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기휴업 Aug 29. 2022

2022/08/29

  문자가 왔다.

  "형, 잘 지내시죠? 저 한국 왔어요."

  캘리포니아 청년사업가 홍피터였다. 내가 아는 한 나보다 사업을 더 많이 망해본 유일한 녀석. 나는 고작 두 번 망했지만 우리 피터 씨는 나보다 어린 주제에 세 번 망했다.

  "갑자기? 연락이라도 하고 오지 그랬어."

  "무슨 수술을 좀 받기로 했는데 스케줄이 갑자기 바뀌는 바람에 급하게 온 거예요. 형님은 요즘 어디 계세요? 한 번 봐야죠."

  수술? 미국이라는 나라에 걸맞는 뱃살을 가진 녀석의 모습을 떠올렸다. 어디 몸이라도 안 좋은 건가 싶어 걱정스레 물어보니 성형수술이란다.

  "미친놈아. 한국까지 와서 성형이냐?"

  "눈 좀 키우려고요."

  녀석은 강남의 모 유명 성형외과에서 수술을 끝내고 거즈를 떼자마자 내가 사는 곳으로 날아왔다. 오랜만에 만난 홍피터는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고 덩치가 더 커져있었다. 누가 봐도 교포 같았다.

  "요즘 뭐하냐?"

  내심 녀석이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길 바라면서 던진 질문이었다. 나의 유일한 버팀목이 멀쩡한 사업체라도 운영하고 있지는 않을까 내심 불안했기 때문이다.

  "저 요즘 놀아요. 경원이는 요즘 뭐하고 산대요?"

  그럼 그렇지.

  "요즘 을지로 무슨 펍 같은 데서 일한다던대."

  "그 자존심 쎈놈이?"

  "자존심이 문제겠냐. 우선 먹고살아야지."


  녀석의 스케줄은 2박 3일이었다. 다음날 출근을 하며 녀석에게 동네 구경 좀 하고 있으라고 문자를 남겼다. 주방에는 아침부터 라드 냄새가 퍼져왔다. 임 팀장이었다. 한식당에서 웬 라드인가 싶어 물어보니 내일 직원 식사로 짜장면과 탕수육 좀 만들어 볼까 한다는 말을 했다. 임 팀장이 만드는 짜장과 탕수육은 일품이다. 신라호텔 주방장 출신이었던 아버지를 도와 주방에서 오래도록 일한 경력 덕분이다. 그렇게나 맛있는 중국음식을 만들던 임 팀장은 중국집을 운영하다 망하고 우리 주방에 들어와 십 년 넘게 성실 근무 중이었다. 오랜만에 맛있는 중국음식을 먹을 기회였는데, 다음날 휴무라는 사실에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퇴근 후 피터를 다시 만났다. 우리는 밤낚시를 갔다. 쥐꼬리빤스만 한 동네에서 2박 3일이라는 일정을 소화시키기 위한 내 나름의 방편이었다. 자정이 넘은 심야. 녀석과 나는 낚싯배에 올라 시커먼 바다에 끊임없이 미끼를 던져댔지만 수시간이 지나도록 그럴싸한 게 나오지 않았다. 우리가 낚은 거라고는 우럭 3마리가 전부였다.

  "캘리포니아에서 날아왔는데 이게 전부네요."

  녀석은 실소를 금치 못했다.

  우리는 낚시 따위는 체질에 맞지 않는다며 장비를 접고 배 한편에 자리를 잡고 내가 가져온 칼 가방과 도마를 꺼냈다. 녀석이 비늘을 벗기면 내가 포를 떴다. 그럼 녀석이 그걸 다시 받아 껍질을 벗기고 회를 쳤다. 내가 칼과 도마를 정리하고 초장을 준비하는 사이 녀석이 라면을 두 개 끓여왔다. 뼈와 생선살을 넣고 고춧가루와 다진 파로 마무리가 되어 있었다. 나는 거기에 초장과 다진 마늘을 한 숟갈씩 더 넣었다. 낚싯배가 파도 위에서 가볍게 흔들거렸다.


  피로했지만 피터를 마중하기 위해 터미널로 나갔다. 아침내 잠을 설친 건지 녀석의 얼굴은 더욱 불어 있었다. 버스 시간이 좀 남았기에 우리는 대합실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형. 혹시 유리 소식 들은 거 있으세요?"

  녀석이 조금 겸연쩍은지 머리를 긁어대고 있었다.

  "아니. 나도 연락 끊긴 지 한참 됐어. 페이스북 친구 목록 뒤지면 나오 긴 할 텐데"

  "유리가 전에 쯔유 끓이는 법 물어봤는데. 그때 답장 안 했거든요"

  내 기억이 맞다면 유리는 피터의 소바를 유난히 좋아했다. 여름이 되면 우리는 랏지 주방에 모여 피터가 끓여주는 소바를 먹고는 했다. 유리는 피터의 전 여친이었다.

  "마지막으로 연락됐을 때는 무슨 언론사에서 일한다고 들었는데. 요리 관련 글 쓴다고."

  "그때 레시피 안 보내준 거 너무 후회돼요."

  "걔도 요리 전공인데 알아서 잘 해먹었겠지."

  "그런 뜻이 아닌 거 형도 알잖아요."

  피터는 유리에게 자신의 레시피를 남기고 싶었던 거다. 나는 알면서도 모른 채 했다.

  "다들 이제 요리는 안 하나 봐요."

  "그러니까."

  우리는 별말 없이 한참을 앉아 있었다. 대합실은 어디론가 떠나기 위해 모인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피터 시계를 일별 하더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음에는 형이 캘리로 와요. 거기서도 낚시 한 번 해요."

  "너무 쉽게 말하는 거 아니냐? 무슨 인천이나 군산도 아니고."

  "저는 언제든 거기 있으니깐 아무 때나 오세요. 내년도 좋고 십 년 뒤도 좋고."

  나는 그 말을 웃어넘겼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주방에 들러 남은 짜장과 탕수육을 조금 받아왔다. 그걸로 저녁 식사를 해결할 수 있었다. 맛있는 짜장과 탕수육이었다. 허기가 졌던 나는 한 번은 생면을 삶아 짜장면을 먹었고 한 번은 짜장밥을 먹었다. 그 음식이 직원 식사로 소비되고 있다는 게 조금 우스웠다. 한 끼 때운다는 생각이 조금 미안할 정도였다. 임 팀장도 마음먹으면 다시 해볼 수 있을 텐데.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남은 짜장과 탕수육을 밀폐용기에 담았다. 2022/08/29




작가의 이전글 2022/08/28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