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빨리 말고 제대로 일하고 싶다

속도보다는 다양성을 추구할 순 없을까

by 임희걸

요즘 제일 많이 출간되는 책 중 하나가 팀장 리더십과 관련된 책이라고 한다. 나는 리더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이 진정성이라고 생각한다. 때로는 솔직히 자신의 심정을 털어놓는 리더, 자기 실수를 인정하는 리더, 얼마나 멋진가. 그런 리더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 팀원들은 땀과 열정을 바친다.


안타깝게도 리더가 진정성을 발휘하지 못하는 이유는 ‘빨리빨리’ 때문이다. 심리학 실험 결과 충분한 시간을 주면 리더 대부분이 진정성 있는 대화를 하려고 애썼다. 자신의 행동에 실수가 없는지 곰곰이 되돌아보고 반성하려 했다. 그런데 리더에게 충분히 판단한 시간을 주지 않고 결정을 재촉하면 자기 생각만 밀어붙이는 현상이 나타났다. 우리의 리더들은 어떤가? 대부분 엄청난 압박감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낸다.


나는 다양성에 관심이 많다. 다양성이 중요한 이유는 이것이 창의성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과 디지털화라는 키워드가 부각 되면서 모든 경영자가 창의성을 부르짖지만, 직원들이 다양한 의견을 드러내는 건 달갑지 않아 한다.


우리 회사 또한 창의 경영을 부르짖던 때가 있었다. 모든 부서가 창의 경영 아이디어를 하나 이상씩 제출해야 했다. 제출된 결과를 보니 연령대가 비슷한 팀, 같을 일을 오랫동안 한 사람이 많은 팀에서 나온 제안은 눈에 띄는 것이 없었다. 세대 다양성이 높고, 성별 구성이 다양하고, 새로운 구성원이 많은 팀일수록 새롭고 다채로운 의견을 쏟아낸다. 하지만 그런 팀일수록 외부에서 보면 사건 사고가 자주 생기고 팀원들이 단합이 안 되는 것처럼 보인다. 결국 창의적인 팀은 더 많은 제안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부진한 팀으로 취급받곤 했다. (그리고 창의 경영 아이디어 대부분은 돈이 들어간다는 이유로 보류되었다.)


다양성이라는 요소는 빠르고 효율적인 일 처리와 상반된다. 속도에 대한 재촉이 심해질수록 조직에 변화를 일으키고 업계의 주목을 받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기 힘들다. 한국 기업들은 창의를 외치지만 결국에는 경영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가 빨리 해결되기만을 바란다.


한 세미나에서 미국 대학의 교수 한 분이 조직개발론에 대해 강연을 했다. 그는 한국인이었고 특이하게 우리 그룹의 계열사에서 일했던 경험을 가졌다. 강연 초반 자기소개하는데 익숙한 회사 이름이 나와 깜짝 놀랐다. 1년 정도 그 회사에서 일하다 경직된 기업문화에 놀라 퇴사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이후 유학을 하여서 대학교수가 되었다고 한다.


그는 회사에서 조직개발 프로젝트를 담당했다. 조직 문화를 변화시키고, 조직 구성원 전체가 학습하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그런데 3개월 정도가 지나자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다고 담당 임원이 재촉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조직이 변화하기 위해서 최소 2~3년 걸릴 것으로 보았다. 그런데 임원은 1~2달, 길어야 3개월이 기다릴 수 있는 최대라고 말했다. 그 안에 결과가 나오지 않는 프로젝트는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다고 폄하했다.


“돈만 들어가고 도대체 성과는 언제 나오는 거야?”


‘조직 전체의 문화를 변화시키는 대규모 프로젝트를 하면서 몇 달 만에 돈 들인 것만큼 효과가 나와야 한다고 우겨대다니, 이렇게 해서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겠다.’ 그는 거대한 벽을 느끼고 주저 없이 사직서를 썼다.

최근 우리 업계의 한 외국계 회사는 제대로 일하는 방법을 보여주었다. 지점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영업 실적 보상 제도를 변경하기 위해 1년 6개월간 컨설팅을 받았다. 6개월에 걸쳐 각계각층의 직원들과 공청회를 열었다. 그리고 총 3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서서히 보상 제도를 적용했다. 제도가 완전히 적용되기 전까지 총 5년 가까이 걸린 셈이다. 충분히 소통하고 사전에 발생 가능한 문제점을 모두 대비했으므로, 변경된 제도가 아무 문제 없이 정착될 수 있었다. 비슷한 프로젝트를 순수 한국 회사인 우리도 진행 했는데, 6개월 안에 끝내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리고 혼란의 도가니를 연출했다.)


직원에게는 저마다의 생각이 있는 법이다. 조직이 추진하는 새로운 일에 그들이 적응하려면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다. 투명하게 진행하려는 목적과 목표를 알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다시 추진안 일부를 수정하는 과정이 수반되어야 구성원이 수긍할 수 있다. 그런 과정을 단기간에 압축해 버리면 대다수는 불만을 품지만,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당장은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곪아가는 상처에 밴드만 붙이는 셈이다. 결국 환부가 악화되고 다른 부위까지 전염되어 큰 수술이 필요하게 된다.


한국 경제는 패스트 팔로워로서 퍼스트 무버가 내놓은 아이디어를 빠르게 베껴 더 효율적으로 만드는 방법으로 성장했다. 그때의 성취에 취해 이제는 베낄 대상이 없음에도 무조건 ‘빨리빨리’를 외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심정을 상사에게 말한 적이 있다. 지금 우리가 하려는 일은 너무 다급하게만 진행되고 있다, 그러니 기획안을 좀 더 제대로 검토하고 직원들과 열린 소통을 해보자고 했다. 그러자 상사가 말했다.


“빨리빨리 하면서 제대로 하면 되지.”


그를 설득하려 애쓴 시간이 너무 아깝다고 느껴졌다. 그냥 앞으로 말을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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