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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기휴업 Oct 14. 2022

2022/10/14

편지

  사실 그동안 많이 쓰지도 않았다. 재능이 없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매일 두세 시간씩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것뿐이었다. 친구 하나는 이딴 삐쩍 곯은 문장들이나 늘어놓으려고 그 많은 시간들을 그냥 앉아서 보내는 거였냐며 물었다. 친구의 혜안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는 녀석에게 네가 지적한 것처럼 거기 적힌 문장들은 누군가가 툭치면 그냥 무너질 앙상한 것들이며 그것들을 모두 치운다면 결국 너무나도 간단한 한 줄의 이야기만이 남을 거라고 말했다. 그저 사람들과 대화하는 걸 부끄럽게 여기는 내가 글에서도 저의를 단박에 내비치지 못하고 빙빙 에둘러 마른 나뭇가지 같은 문장들을 덮어 놓은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다. 깊은 철학이나 두꺼운 사유 같은 걸 지니지 못했으니 이쑤시개 마냥 짧고 가느다란 한 줄의 이야기를 꾸며내기 위해서는 수 없이 많은 쓰레기 같은 문장들을 쏟아낼 수밖에 없었다.


  친구에게 나의 글에는 그러한 문제가 있는 글이니 네가 아닌 누가 보더라도 삐쩍 곯아 보이는 게 당연할지도 모른다고 이어 말했다. 친구는 껄껄 웃으며 나에게 뭘 그렇게까지 말하냐며 그렇게 말하는 건 마치 비하를 하는 것 같아 좋아 보이지 않는다면서 그만하라는 말로 나를 달랬다. 그냥 부끄러웠을 뿐이었다고 나는 답했다. 밑천이 드러나는 건 누구나 부끄러운 일이 아니냐고 물으니 친구는 그렇지 않다고 비워진 건 다시 채울 수 있으니 좋은 거라고 답했다.


  신춘문예를 앞두고 작가님에게 카톡을 보내려고 하는데 이걸 어떻게 정중한 글로 원고를 봐달라고 부탁을 드릴지 고민이 되었다. 경어를 써야 하는 건지 그렇다면 얼마나 높여야 하는 건지 이모티콘을 쓰면 가벼워 보이지 않을지 같은 문제들이었다. 고작 카톡 네 줄을 적어 보내는 데 15분이 소요되는 나를 발견하고는 글에 대한 재능을 다시 한번 고민하게 되었다. 많이 쓰면 는다는데 그동안 내가 배설해온 글들은 모두 어디로 가버린 것이었을까. 초등학생들도 1분이면 적을 글을 쓴다고 깝죽거리고 다니는 습작생이 15분이나 걸려서 쓰고 있었으니 그런 고민은 당연할 수밖에 없었다.


  더 큰 문제는 내용이었다. 그렇게 쓴 고작 4줄의 카톡에는 비문이 섞였고 띄어쓰기도 틀린 곳이 있었으며 문장과 문장은 유기적으로 연결이 되지 못한 채로 모두 따로 놀고 있었다. 내용이 전달이 되는 것과는 별개로 그건 절대 좋은 글이라고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신춘문예를 말하는 순간에 작가님에게 그런 글을 적어 보내려고 했던 것이다. 결국 내가 선택한 방법은 전화 통화였다.


  오늘 나를 괴롭힌 문제는 이런 것이었다. 말 한마디로 정리될 의도가 어쩔 때는 수많은 것들에 뒤덮이고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 살면서 목도하고 겪었던 그런 순간이 얼마나 많았으며 그때마다 얼마나 후회하고 반성했던가. 나는 경험에서 배운 게 전혀 없는 사람 마냥 그 실수를 반복해댔다.


  어제도 나는 너와의 상황을 어렵게만 만들고 있었다. 그저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면 됐을지도 모른다. 너의 목소리에서 네가 원하는 걸 읽었으면서도 나는 두껍게 쌓아 올려진 무언가에 불편함을 느끼고 의도적으로 그것들을 피해 다녔다. 복잡한 말들을 모두 걷어내고 제대로 된 말 한마디만 전하면 될 테지만 그러기에는 내가 싸질러놓은 메마른 문장들이 너무나도 많다는 걸 느꼈다. 앙상한 문장들 사이로 숨어든 나의 의도가, 나의 마음이 어떻게든 전달이 되길 바라며 글을 적을 뿐이다. 또 같은 실수를 반복할지도 모른다. 나는 기억력이 형편없고 생각은 짧으며 실수가 많은 그런 사람이기에 분명 반복되겠지만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볼 일이기에 지금이라도 이렇게 당신에게 솔직해지고 싶었다. 결국 내가 전하고 싶은 마음이라는 건 가장 단순한 몇 글자로도 충분히 전해질 수도 있는 말이다. 하지만 또 그렇게 단순하게만 바라보기에는 나의 마음이라는 게 쉽사리 표현되지는 않는다. 두껍게 쌓인 것들을 치우기 위해서는 결국 그만큼의 노력이 필요한 법이라는 걸 나는 몰랐다. 얼마 전 나는 끊임없이 쓰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게 내가 살 길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당신에게 마음이 전해지기 위해서는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글을 써야 할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나는 바란다. 언젠가는 당신에게 온전한 나의 마음이 전달되기를. 언젠가는 내가 당신에게 그런 글을 선물할 수 있기를.   


Lamp - 恋人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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