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티 제너레이션 팀, 배운 걸 잊는 게 더 중요하다
구글, 아마존, 마이크로 소프트, 네이버, 카카오, 배달의 민족, 쿠팡….
미국이든 한국이든 요즘 잘 나간다는 기업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이들은 제품과 서비스가 아닌 <플랫폼>을 통해 수익을 벌어들이는 기업이다. 이 플랫폼은 한 번 만들어 놓으면 팔짱을 끼고 있어도 계속해서 돈이 벌릴까?
아니다. 고객으로부터 빅-데이터를 수집하고 고객의 니즈가 달라질 때마다 서비스를 조금씩 변형해야 계속해서 수익을 만들 수 있다. 플랫폼 비즈니스는 탁월한 아이디어로 플랫폼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경쟁이 치열해진 현 단계에서는 지속적인 개선이 생존의 열쇠가 되고 있다.
지속적인 현상 파악과 개선. 이렇게 일하는 조직을 만들기 위해서는 기존의 상식과 생각의 틀을 버리는 <언러닝(Unlearning)>이 중요하다. 멀티 제너레이션 팀을 운영하는 데는 더더욱 언러닝이 필요하다. 멀티 제너레이션 조직의 팀워크가 깨지는 것은 세대별로 생각하는 사고 틀의 다르기 때문이다.
시니어는 과거의 성공 공식에 기인한 경험적인 생각 방정식을 가지고 있다. 오랫동안 같은 방식을 사용했어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인제 와서 획기적으로 일하는 방법을 바꿀 이유가 있을까? 변화해야 한다는 대명제에는 동의하지만, 각론에서는 쉽게 움직이기 어렵다.
밀레니얼과 같은 중간 계층은 자기 인식 부족이 가장 어렵다. 이들은 대개 시니어와 같이 경험에서 온 루틴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자신들의 태도는 열려 있다고 생각한다. 행동은 시니어와 비슷하지만, 스스로는 주니어와 자기를 동일시한다. 변화는 윗세대의 이야기일 뿐이라고 여긴다.
주니어는 나름의 생각의 틀이 있다. 네트워크에는 편견을 강화하는 기제가 있다. 쇼츠와 같은 짧은 콘텐츠는 균형 잡힌 시각을 담기 어렵다. 시선을 사로잡기 위해서라도 특정 관점을 강하게 주장한다. 일단 이런 콘텐츠를 시청하고 나면 알고리즘이 비슷한 관점의 콘텐츠를 반복적으로 추천한다. 균형감을 잃은 콘텐츠에 자주 노출되면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는 새에 편견이 만들어진다.
“팀은 계속해서 학습하고 성장하지 않으면 정체되고 퇴보한다.”
MIT 슬론 대학원 교수인 피터 센게(Peter Senge)는 <학습하는 조직>에서 조직이 오랫동안 살아남으려면 학습이 중요함을 강조했다. 여기에서 학습이란 단순히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배움을 통해 낡은 사고방식을 버리고 사고하는 틀을 바꾸라는 뜻이다.
멀티 제너레이션으로 이루어진 팀은 학습하는 문화를 꼭 만들어야 한다. 편견과 선입견을 바꾸지 않으면 팀은 사사건건 충돌한다. 서로의 상식과 기준이 다르면 단순히 소통하는 것만으로는 갈등이 줄어들지 않는다. 아무리 이야기해도 자신의 처지를 주장할 뿐 틈새를 좁히지 못한다.
그렇다면 멀티 제너레이션 팀장은 어떻게 하면 학습하는 조직을 만들 수 있을까? 어떻게 정기적으로 언러닝을 실천할 수 있을까?
