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중한 업무 스트레스에 노출된 실무형 팀장
내 친구는 사회인 야구를 한다. 친구에게서 들은 바에 따르면 사회인 야구는 단순한 취미 이상이었다. 일단 참가 팀 수나 리그의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연습과 시합을 위한 유료 구장이 있고, 운영은 전문화된 협회가 맡는다. 경기 때는 전문 심판을 활용한다. 각 구단의 열정은 프로야구를 방불케 했다.
친구의 팀은 9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야구팀이 9명으로 이루어졌다는 말은 감독이나 스텝이 없다는 뜻이다. 감독은 1살 많은 형님인데, 4번 타자로도 뛴다. 자기 타순이 아닐 때만 팀에 경기 운영 지시를 내린다. 수비할 때는 감독도 자기 수비 포지션에 들어가야 하므로 경기 지시를 전혀 할 수 없다.
선수 겸 감독은 자신도 선수이기 때문에 동료의 마음을 꿰뚫어 본다. 감독 역할만 담당하는 사람처럼 권위적이지 않고 친근하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했다. 사회인 야구라고 우습게 볼지 모르지만, 감독은 권력을 가진 자리다. 사회인 야구에서도 좋은 타순을 얻기 위해 감독에게 선물을 갖다 바치거나 아부를 하기도 한다. 권력을 가지면 그 대신에 동료들과 거리가 생기게 마련이다.
선수이자 감독인 플레잉 매니저는 다른 선수와 거리감이 작다. 팀에 결정적인 기회가 생겼을 때, 실책 하면 위축될 수밖에 없다. 훌륭한 감독은 선수의 실책을 감싸고 위로한다. 하지만 같은 선수로서 느끼는 공감과 관리자가 던지는 위로는 다르다.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다. 선수 겸 감독은 객관적인 눈으로 시합을 바라보기 어렵다. 그 또한 선수의 한 사람이기 때문에 좋은 공을 치지 못하거나, 득점 기회를 놓치면 크게 아쉬워한다. 감정 몰입이 크기 때문에 냉철하게 판단하고 작전 지시를 내리기 어렵다.
선수 사이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기 어려운 때도 많다. 사회인 야구에서는 분란이 일어나기 쉽다. 특히 타순이나 수비 포지션과 같은 문제에 있어서 각자 원하는 위치가 있다. 친구 팀의 감독 형님은 늘 자신이 4번 타자를 맡았는데, 이에 불만을 가진 팀원이 많았다.
우리는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는 잘못된 판단을 내리기 쉽다. 인력 감축, 구조조정, 기한 내 신제품 개발, 새로운 사업 분야 확장, 팀 간의 경쟁과 평가 등. 팀장은 절체절명의 상황에 수시로 노출된다. 상황 자체만으로도 숨이 턱 막히는데 이 와중에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불안하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상황에서 리더는 위험을 덜 무릅쓰는 결정을 내린다. 이미 수많은 연구 결과가 스트레스와 의사결정의 상관관계를 밝혔다. 압박 속에서 리더들은 자신이 과거에 성공했던 전략에 집착했다. 상대적으로 혁신과 미래 성장을 위한 과감한 투자는 거부할 확율이 높다.
걱정거리가 많으면 기억력도 떨어진다. 팀장은 수많은 지식과 정보를 접하게 된다. 업무와 관련된 것에서부터 직원의 신상과 관련된 내용까지 정보의 범위와 양이 어마어마하다. 그런데 중요 정보를 기억하지 못하면 일에 지장이 생길 수밖에 없다.
걱정이 많다고 머리가 나빠질 리는 없다. 그런데 왜 기억력이 떨어지는 것일까? 걱정과 불안은 우리의 주의를 빼앗는 힘이 있다. 곧 있을 팀 평가에서 우리 팀의 평가 결과 좋을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팀 평가에 대한 걱정이 머리를 가득 채운 상황에서는 팀원의 보고 내용에 집중하지 못한다. 집중하지 않으면 아예 정보가 머릿속에 들어가지 않는다.
