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 문제에 흔들리지 말자
실무형 팀장은 정체성의 문제에 빠지기 쉽다. 관리만 하던 과거 팀장들은 자신의 역할을 명확히 알고 있었다. 팀장의 역할은 성과를 내는 것이다. 관리형 팀장은 자기가 직접 일하지 않기 때문에 팀원을 평가하고 업무 내용을 관리하는 게 팀장의 일이라는데 이견이 없었다.
실무형 팀장은 자신이 팀장인지 실무자인지 헷갈린다. 누구에게 묻는다고 해도 팀 관리를 자기 고유 업무보다 우선해야 한다고 대답할 것이다. 실무형 팀장 또한 팀장으로서의 일이 더 중요함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다급하게 고유 업무를 처리해야 할 상황을 마주칠 때면 잠깐 팀장으로서 역할을 잊는다. 실무자로서 일에 쫓겨 다니다 문득문득 ‘팀 관리는 언제 하지?’라는 불안감이 떠오른다. 이때야말로 실무형 팀장이 정체성 위기에 빠진다. ‘나는 도대체 뭘 하는 사람일까? 팀장이라는 타이틀을 달고서도 실무에 쫓겨 다닐 뿐이네.’
Z 팀장은 잘나가던 자산운용팀장이었다. 능력이 너무나 출중한 나머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시스템개발팀을 맡게 되었다. 발령받고 나서 보니 전문성을 갖춘 중간관리자가 부족했다. 당연히 실무형 팀장으로 상당한 양의 고유 업무를 동시에 맡게 되었다. 같이 점심을 먹는 자리에서 그는 자신의 역할에 대해 한탄을 늘어놓았다.
“새로운 분야에서 실무를 배워 나가려니 시간이 꽤 많이 필요해. 그런데 실무자로서 일을 배우고, 급한 일을 처리하다 보면 이번에는 팀장 역할을 할 시간이 없네. 실무자로서도 부족하고, 팀장으로서도 부족하고, 두 배로 힘든 상황이야.”
그런데도 Z 팀장은 쉽게 지치거나 절망하지 않았다. 업무를 공부하면서 팀원 한 명 한 명을 꼼꼼히 챙기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팀원들은 그의 업무 열정에 서서히 감복하게 되었다.
몇 달 뒤에 다시 마주친 그는 이미 실무자로서 업무 습득이 보통 사람보다 빠른 상태였다. 팀원들과도 격의 없이 지내며 팀장의 역할도 충실히 수행했다. 그는 어떻게 동시에 쫓기 어려운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었을까? 해답은 선택과 집중에 있었다.
“어차피 욕심을 부려 봤자 못하는 건 못해. 나는 전부 다 잘하려고는 생각하지 않아. 포기할 건 확실히 포기해야지. 그것 때문에 임원에게도 많이 혼났지만 그래도 어쩌겠어. 대신 내가 꼭 챙겨야겠다고 생각한 일은 밤늦게까지 남아서라도 공부를 하고, 팀원 관리도 중요한 일이니 빼먹지 않으려고 애쓰지.”
실무형 팀장은 자신의 역할이 어떤 것인지 스스로 정의를 내려야 한다. 이건 회사에서 바라는 기대와는 조금 다를 수 있다. 조직은 무리한 기대를 보내기 마련이다. 그 기대에 100% 부응하려고 하다가는 지쳐 쓰러지고 만다. 그보다는 자신이 내린 역할 정의에 따라 일의 우선순위를 매기고 촘촘히 시간 계획을 세우는 편이 낫다.
실무형 팀장이 놓치기 쉬운 업무가 바로 자신의 전문성 개발과 팀원 육성이다. 당장 실행하지 않아도 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항상 급한 일에 치여 뒤로 밀리게 된다. 시간 계획을 세울 때 정기적으로 자기 계발과 팀원 육성 시간을 할애해 두어야 한다.
내가 만난 팀장 중에는 정기적으로 책이나 업무 관련 아티클을 읽는 사람이 많았다.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전문가와 정기적으로 만나, 조언을 구할 시간을 따로 마련해 두는 팀장도 있었다. 한 팀장은 피드백을 위해 매주 목요일 오전은 한 주간 팀원을 관찰한 내용을 기록하였다. 팀원에 대한 팩트가 모이면 그걸 간단하게 정리하여 피드백을 실행했다. 멋진 팀장들은 자기 계발과 팀원 육성을 위한 루틴을 만들어 두고 지속해서 실천했다. 누가 지적하지 않아도 스스로 정한 팀장으로서의 루틴을 꾸준히 밀어붙였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가장 힘들 때는 내가 어떤 존재인지 의문이 들 때였다. 인간은 본래 집단 내에서 영향력을 자기고, 타인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 존재이다. 내가 하는 일이 의미가 없어 보이거나, 제 몫을 못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괴롭다. 실무에도 뛰어나고 팀의 리더로서도 탁월한 모습을 보이면 좋겠지만 동시에 어긋나는 역할을 성공적으로 해낸다는 게 참 어려운 일이다. 우선은 타인에게 인정받기보다 나 자신의 기준에 합당한 리더가 돼 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