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일에 더 무게를 두어야 한다
신입사원 시절, 우리 팀에는 당구를 잘 치는 과장님이 있었다. 그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내가 당구 점수가 500이다. (거의 프로 당구선수 수준이다.) 그 점수를 만들기 위해 꽤 많은 돈과 시간을 투자했지. 그런데 실력의 80퍼센트 정도는 친구 아버지가 하시는 당구장에서 4개월간 먹고살다시피 한 시간에 만들어졌지. 난 어떤 일이든 집중적으로 훈련해야 하는 시기가 있다고 믿어."
일리가 있는 말이었지만, 나는 당구에 관심이 없어 금세 잊어버렸다. 그런데 비슷한 얘기를 또 듣게 되었다. 이번에는 자기 계발에 한참 열을 올리고 있던 시절, 강남역 영어 학원에 다닐 때였다. 학원에서 제공하는 유명 토익 강사의 영어 공부법 특강에 비슷한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학생을 많이 가르쳐보면 실력이 직선 형태로 느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죠. 영어 실력은 계단식 그래프를 그리며 상승해요.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점수가 늘지 않는 슬럼프 구간이 있어요. 그때에는 집중적으로 공부해서 슬럼프를 넘어야 합니다. 그때 실력이 크게 쑥 늘어나게 되죠."
나는 기본적으로 일과 삶의 균형을 추구하기를 추천한다. 일은 우리의 에너지를 소모시킨다. 일에 지나치게 매몰되면 퇴근 후에 쓸 에너지가 모자라게 된다. 퇴근 후 정신적, 감정적으로 탈진 상태에 빠지는 때가 있다. 그러면 매사에 짜증이 나고, 심지어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에게 엄한 감정의 화살을 돌린다. 따라서 소중한 사람을 위한 에너지를 남겨 놓아야 한다.
그러나 때로는 일에 더 몰입해야 할 때가 온다. 그 결정적 시기에 깊숙이 몰입하지 않으면 실력이 크게 늘지 않는다. 소위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 하는 법이다. 일과 삶의 균현을 유지하라는 말이 늘 똑같이 50:50의 노력을 쏟으라는 뜻은 아니다. 일에 무게를 실어야 할 때가 있고, 어떤 때는 개인적인 삶에 무게를 실어야 할 때가 있다. 무게 중심을 이리저리 옮기면서 줄타기를 하되, 어느 한쪽으로 오랫동안 기울면 다시 중심으로 돌아오면 될 것이다.
결정적인 시기를 놓쳤다고 전혀 성장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집중적으로 훈련하는 기간이 있어야 지금의 수준에서 나타나는 벽을 넘을 수 있다. 한 번 벽을 넘으면 일의 수준이 높아져 다시 낮은 단계로는 되돌아가지 않게 된다. 마치 게임 캐릭터가 레벨-업을 하고 나서 이전의 몬스터를 쉽게 물리치는 것과 비슷하다.
지금 당장 무엇인가를 하라는 뜻도 아니다. 그냥 인지하고 있으면 된다. 언젠가 성장의 결정적 시기가 올 것임을 알고만 있으면 된다. 그러다 문득 '아, 이런 게 그 시기인가!'라는 생각이 들면 무게추를 조금만 더 일 쪽으로 두면 된다. 예를 들면, 업무 고수로 알려진 선배가 우리 팀에 배치된 때, 좋은 멘토를 발견한 때, 훌륭한 리더를 만났을 때, 회사에서 주목하는 새로운 프로젝트의 멤버로 선발되었을 때 등이다. 결정적인 성장의 타이밍이란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나므로 일반화하기는 어렵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으면 그때를 만났을 때 스스로 알게 된다.
"이제 달릴 때인가? 전력을 다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