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제도가 아니라고, 바보들아

제도 자체보다는 전달하는 의미를 생각하자

by 임희걸

1. 실패한 인사제도


인사 담당자로 일하던 당시 여러 인사제도를 만들고 운영했다. 그런데 그중에는 실패한 제도도 참 많다. 우리 회사에는 오랫동안 직원 복리후생을 위한 의료비 지원 제도가 남아있었다. 일정 한도 내에서라면 어떠한 질병이라도 회사가 비용을 분담했다.


처음 제도를 만들었을 당시에는 의료비 지원이 상당히 훌륭한 제도였을 것이다. 직원이 불의의 질병이나 사고를 당했을 때, 회사가 도와준다면 얼마나 고마울 것인가. 직원의 불행까지 돕겠다는 의도였다고 보인다. 문제는 다르게 받아들이는 직원이 꽤 많았다는 데 있었다.


의료비 지원은 몇 명의 직원에게만 혜택이 쏠린다. 물론 당사자라고 아프고 싶어 질병을 겪었겠나 싶다. 계절마다 잔병치레로 얼마나 괴로웠을까? 하지만 복리후생 제도는 누구에게나 공평해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커지면서 의료비 지원에 불만을 품는 직원이 늘어났다.


“매일 야근하는 건강한 사람은 전혀 복지 혜택을 받지 못한다.”

“나이가 들어 질병 확률이 높은 사람에게 복지 예산이 쏠린다.”


다른 복리후생이 충분했다면 의료비 지원에 이토록 불만을 품지는 않았을 것이다. 의료비에 적지 않은 예산이 소요되어 상대적으로 다른 복지 혜택이 별로 없었다. 결국 의료비 지원 제도는 더 많은 사람이 혜택을 받는 복리후생 제도가 도입되면서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2. 제도의 속에는 의미가 있다


눈에 보이는 인사제도의 겉모습과 달리 구성원은 그 의미, 뉘앙스에 집중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건 한참 나중이었다. 인사제도 세미나에서 만난 한 강사는 제도 설계에 대해 날카로운 통찰을 전해 주었다.


“제도는 어떻게 만들었느냐 보다, 구성원에게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지느냐의 관점으로 보아야 합니다. 많은 담당자가 이런 사실을 잘 모르고 있습니다. 제도가 전혀 의도하지 않은 대로 읽히게 된다는 사실을 파악하지 못합니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규제를 예로 들어보자. (부동산 전문가가 아니므로 규제 자체가 적합했는지에 대해서는 쉽게 언급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의미가 잘못 전달됐음만 이야기하기로 한다.)


단기간에 규제를 쏟아낸 배경에는 어떻게든 부동산 가격을 통제하여 서민을 보호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정부의 의지는 투철했고 제도를 만들기 위해 꽤 고심했을 것이 분명하다. 제도 자체를 만드는 목적은 바람직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단기간에 여러 가지 규제를 마구 쏟아내고, 그 규제가 제대로 작동하기도 전에 또 다른 규제를 만들어냈다. 이것은 잘못된 시그널을 주기에 충분하다. 사람들은 규제 그 자체가 아니라, 빈도나 시기까지 함께 버무려 읽어낸다. 그러면 결국은 이런 의미가 되고 만다.


“정부는 부동산 가격을 잡을 자신이 없구나! 지금 가장 불안해는 하는 것은 정부와 정책 당국자인 듯하다. 상황을 통제할 능력이 부족하다는 의미다.”


갈수록 점점 더 센 규제를 내놓는 것도 좋은 의미로 읽히기 어렵다. 규제는 점점 세졌고 급기야는 쓸 수 있는 카드를 거의 다 써버렸다. 그런데도 이런 강한 규제가 먹히리라 예상하는 사람은 적었다.


