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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희걸 Oct 21. 2023

팀장? 그런 걸 뭐하러 해요?

팀장도 어려운데 실무형 팀장이라

책임만 크고 외로운 자리팀장

1) 리더가 되지 않으려는 사회 분위기
2) 리더는 책임이 많은 존재다.
3) 리더는 외롭다.


회사 후배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다. 후배들의 롤모델이 임원이나 팀장이 아니라 평직원으로 정년퇴직한 선배였다. 그 선배는 잠시 팀장이 되었지만, 곧 조직 개편이 되어 담당한 팀이 없어지면서 직장 생황의 대부분을 팀원으로 마쳤다. 후배들은 하나같이 팀장을 할 이유가 딱히 없다고 이야기했다.


“팀장 연봉이 조금 높긴 하지만 그 정도 연봉으로 온갖 책임을 떠안기니 싫어요.”

“팀장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수많은 회의에 참석하는데, 시간 낭비일 뿐이에요. 의미 있는 회의가 없어요.”

“실무는 눈에 보이는 결과라도 있지만, 팀 관리는 내가 노력한다고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 같네요.”


주니어들이 팀장이 되기를 꺼리는 건 첫째, 책임이 크기 때문이다. 내 첫 번째 팀장님은 위치가 올라갈수록 연봉을 올려주는 건 욕 먹을 일이 더 많아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연차가 낮을 때는 그 말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지 못했다. 이제는 ‘욕먹을 일’이라는 게 책임을 의미한다는 것을 잘 안다.


회사 일은 언제나 좋은 결과로 끝나지 않는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상사가 의사결정을 잘못하는 바람에 엉뚱한 방향으로 간다. 때로는 고객이 변덕을 부려 노력한 결과가 수포가 된다. 경쟁자가 우리보다 열심히 해서 좋은 기회를 낚아채기도 한다. 이렇게 일이 틀어졌을 때, 책임을 맡은 만큼 욕을 먹는다. 실패할 가능성을 생각하면 책임이 적을수록 마음이 편하다.


책임과 보상이 같은 양으로 증가하면 어느 정도 위안이 될 텐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책임은 많이 늘어나지만 보상은 조금 늘어난다.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당연히 책임을 회피하는 편이 현명한 것이 사실이다. 예전에는 금전적인 보상 대신에 명예라는 보상이 주어졌다. 팀장의 권위가 높았다. 또 팀장이 되면 머지않아 임원이 될 것이라는 커리어 패스가 희망이 되었다. 이제는 아주 뛰어난 커리어를 가지지 않은 이상, 팀장-임원 커리어를 기대하는 사람은 드물다.


팀장이 되는 순간, 워라밸이 망가진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다. 팀원은 당당하게 목소리를 낸다. 불필요한 야근에 항의하고 원하는 때 휴가를 쓰는 것은 당연한 권리다. 팀장은 언제나 눈치를 본다. 리더라는 이유만으로 휴식보다 회의가 우선이고, 실무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서는 야근도 불사한다.


리더의 자리는 외로운 법이다. 권한을 갖게 된다는 건 칼자루를 쥐게 되었다는 뜻이다. 이전까지 아무리 동료들과 친하고 허물없는 관계였다 해도 이제 당신이 칼자루를 쥐었음을 모두가 안다. 동료로서는 사석에서 하는 말 한마디 한 마디가 조심스럽다.


모두가 겉으로 내색은 하지 않지만, 팀장과 팀원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생긴다. <실리콘 밸리의 팀장들>에서 저자인 줄리 주오는 ‘솔직한 리더’가 되어 구성원에게 신뢰를 받으라고 조언한다. 이것은 진정성을 가지고 팀원에게 먼저 다가서라는 의미다. 팀원에게 먼저 마음을 열라는 의미다.


그런데 정작 팀장 자신 속을 털어놓고 위로받을 사람이 없다. 리더의 자리는 외로운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다양한 솔루션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위로하고 해소할 장치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외로움과 함께 해야 하는 자리라는 건 맞는 말이다.



