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씩 핸드폰만 봐요. 세상살이가 다시 귀찮아져요. 스님 말씀도 잘 들어오지 않아요. 환경오염이 심해진다는 뉴스를 보던 사람들이 겁이 난대요. 스님에게 어떻게 살아야 할지 물으니,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어떻게 살긴 어떻게 살아. 그냥 살아야지. 뭐. 석범이 형이 운영하는 체육관은 아마추어 메달을 긁어모은대요. 국제심판 사진들을 보내오며 프로 안 할 거면 와서 체육관이나 도와달래요. 프랑수아는 결국 미국에서 시민권 따서 커밍아웃한 태민이랑 같이 잘 산답니다.
티비를 보면 가끔 세상이 무섭게 느껴져요. 엉망진창 살다가 유학 다녀와서 사람이 싫어지고뻔뻔하게 숨 잘 쉬고 사는 나 같은 호로새끼보다 더러운 놈들이 널린 게 세상인데 내가 못 살 이유는 뭔가 싶기도 하고. 쌓여가는 습작을 보며 나 같은 놈도 글쟁이는 될 수 있는 건지 궁금하고. 문 닫은 체육관은 도대체 어디로 갔길래 나는 계속 프로가 못 되는 건지. 혹은 내 속 어딘가에 또 숨겨놓은 핑계거리가 있는 건지. 이따위로 살면서 해인사와 금산사 사진을 나란히 놓고 어디 시설이 더 좋은지 비교하고 있는 내가 어이없지요.
우아한 의자에 앉아 예쁜 색의 술잔을 바라보고 사진이나 찍어대면서 머리를 텅 비우고 매번 똑같은 쓰레기로 그 속을 다시 채우고 깨끗하게 다듬어진 머리로 비싼 시계를 자랑한 뒤 아침마다 숙취로 변기를 붙잡고 다 쏟아내며 살아볼까. 부모님은 늙으셨지만, 돈많은 분들이니 그 분들 걱정까지 할 필요는 없겠지요. 지용이는 자리를 잡아가고 좋은 차를 타고 예쁜 부인 태우고 안전 운전하고. 디에고는 고향 투스카니로 돌아가 아버지가 운영하던 페인트 회사를 물려받아 빨간색 차 사진을 올려대지요. 진호네 식당은 잘되는 건지 인터뷰에서 어쩌고저쩌고 거리면서 마시시도 않는 와인을 보내와요. 망할 놈이.
형철이가 들려주는 동규와 의령이 소식도 결국 사람 사는 이야기들. 태준이 녀석은 잘 나가던 핸드폰 매장 정리하며 나한테 재고폰 덤터기를 씌우려고 하는데 그게 녀석답네요. 시원이 놈이 뿌려진 나무는 얼마나 컸는지 아무도 몰라요. 김진은 방송국에 취직해서혼자서 잘 살고 있지요. 강한 사람이에요. 오랜만에 안부 묻는 고다 형은 아파트가 30억이 됐다고 웃어대네요. 난 마흔이 코앞인데 흔들거리면서 사는 게 뭐가 이리 우스운지 혼자서도 잘 웃고 다니죠. 앞으로도 이렇게 밥 많이 먹고 열심히 일하고 저축해서 마흔 되면 결혼할래요. 딴따라 포기하고 딸에게 우쿨렐레 연주해주는 낙으로 사는 성호같이, 프사에는 맨날낚시 사진 올려대는 친구 녀석들 마냥. 여든으로글쟁이 돼서 책을 내고 그림배우는 혜선이네 엄마처럼살래요.
어제도 밥 많이 먹고 잠들지 못하게 계속 말을 걸고 짧은 머리를 쓰다듬고. 아침에 일어나 둘러보니 당신이 없어요. 냉장고를 열어보니 알루미늄 포일에 싸인 샌드위치랑 메모 한 장. 너와의한 때. 그 한 때는 우리에게 남은 시간. 그 글과 샌드위치는 조금 차가웠지만, 소스는 좀 많았지만, 그대로 좋았어요. 현관문을 열고 나오자마자 보이는 너의 골목 동네. 의자에 앉아서 담소를 나누시던 할머니 두 분과 눈을 마주치고. 안녕하세요. 오늘 날씨가 좋네요.그리고 생각했어요.톡을 남겼어요. 우리 무조건 행복하자고요. 그렇게들 사는 거니깐, 우리도 행복하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