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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기휴업 Mar 21. 2023

2023/03/21

짧은 글 연습

 차량 표면의 물기를 전부 닦아내고 실내 세차를 시작했다. 미처 데워지지 않은 차 안의 공기는 조금 서늘했다. 나는 먼저 시트를 죄다 뒤로 재껴놓고는 세 발자국 정도를 물러서서 차를 바라보았다. 기울어지는 햇살은 방금 씻겨져 나온 나의 작은 붕붕이를 제법 옹골차보이게끔 만들었다. 반짝반짝. 초봄의 햇살은 겨울의 그것처럼 그 결이 아직 단단하고 선명했다. 왜 그간 세차를 미뤄왔을까. 알 수 없는 해방감이 느껴졌다. 묵힌 때를 벗기면 마음도 가벼워진다는 걸 왜 잊고 살았을까. 할 수 있었지만 하지 않았다. 쓸 수 있지만 쓰지 않았고 달릴 수 있지만 달리지 않았다. 중요한 순간이었다. 나의 마음이 어딘지 모를 중요한 순간을 지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차 안에 남은 몇 가지 흔적들을 지워내며 오래전 그날 그 안에서 나를 다시 발견했을 당시 아버지가 느꼈을 슬픔을 생각했다.

  "다 치워버렸다. 내가 이번 일에 대해서 다시 말하는 일은 없겠지만 그걸 치우는 내 마음이 어땠을지 네가 조금만 이해해 주기를 바란다."

  나는 트렁크에서 버킷을 챙겨 수돗가에서 물을 담아왔다. 오랜 기간 물을 머금은 적 없었던 행주는 쉽사리 젖어들지 않았다. 손에 힘을 주어 행주에 물을 먹이고는 다시 그 물을 짜내어 실내를 닦기 좋은 정도로 만들었다. 허리를 숙여 차량 깊숙한 곳에 손을 뻗어 행주를 닦아내자 검은색의 그을음이 닦여져 나왔다. 얼마나 오랫동안 이곳에 숨어 있었던 걸까. 걸레질을 마치고 해가 기우는 쪽을 바라보았다. 시리게만 보였던 그 빛은 어느새 붉은색으로 변해 있었다. 눈이 간질거렸다. 저 빛 때문이겠지. 노을 탓이겠지. 나는 새까매진 행주를 버킷에 던져놓고는 잠시 시트에 몸을 뉘었다. 짧은 수면 탓인지 눈이 자꾸만 감겨왔다. 속상했던 일들이 머릿속을 스쳐갈 때 행복했던 순간들이 같이 떠올랐다. 세차를 미루지 말 걸. 묵때 따위 진작에 전부 닦아낼걸. 해는 자꾸만 기울어갔다. 나는 그렇게 눈을 감은 채로 작은 후회를 했다.


gymnopedie No.2 - Erik Sat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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