실무형 팀장은 어떻게 만들어지나?

1) 지원자가 많지 않다 보니
    보통 일 잘하는 사람이 실무형 팀장이 된다.
2) 거절하지 못해 팀장이 되는 과정을 거친다.
3) 아무도 되지 않으려 하는 팀장이다 보니 
    '하필 내가 왜'라는 늪에 빠진다.


형석의 팀은 회사가 판매한 시스템을 고객사의 요구에 따라 유지 보수한다. 업무의 특성상 개발자로서의 역량 외에도 고객과의 소통 능력이 중요하다. 형석은 이 두 가지를 적절히 수행한 덕분에 항상 실적이 좋았다. 고객 만족도와 신규 서비스 창출이라는 두 가지 목표에서 뛰어난 성과를 올렸다. 혼자서 팀 실적의 70%를 달성한 적도 있었다.


어느 날, 본부장이 형석을 불러 팀장 자리를 제안했다. 본부장은 그가 이직하면 팀 실적에 큰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했다. 형석을 직책 승진시켜서 연봉과 팀장 포지션을 이용해 붙잡아 두려는 심산이었다. 현재의 팀장이 다른 팀으로 가야 했기 때문에 새로운 팀장을 뽑아야 했는데, 선뜻 팀장을 맡길 사람이 보이질 않았다. 그냥 가장 일 잘하는 사람을 뽑으면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형석은 팀장이 될 생각은 없었지만, 현재의 직무에 만족했기 때문에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이전과 같이 자기 일을 하면서 때때로 팀원의 문제를 돌봐주면 되리라고 쉽게 받아들였다. 그런데 막상 팀장이 되고 나자 후회가 몰려왔다. 매일 같이 면담을 신청하고 하소연하는 팀원들 때문에 고유 업무를 할 시간이 없었다. 고객사의 요구가 과다하다는 사람, 출장이 잦다고 불평하는 사람, 담당 프로젝트를 바꿔 달라는 사람. 불만을 듣다가 하루가 저물었다.


리더십 워크숍에서 만난 형석은 "요즘 팀장은 유치원 교사와 하는 일이 비슷하다."라고 푸념했다. 온갖 불만을 들어주고 달래는 일이 대부분이니 유치원 선생님과 역할이 비슷하다는 말이다. 팀원들이 더 큰 성과를 내도록 돕는 것이 팀장이라고 생각했는데 실망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회사는 종종 팀원 중에 하이퍼포머를 팀장으로 선발한다. 일을 잘하면 리더로도 훌륭하게 역할을 해낼 것이라는 기대가 생긴다. 스포츠팀의 사례를 보면 뛰어난 선수가 반드시 훌륭한 감독으로 성장하는 건 아니다. 독일을 2번이 월드컵 우승으로 이끈, 요아힘 뢰브 감독은 선수 시절 차범근에게 가려 빛을 보지 못하던 선수였다. 실무자로서는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지만, 팀 관리에는 뛰어난 성과를 보이는 사람이 많다.


과거에는 차상위자가 팀장 직책을 물려받는 시스템이 존재했다. 팀의 차상위자는 자신이 팀장이 될 것이 뻔히 예상되기 때문에 팀장을 관찰하며, 장기간 조직 관리 스킬을 습득했다. 팀장도 그를 후계자로 보고 팀장 수업을 해 주었다. 차상위자가 최적의 후계자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충분한 트레이닝을 받고 준비된 상태에서 팀장이 되었다.


이제는 누가 팀장이 될지 예상하기 힘든 상황에서 갑자기 팀장으로 선발된다. 당사자는 아무런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이다. 역량 준비는 둘째치고, 마음의 준비라도 할 시간이 주어지면 좋겠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가장 거절 못 하는 사람이 등 떠밀려 어쩔 수 없이 팀장이 되는 모양새를 띈다.


