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에서 배우기가 어려운 이유

두려움 없는 조직 - 이걸 해, 말아?

by 임희걸

1. 완벽주의 팀장 밑에서 창의성이라니


H 팀장은 완벽주의자였다. 업무 보고 시에 임원이 조금이라도 탐탁지 않은 표정을 지으면 온종일 우리에게 분풀이했다. 마치 사형 선고라도 받은 것처럼 불안감의 언어를 쏟아냈다.


“상무님이 이렇게까지 실망감을 표시하시는 건 처음 봅니다. 이런 식으로는 우리 팀은 연말에 나쁜 조직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어요. 그럼 여러분의 미래도 온전치는 않을 겁니다. 팀장이 잘돼야, 예하 팀원도 승진을 잘하고 잘 되는 법이죠. 내가 잘못되면 여러분은 온전할 것 같아요?”


그는 항상 임원의 갑작스러운 질문에도 무조건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게 하려면 예상 질문의 10배의 자료를 준비해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팀원들은 이 말을 정말 싫어했다. 물어보지도 않을 질문에 10배로 준비하기 위해 엄청난 자료를 뽑고 보고서를 찍어내야 했다. 일이 끝나는 속도보다 새로 쌓이는 속도가 빨랐다.


게다가 어디서 주워들은 말이 많았다. 경영 관련 잡지나 이메일 뉴스 레터에서 읽는 말 같았다. 시키는 일만으로도 일이 넘쳐나는데, 업무 프로세스 개선과 혁신을 강조했다. 무식한 팀장은 차라리 낫다. 어쭙잖게 업무 관련 아티클을 읽고 그걸 실행하겠다며 상황을 더 복잡하게 만드는 팀장이 최악이다.


“직장인의 일이라는 게 단순히 현재의 일을 잘하는 것만이 다가 아닙니다. 지속해서 업무 프로세스를 개선해서 성과를 향상해야 합니다. 특히, 회사가 새로 직원을 뽑는 것은 새로운 아이디어로 일을 개선하기 위해섭니다. 프레시맨(Freshman) 이니까 프레시한 아이디어를 좀 내봐요.”


회의 때마다 강조했지만, 선뜻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사람은 없었다. 어차피 완벽주의자인 그가 ‘성공할 근거를 대 봐라.’, ‘다른 회사에서 성공한 사례가 있나?’, ‘데이터로 증명할 수 있나?’하고 트집을 잡을 게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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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두려움 없는 조직이라는 트렌드


최근 일터에서는 창의와 혁신이 강조된다. 쏟아지는 책이나 강연 중 하나가 <두려움 없는 조직>에 대한 것이다. 하버드 대학의 에이미 에드먼슨 교수는 조직에서 새로운 시도가 이어지려면 구성원이 심리적 안전감을 느껴야 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실패를 장려하고, 실패로부터 배우는 문화를 정착시키면 구성원은 그에 화답하여 새로운 문제 해결 방법을 발견한다. 기존에 없던 새로운 방법으로 놀라운 성과를 만들어 낸다.


참 좋은 이론이지만, 현실에 적용하기가 만만치 않다. 이 이론이 적용되기 위해서는 포용적인 리더십이 선행되어야 한다. 큰 실패가 발생해도 수업료라고 생각하고 격려를 해주는 리더가 있어야 한다. 단기적인 성과에 집착하지 않고 장기적인 조직의 역량에 시선을 맞출 수 있어야 한다. 뭐, 책에서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오랜 직장 생활 동안 그런 리더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실패를 통해 배우라고 조언을 하기는커녕, 몇 배로 질책하는 상사가 대부분이다. 심지어 자기는 잘못이 없는데, 오로지 네 잘못이라며 모든 책임을 아랫사람에게 떠넘기는 상사가 많다.