두현 부장님은 보험 산업과 고객과 대면하면서 쌓이는 신뢰 관계가 중요하다고 믿는다. 금융 플랫폼이니 핀테크, 신사업이니 하는 것은 다른 산업은 몰라도 보험업에는 통하지 않는다는 말을 자주 했다. 이제는 그 방정식이 통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후배들이 많지만, 쉽게 그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
그의 방식은 20년 동안이나 잘 통했다. 그동안 기술이 보험 산업을 무너뜨리리라는 예측이 여러 번 나왔지만, 아직도 생명보험 보험계약의 98%는 대면 영업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두현 부장님은 회사가 추진하는 신기술 혁신 과제에 참여하지도 않을뿐더러, 과제를 운영하는 후배들에게 부정적인 견해를 쏟아놓았다.
시니어에게는 경험이 가장 중요하다. 그중에서도 성공 경험이 언러닝을 가로막는다. 혁신을 주장하는 이들은 성공 경험을 잊어야 새로 도약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로는 성공 경험을 즉시 폐기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성공의 큰 시사점은 가지고 가되 그 틀 안에서 작은 개선을 뽑아내는 ‘온고지신(溫故知新)’ 전략을 추천한다.
선배의 성공 경험을 직접 부정하지 말자. 큰 방향성은 그의 성공 방정식을 존중한다. 다만 그걸 추진하는 세부 과제에서는 새로운 생각과 방식을 적용하는 방법을 코칭해 본다.
“부장님의 생각이 맞습니다. 다만, 유통업에서 혁신적인 플랫폼으로 대형 마트를 이긴 사례가 많지 않습니까? 기술이 대면 영업사원이 도울 방법은 없을까요?”
주니어는 새로운 것, 신기술을 맹신하는 경향이 있다. 과도한 쏠림이 있어 트렌드가 그렇다면 반드시 따라가야 한다고 말한다. 트렌드의 일부는 현실이 되어 큰 지각 변동을 일으킨다. 그러나 이것은 아주 일부일 뿐이다. 대다수의 새로운 비즈니스, 신기술은 ‘죽음의 계곡’을 넘지 못한다.
뉴 비즈니스를 외치며 시장에 등장한 스타트 업은 90%가 초기 성장의 고비를 넘지 못하고 실패한다. 이 시기를 죽음의 계곡(Vally of Death)이라고 부른다. 자금 부족, 인재 등 자원의 부족, 시장에서 비즈니스 모델 검증을 이겨내지 못한 결과다. 주니어는 죽음의 계곡과 같은 비관적 시나리오를 떠올리기 어렵다. 젊고, 열정에 차 있고, 뭐든 성공할 것이라 기대에 차 있는 것이 젊음의 특권이다. 멀티 제너레이션 팀장은 이런 시각에 통찰력 있는 힌트를 제공하고 시각의 균형을 잡도록 돕는다.
메타버스가 주목받던 시기에 연수원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을 모두 메타버스로 변형하자고 주장한 팀원이 있었다. 이제는 연수원까지 모이는 이동 시간과 교통비를 낭비할 필요가 없는 시대라고 했다. 당시에는 그 꿈이 실현되면 시간과 공간에서 자유로워질 것 같았지만, 결국 이제는 메타버스를 주장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메타버스를 활용한 온라인 인재개발원이라 참 좋은 아이디어군요. 하지만 고령화로 교육생 중 상당수가 시니어 계층에 속합니다. 현재의 하드웨어로는 이분들이 메타버스 공간에서 교육을 수강하기가 어려워 보이네요. 웨어러블, VR 기기가 더 개선된 후에 메타버스 인재개발원을 구축하는 건 어떨까요? 그때까지 여러 성공사례를 모아두고 메타버스 기술을 교육에 적용할 방안을 찾는 등 사전 작업을 해 두도록 합시다.”
언러닝(Unlearning)과 리러닝(Relearning)은 혁신이 강조되고 조직 학습이 언급될 때마다 등장하는 키워드이다. 초고령 사회가 되고 멀티 제너레이션 팀이 늘어날수록 이 두 단어가 더 많이 등장할 것이다.
언러닝 방법에 대한 콘텐츠를 찾으면 실망스러운 결과를 얻는다. 리더라면 누구나 언러닝&리러닝에 대해 들어보았겠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한다는 지침이 없다. 당위성은 있지만, 방법론이 없다.
