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하게 일하라면 꼰대겠지?

치열함, 간절함이라는 키워드

by 임희걸

B 팀장은 사내 정치의 희생양이었다. 정식 부서도 아닌 TFT(태스크 포스 팀)으로 발령이 났다. 그 팀이 없어지면 진짜 마지막이 아닐까 하는 소문이 돌았다. 벼랑 끝에 몰린 상황에서도 B 팀장은 매일 10시 넘어까지 야근을 하면 치열하게 일했다.


그러던 중, 새로운 CEO가 부임했다. B 팀장은 새로운 리더에게 6개월을 준비한 기획안을 내밀었다. 우리 회사의 세일즈 부문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새로운 전략을 제안하는 기획이었다. CEO는 이 기획안에 감탄했고, B 팀장의 위상은 역전되었다. 그는 1년 뒤 지역 본부장으로 승진했다.


내가 만난 직장 선배들은 하나같이 성공의 비결로 치열함, 간절함을 강조했다. 처음에는 이를 믿지 않았다. 거의 <우주의 원리>나 <긍정 아우라> 수준으로만 느껴졌다. 마음속 깊이 바라고, 최선을 다하면 우주가 도와준다는 식의 생각 말이다. 이건 전혀 과학적이지도, 논리적이지도 않다. 치열함이라는 키워드도 그렇게만 느껴졌다.



치열한 사람이 성공하는 이유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도 간절함을 강조하는 사람 중 하나다. 그의 책을 보면 드라마틱한 성공 스토리가 여러 번 등장한다. 누구도 만들지 못했던 파인 세라믹 제품이 있다. 이나모리 회장은 제품을 끌어안고 잘 정도로 악착같이 연구를 계속한다. 그러자 우연한 기회에 완성도가 높은 제품을 만드는 방법을 알게 된다. 그의 책 <왜 일하는가>에서는 신의 계시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일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일이 그렇다. 80% 수준까지 달성하기는 어렵지 않다. 문제는 90%까지 완성도를 높이는 데는 여기에서 다시 2배의 노력이 들고, 95%까지 만들기 위해선 3배의 노력이 들어간다. 수준이 높아질수록 필요한 노력은 몇 배가 된다. 예를 들어, 공부를 조금만 하면 수학 점수 70점을 맞을 수 있다. 그런데 100점을 맞으려면 30의 노력만 투여해서는 안 된다. 그때까지의 몇 배 공부량이 필요하다.


이런 원리를 파악하지 못하면 비슷한 일인데 왜 누구는 성공하고, 누구는 실패하는지 의아할 수 있다. 물론 운도 작용한다. 완성도를 높였다고 해서 모두 성공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대부분은 치열하게 일한 사람의 성과가 더 좋았다. 경험상 그랬다.


고객이든, 상사든, 납품처든 80% 완성도의 상품보다는 100%를 선호한다. A의 기획안은 매번 채택되는데, B의 기획안은 번번이 수정 지시가 떨어질까? 두 사람의 문서는 얼핏 보면 비슷해 보이지만 결정적인 포인트에서 완성도에 차이를 보인다. 상사가 꼭 들어갔으면 하는 핵심 요소를 담았을 수도 있다. 새로운 세일즈 데이터를 담았을 수도 있다. 그게 무엇이든 차별점을 만들기 위해서는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설사 간절함이 성공의 핵심 요인이라도 함부로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 최근 리더십 도서에 심리적 안정감, 자발적 참여, 동기 부여를 강조한다. 제품과 서비스가 상향 평준화된 시대에 유일한 차별화 포인트는 창의성이다. 창의성도 간절함에서 나온다. 그런데 간절함이야말로, 직원의 마음에서 우러나지 않으면 안 된다. 안타깝게도 아직도 간절함을 강요하는 리더가 많다.


“왜 너희들은 더 간절하지 못한 거니!”


치열함이라는 키워드로 팀장이 많이 실수하는 장면을 살펴보자.



나는 옛날에 치열했으니 이제는 너만 간절하면 돼!


“내가 너만 할 때는 참 치열하게 일했다.”


나는 옛날에 고생했으니 지금은 열심히 안 해도 된다는 의미다. 너만 열심히 하고 나는 설렁설렁 일하겠다는 생각이 숨어있다. 그때 그랬는지는 팀원이 알 바 아니다. 간절함이 그렇게 아름다운 가치라면 팀장이 먼저 맛보는 편이 좋지 않겠는가.


리더는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치열해라.’, ‘난 예전에 참 간절했다.’라고 말하는 대신 행동으로 보여주자.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 최선을 다해 일하려는 팀장의 모습을 보고 자연스럽게 팀원도 분위기에 감화되는 편이 최선이다. 그런데도 팀원이 전혀 동화되지 않는다면? 팀장의 간절함이 아직 하늘에 닿지 않은 것이다.