실무와 관리를 같이 한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조직 관리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은데, 내 고유 업무까지 걱정해야 하니 말이다. 두 개의 역할을 맡다 보니, 스트레스도 두 배가 된다. 그럼 실무형 팀장이 늘어난다는 것은 나쁘기만 한 일일까? 아니다. 선수 겸 감독처럼, 관리와 실무를 함께 하는 팀장이라 좋은 점도 많다.
팀원은 인성이 좋은 리더와 실력이 있는 리더 중에서 누구를 더 신뢰할까? 하버드대의 폴 해리스(Paul Harris) 교수 연구팀은 어린 학생들이 친절한 선생님과 실력이 좋은 선생님 중에 누구를 더 믿는지 알아보았다. 선생님들 간의 실력이 비슷하면 아이들은 친절한 선생님을 따랐다. 그런데 일부러 지식의 차이를 드러내자 실력이 더 좋은 교사의 말을 따르기 시작했다. 어린아이들도 실력이 좋은 어른이 자기에게 도움 된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팀원도 마찬가지다. 실무형 팀장은 고유 업무를 놓지 않기 때문에 계속 전문성을 유지할 수 있다. 팀원의 신뢰라는 측면에서 이건 꽤 큰 장점이다. ‘무식하면서 부지런한 상사’가 최악이라고들 한다. 실무에 대해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상사는 일을 그르치기 쉽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존재감을 각인시키기 위해 자꾸 일을 벌인다. 어려운 일은 우리 팀이 맡겠다고 임원에게 큰소리를 친다. 뒷감당은 팀원의 몫이다.
전문성이 있으면서 인성도 좋은 상사가 최고다. 하지만 오랜 직장생활 끝에 깨달은 사실 중 하나는 훌륭한 인성을 갖추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이다. 리더십 서적에서는 인성과 관련된 자질이 더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실제 일터에서는 사람 좋은 것까지는 바라지 않으니 실무를 좀 잘 이해했으면 하고 바라는 직원이 많다. 따라서 내가 만나고 싶은 팀장을 꼽으라면 전문성을 가진 팀장을 꼽겠다.
개인의 커리어 측면에서도 단연 실무형이 유리하다. 관리 업무만 하는 팀장은 경력관리가 어렵다. 실무형 팀장은 관리 업무 외에 본인의 전문 분야를 가졌기 때문에 이직에 유리하다. 경력사원을 채용하는 회사 중에서 단순 관리자를 뽑는 경우는 거의 없다. 본인 분야에서 전문성을 가지고 있으면서 조직 관리도 경험해 본 사람을 선호한다.
더구나 요즘에는 한 번 팀장이 되었다고 끝이 아니다. 적절한 직책이 없으면 다시 팀원이 되어야 하는 때도 있다. 고유 업무가 없는 관리형 팀장에게는 다시 실무를 맡기기 어렵다. 실무를 모르는데 처음부터 가르쳐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느 모로 보나 실무형 팀장은 관리형 팀장에 비해 유리하다.
실무와 팀장 역할 동시에 맡아서 가장 좋은 점은 실무자의 어려움을 가까이에서 공감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실무를 손에서 놓고 시간이 흐를수록 업무에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쉽게 잊는다.
실무형 팀장은 과거 관리형 팀장 모델과 비교해 팀원에게 더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존재다. 하지만 과중한 업무와 시간 부족으로 인한 불안과 스트레스 상황에 항시 노출되어 있다.
최악의 상황은 시간 부족 때문에 발생한다. 시간에 쫓기면 중요하고 오래 걸리는 일은 하지 않게 된다. 중요도가 떨어지지만 당장 급한 일에 먼저 주의가 쏠린다. 결국 중요하지만 급하지 않은 일은 자꾸 뒤로 밀리고,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남는다.
연간 부서 평가 시기가 되면 팀장은 그제야 한 해를 되돌아보게 된다. 당장 급하다는 일을 처리하다 보니 정작 중요하지만 급하지 않은 일은 잔뜩 미결 상태로 남는다. 그제야 후회하지만, 이런 상황은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동시에 실무와 팀 관리를 한다는 것이 장점도 많다. 반면에 스트레스와 부담도 크다. 어떻게 하면 부담감을 줄이고, 두 가지 역할을 제대로 해낼 수 있을까? 이 시간에도 수많은 실무형 팀장은 밤잠을 설치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