언러닝과 관련해서 먼저 알아야 할 주의사항이 있다.
‘모든 것을 송두리째 바꾸고 혁신하라고 하지 말 것.’
성장이 정체되고 있어 멘토로 삼고 있는 선배를 찾아갔다고 상상해 보자. ‘네 모든 것을 싹 바꿔라. 하나도 남김없이.’ 멘토는 충격적이면서 실현 불가능한 말을 한다. 이런 조언을 쉽게 받아들일 사람은 없다. 우리에게는 어떤 것이든 삶의 기준이 있고, 일하는 루틴이 있다. 이걸 한순간에 송두리째 바꿀 수는 없다. 오히려 방향을 잃고 무엇을 해야 할지 흔들리게 된다. 아마도 멘토가 의미하는 바는 ‘그런 자세로 혁신해야 일부라도 바뀐다’라는 뜻에 가깝다.
언러닝은 명확한 목표와 범위가 있어야 한다. 시니어 팀원에게 변화를 주문하려거든 ‘왜? 무엇을? 얼마만큼이나?’ 바꾸어야 할지 먼저 고민하고 최소한의 범위로 한정 짓도록 한다. 주니어 팀원에게 속도 조절을 코칭할 때도 ‘어디까지는 네 생각대로 하되, 일부는 팀장의 의견을 받아들여 줄 것’으로 범위를 명확히 한다.
건강을 위해 생활 습관을 바꾸어야 한다는 의사의 조언을 실천하는 사람은 드물다. 간혹 명확한 지침을 주는 의사가 있다. 식사를 한 숟갈만 덜 먹을 것, 10분 정도의 거리는 차를 타지 말고 걸을 것, ‘딱 한 잔만 더’라는 말이 나오면 음주를 멈출 것. 모든 것이 아닌 한정된 행동을 고치라고 하면 환자는 더 잘 받아들이고 쉽게 이해한다.
언러닝&리러닝에는 3단계 프로세스가 있다. 비즈니스 코치인 배리 오라일리는 3단계 언러닝 사이클을 추천한다. 1단계 비움학습(unlearn), 2단계 재학습(relearn), 3단계 전환(breakthrough)이다.
<비움 학습>은 왜 언러닝이 필요하고, 무엇을 버릴 것인지 결정하는 단계이다. 팀원에게 필요성을 깨닫게 하는 것이 가장 먼저라는 뜻이다. 만약 팀원이 변해야 하는 이유를 느끼지 못한다면 언러닝은 시작도 하기 어렵다. 일단 변화하기로 동의했다면 목표를 분명하게 정한다.
<재학습>은 작은 시도를 통해 성공을 체험하는 단계다. 팀장은 실패해도 안전한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팀에 실패에 대한 심리적 안정감이 있을 때 더 많은 창조적 실험이 일어난다.
<전환> 단계는 일종의 마무리 단계다. 비우고 새롭게 시도해 작은 성공을 얻은 결과에서 의미를 발견하라는 것이다. 처음 두 단계에서 팀원은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깨달았는가? 그것을 정리해 보고, 이 사이클이 반복되도록 만드는 루틴 화 단계에 해당한다.
팀원이 언러닝 하도록 돕기 위해서는 팀장의 솔선수범이 먼저다. 오랫동안 직장 생활을 하면서 혁신을 외치지 않는 리더는 없었다. 그런데 스스로 혁신을 실천하는 리더 또한 없었다. 나는 바뀌지 않으면서 남들만 바꿔야 한다고 외쳤다는 말이다.
적어도 팀원들이 ‘우리 팀장님이 이야기하고 결정하는 방식이 뭔가 달라졌다.’라고 느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언러닝이 성공한다. 상대는 나의 변화를 쉽게 느끼지 못한다. 상당히 많이 바뀌어야 상대는 조금 바뀌었다고 느끼는 법이다. 팀장인 우리는 무엇을 언러닝 했고, 팀원은 그걸 느끼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