08/28

  천변을 달렸다. 언젠가 구입한 러닝화 한 짝이 양 발을 강하게 압박하는 걸 느끼면서 오래도록 달렸다. 되돌아갈 길이 얼마나 먼 지 잊은 채로, 천변의 끝에서 끝까지. 얼마나 달린 걸까. 길이 없어 더 이상 달리지 못하게 되었을 때 해가 지고 있었다. 기능성이랍시고 나온 티셔츠는 그 기능을 하지 못하고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와 부쩍 뜨거워진 몸을 식혀주기 시작했다.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오늘은 체육관을 쉬어야지. 이 정도면 충분해. 한낮에는 어딘가의 세 모녀가 생활고를 비관하며 자살을 했다는 뉴스를 들었다. 아직 8월. 다시 신발끈을 고쳐 묶고 반대 방향으로 돌아섰다. 집까지 달려갈 체력이 남아 있기는 했을까. 귀에 대롱거리는 이어폰에서 어딘가의 무슨 정당이 당파 싸움으로 시끄럽다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정의 없는 힘이 폭력이면 힘없는 정의는 무엇인가. 구름이 없어서였을까. 붉은빛으로 물든 하늘이 높아 보였다. 가을이 오고 있는 듯했다. 눈시울이 뜨거워지려 할 때 다시 발목에 힘을 주었다. 힘없는 나의 양발이 다시 땅을 내딛기 시작했다. 그렇게, 어딘가의 러너가 천변을 다. 그렇게, 오래도록, 저녁내, 무능한 러너가 렸다. 2022/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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