상사만 탓할 수도 없다. 임원이든 팀장이든 조직 내의 경쟁 상황에 노출되어 있다. 단기에 평가를 받고 자신의 생명 연장 여부가 결정되는 상황에서, 실패를 장려하라니. 리더의 아버지가 건물 하나는 가지고 있어야 가능할 것이다. 단기적인 성과평가, 실적 부진 시 리더의 교체, 엄격한 상벌 제도 이러한 경영 시스템은 그대로인 상태에서 서번트 리더십만으로 두려움 없는 조직이 만들어질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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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우선은 실패의 진짜 원인을 찾아야 한다


실패에서 무언가 배우려면 어떻게 실패하게 되었는지를 먼저 밝혀야 한다. 우리의 조직문화는 실패의 원인을 밝히는데 서투르다. 일부 학자가 아무리 실패가 좋은 것이라고 말해도 일터 현장에 적용하기는 힘들다. 회사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일에는 비용이 수반된다. 실패라는 건 적지 않은 비용을 날렸다는 뜻이다. 회사에서 비용을 소모하고 성과는 제로라면 누군가는 그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에이미 에드먼슨 교수는 어떤 실패냐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칭찬해야 할 실패가 따로 있다는 것이다. 모든 실패를 격려할 수도 없고, 또 그렇게 할 리더도 없다. 실패의 원인을 꼼꼼히 찾고 정말 타당한 실패라면 어느 정도 받아들일 수 있다. 이게 현실적으로 실패를 다루는 방법이다.


에드먼슨 교수가 제안하는 착한 실패란 다음과 같다. 가설을 검증하기 위한 시도, 비즈니스를 좀 더 깊이 탐구해 보기 위한 시도는 바람직하다. 또한 현재의 업무 프로세스가 너무 복잡해 이것을 해결하기 위한 시도나 새로운 프로세스를 만들고자 한 시도는 칭찬해 주어야 한다.


반대로 단순한 부주의에 의한 실패는 다시는 그런 결과가 나오지 않도록 철저하게 피드백해야 한다. 능력 부족으로 인한 실패도 준비가 모자랐다는 뜻이므로 고치도록 피드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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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가 아니라 부모와 아이 사이라고 생각해보자. 아이가 시험을 망쳤다면 무조건 화를 내고 비난해서는 안 된다. 부모로서는 준비 부족이나 잘못된 학습 태도 등 직관적인 원인이 떠오를 것이다. 매달 적지 않은 사교육비를 들이고 있으니 충분한 투자를 했다는 점도 울화통이 터지게 만든다. 나는 충분한 지원을 하고 환경을 만들어 주었다. 그런데 아이가 게으름을 부리고 게임이나 아이돌에게만 정신이 팔려 결국 시험을 망친 것이다. 이런 식으로 우리 뇌 안에서 자동으로 의식이 흘러간다.


이럴 때는 일단 감정적인 대응을 자제한다. 평소 공부 습관부터 시험 준비 과정을 철저히 분석할 필요가 있다. 학습 전략이 잘못됐거나, 비효율적인 방법으로 공부를 하고 있지는 않은지 냉정하게 살펴본다. 만약 이렇게 공부 프로세스에 문제가 있다면 프로세스를 개선할 일이지 태도나 자세를 들먹여서는 효과가 없다.


하지만 알면서도 단순히 실수했거나, 답안을 검토할 시간이 있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이건 부주의에 해당한다. 이럴 때는 철저한 피드백(꾸중)이 필요하다. 공부량 자체가 부족해서 몰라서 틀렸다면 이것 또한 변명의 여지가 없다. (그냥 공부를 더 해야 한다.)



4. 고통을 되씹는 과정이 괴롭다는 사실 인정하기


학창 시절을 떠올리면 나 또한 오답 풀기를 가장 싫어했다. 차라리 몇 배 분량의 새로운 문제를 푸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틀린 문제는 틀렸다는 사실 만으로도 아주 괴롭다. 그걸 다시 되짚어 보는 과정은 내 잘못을 몇 번이고 후벼 파는 듯이 비참한 기분이 들었다.


실패를 분석하는 과정은 당사자인 개인이나 조직에 큰 부담이다. 단순히 프로세스를 점검하는 과정이라고만 생각하면 되는데, 그게 참 어렵다. 실패를 되돌아보는 과정에서 나의 나태, 방심, 태도 불량을 들추어내게 된다. 때로는 나 자신에게 문제가 있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이런 상황을 피하려고 애쓴다. 따라서 실패를 분석하고 진짜 원인을 찾는 과정이 쉽지 않다.


고통을 잘게 되씹는 과정은 참 어렵다. 일단 어렵다는 것을 인정하고 한 발, 한 발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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