강요하지 말라, 강요하지 말라!


치열한 시간이 성공으로 이끌고, 성장에 도움이 된다 해도 강요하지 말자. 학창 시절, 놀만큼 놀았으니 이제 공부 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쯤, “도대체 공부는 언제 하니!”라는 부모님의 호통에 오히려 반항하곤 했다. 나도 좀 절박해 볼까 생각하려는 찰나에 강요를 받으면 하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진다.


치열함은 논리적으로 설명 가능한 개념이 아니다. 그걸 경험한 사람이라면 대략 수긍한다. 하지만 생각이 다른 사람은 참 설득하기 어려운 개념이다. 4차 산업혁명, 데이터 분석을 강조하는 문화에서 ‘우주가 우리를 돕는 원리’를 강조한다고 팀원이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팀원 입장에서는 80% 수준으로만 일하고 빨리 일을 끝내는 편이 더 효율적이다. 나머지 20의 완성도로 고민해봐야 아무런 물리적 보상도 주어지질 않으니까. 평범한 수준에서 일하고 정시 퇴근을 즐기겠다는 생각에 반론을 제기하기 어렵다.



자연스럽게 몰입되는 시스템과 문화가 필요하다


그럼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을 것이다. 우선은 치열하게 일하게 만드는 체계와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치열함을 다른 표현으로 하자면 높은 업무 몰입도라고 볼 수 있다.


업무 몰입도(Job Engagement)이란 일을 자기 자신과 일치시키며 삶에 있어서 일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그 정도를 나타내는 말이다. 일에 대한 자긍심, 열정, 최선을 다하는 자세 등이 포함된 개념이다. 리더들이 말하는 ‘치열함’이 아직 명확히 증명되지 않았다.


컨설팅 회사 왓슨 와이어트에 따르면 몰입을 높이기 위한 동인은 고객 중심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 보상 및 복리후생, 소통, 리더십 등이다. 상당히 여러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치열함이 부족하다는 잔소리 정도로 달라질 수 있는 게 아니란 뜻이다.


우선은 팀원 혼자 치열하게 만들지 말아야 한다. 누군가는 최선을 다하는데 누군가는 여유롭다면 불공평이 먼저 눈에 보인다. 업무 몰입도를 높이려면 당연히 공정이라는 가치가 깔려 있어야 한다. 열심히 일한 만큼 팀원은 그만큼의 인정을 기대하게 된다. 결과와 상관없이 일단 인정해주는 문화를 만들자. 간절하다고 해서 매번 뛰어난 성과가 날 순 없다. 영혼을 털어 넣은 팀원에게는 그만큼의 정서적 보상이 뒤따라야 한다.



일 외의 스몰 석세스를 응원하자


고기를 먹어본 사람이 고기 맛을 알기 마련이다. 그래야 고깃집을 차려도 성공한다. 회사 밖에서 치열하게 노력하여 성공한 경험을 가진 팀원은 다시 그런 도전을 할 가능성이 크다. 팀원이 열심히 운동하며 몸을 만든다. 매일 꼬박꼬박 운동 루틴을 지키는 자신이 뿌듯하다. 거울을 보면 연신 빙글거리는 그를 보고는, 팀장이 비아냥거린다.


“도대체 몇 살까지 살려고 그렇게까지 해? 네 건강만 그렇게 챙기지 말고, 회사 일도 좀 열심히 해 보지 그래?”


최악이다. 이때 팀장이 던져야 할 모범 답안 멘트는 이렇다.


“L 대리, 요즘 눈빛도 빛나고 자신감이 넘쳐 보이네. (남자든 여자든 외모에 대한 평은 하지 말자. 설사 좋은 의도라 하더라도 안 된다) 그 기분을 잘 살려서, 이번 일도 좀 부탁할게!”


팀장이 그렇게 긍정적인 말만 할 순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팀장도 더 윗사람에게 시달리고 깨지기 때문이다. “너희 팀 실적이 바닥이야. 이러려면 옷 벗어.” 임원에게 이런 말을 듣고 나와서 팀원에게 웃는 얼굴로 긍정적인 멘트를 던질 수 있겠는가? 내 속도 모르고 싱글벙글하는 팀원이 원망스럽게 마련이다. (사실 팀장의 더 윗사람부터 바뀌는 게 맞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전투에서 승리하려면 최전방에서 말을 달리며 활시위를 겨누고 있는 팀원의 사기를 꺾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안타깝지만 그런 게 리더의 숙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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