이론적으로는 미리 리더십 파이프라인을 그려서, 후계 구도를 만들어 놓고 후계자를 체계적으로 육성하라고 말한다. 아쉽게도 현실에는 적용하기 어렵다. 저성장기에 기업들은 수시로 조직체계를 바꾸고, 전격적으로 리더 포지션을 교체한다. 언제 어떻게 리더 포지션이 바뀔지 예측하기 어렵다.


준비되고 선발되는 팀장이 아니라, 갑자기 팀장 자리를 떠넘기고 받게 된다. 팀장이 된 사람으로서는 '이 자리에 내가 적임자인가'하는 회의에 빠질 수밖에 없다. 마음의 준비도, 지식이나 스킬의 준비도 되어 있지 않다.     

'아무도 맡지 않으려는 자리를 왜 하필 내가 맡아서 이 고생이지. 회사는 날 억지로 팀장 시켜놓더니, 챙겨주는 것도 없네.'



팀장도 원해서 된 게 아닌데실무까지 해야 하는 이유

1) 관리형 팀장이 되었으면
    선택지가 없을 뻔 했다.
2) 리더십 코스와 실무 전문가 코스 중에서
    선택할 기회를 받은 셈이다.
3) 동료의 인정과 지지가
    팀장에게 최고의 보상이다. 


이렇게 떠넘기듯 팀장이 된 상태에서 실무까지 담당하면 고뇌에 빠질 수밖에 없다. 도대체 왜 내가 이렇게 고생해야 하나, 무슨 부귀영화를 누린다고 이렇게 많은 일을 해야 하나 실의에 빠지는 사람도 많다.


실무형 팀장이 되었다는 것을 <리더십 코스>와 <실무 전문가 코스> 두 가지 커리어 중에 선택 가능한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관리자 경험이 없는 사람은 좋은 포지션이 나와도 쉽게 그 자리에 배치하지 못한다. 실무를 할 줄 아는 리더와 실무만 잘하는 구성원 중 어느 쪽이 더 가치가 높을까? 당연히 실무를 할 줄 아는 리더다.


이런 개인의 가치는 이직할 때도 빛나게 된다. 주니어 시절에는 어느 정도 실무 경험만 있어도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시니어가 되고 몸값이 무거워지면 실무만 잘해서는 시장에서 충분한 인정을 받기 힘들다. 실무에 더불어 관리자 경험을 가졌다는 것은 당신의 커리어를 풍부하게 해주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리더의 자리는 고생만 하면서도 보상은 쥐꼬리만 한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리더가 되어보고 싶어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왜일까? 사람들에게는 내가 한 번 조직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가 보고 싶은 열망이 있다.


개인은 전혀 이득이 없는데 리더로서 조직에 자발적으로 헌신하는 사례가 있다. 바로 동호회를 운영하는 회장, 리더가 그렇다. 동호회 멤버가 늘어나고, 활동이 잘 운영된다 한들 회장에게는 아무런 보상이 없다. 돈이 되는 것도 아니고 큰 명예가 주어지지도 않는다. 활동이 좋아서 동호회에 들었으니 기왕이면 조직이 번성하길 바라는 순수한 마음이다. 우리는 이런 자세를 ‘헌신’이라고 부른다.


실무자로서 가장 기분 좋을 때는 맡은 일을 잘 마무리해서 성과가 보일 때다. 업무에 완성도도 있으면 마감 안에 무사히 끝난다. 내가 만들어낸 결과물을 눈으로 볼 때 일의 의미가 느껴진다. 리더에게도 이런 쾌감의 순간이 있다. 구성원이 리더의 헌신을 알아줄 때다. 또 구성원들은 리더의 헌신에 보답한다. 리더가 벽에 부딪히는 어려운 시기에 구성원 모두가 발 벗고 나서는 적극적으로 대처해 주는 것이다. 리더의 인생은 이런 경험을 하기 전과 후로 나뉜다. 일단 이런 장면을 목격하고 리더의 맛을 보면 다시는 리더가 되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이전 02화 실무형 VS 관리형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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