“크게 짖는 강아지일수록 막상 상대를 물 힘이 없다는 말이 있다. 언제까지 정부가 이 규제를 유지하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버티면 먼저 포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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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상대방의 관점에서 읽어야 한다


제도를 만들고 운영하는 쪽은 상대의 처지에서 한 번 더 생각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상대의 생각을 귀담아듣고 여러 방법으로 정보를 파악하여 구성원에게 어떤 의미가 될지 곱씹어야 한다. 조금이라도 고민의 깊이가 부족하면 구성원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리더십 학습 모임에서 만난 C 팀장의 회사는 아침 식사를 제공했다. 직원들에게 최고 수준의 식사와 간식을 대접한다는 구글처럼 고급 식자재와 다양한 메뉴를 준비했다. 경영진은 호화 아침을 제공해 주니 당연히 직원의 만족도가 높아지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 아침 식사는 오히려 젊은 직원들이 불만이 높아지게 만들었다. 왜 그랬을까?


문제는 아침이 제공되는 시간이었다. 해당 회사가 지정한 식사 시간은 7시 30분부터 8시 30분까지였다. 생각보다 조금 빠른 것 같은데 그게 무슨 문제란 말인가? 그런데 젊은 직원들은 이 식사 시간을 보고 전혀 다른 메시지를 읽었다.


“빨리 오는 임원이나 팀장들만 아침을 먹으라는 얘기네."

“밥 먹고 싶으면 남들보다 빨리 와서 더 일하라는 뜻이구나. 더러워서 그냥 안 먹고 난 9시 정각에 출근하련다.”


이건 MZ 직원의 라이프 스타일이나 사고방식에 대해 조금만 경청했으면 금방 파악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식사 시간을 결정한 높은 분은 식사가 업무 시간을 침해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분으로서는 당연할지 모르겠지만 상대방 처지에서는 그렇지 않다. 제도를 결정할 때는 내 처지에서는 당연하게 생각되는 사실이라도 곱씹어 보아야 한다. 상대는 나와 생각이 다를 수 있다는 가능성을 항상 열어 두어야 한다.



4. 사람에 관해 공부하자


진짜 제도가 제대로 소통되고 제도를 설계한 목적에 맞게 운영되려면 폭넓은 식견이 필요하다. 자신의 전문 분야 이외에 연관 분야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인간에 대해 깊이 이해하기 위해 인문학을 공부하는 것도 게을리하면 안 된다.


에어비앤비는 인류학 박사를 직원으로 두고 사람들의 주거 생활에 관해 연구한다. 집이라는 공간, 집에서 머문다는 행위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던지는지 더 다양한 관점에서 접근하기 위해서다. 집은 단순히 추위를 피하거나 잠을 자는 곳 이상의 의미가 있다. 어린 시절의 추억과 연결되어 가족을 떠올리는 모티브가 된다. 공간이 심리 상태를 변화시키기도 한다. 좋은 공간에서 우리는 더 창의적으로 되고 유연한 마음이 생긴다. 그들을 이러한 고객이 자신도 미처 깨닫지 못한 마음마저 고려하여 공간 공유 서비스에 반영한다.


현대차는 음향 공학자를 채용하여 운전자의 귀에 들려오는 각종 소리를 연구한다. 비싼 돈을 주고 디자인이 좋고 주행 성능이 뛰어난 최고급 세단을 샀는데 달릴 때마다 이상한 소리가 난다면 어떻겠는가? 소리 하나 때문에 최고급 세단 구매자의 만족도가 크게 떨어질 것이다. 물론 음향을 고려해서 차를 구매하는 고객은 없다. 그렇다고 디테일까지 완벽하지 않으면 명품이 되지 못한다. 일류는 보이지 않는 곳까지 다 계획을 세우고 제품을 만든다.


생물학자 최재천 교수는 통섭(consilience)이라는 개념을 국내에 알린 인물이다. 통섭은 본래 학문 간 소통을 통해 더 나은 연구 결과를 도출해내기 위한 작업을 말한다. 서구의 명문대학은 정공에 상관없이 인문학과 기초 과학 강의를 들을 수 있도록 배려한다. 대학이 학생들에게 다양한 생각의 기회를 부여하기 위해 애쓰는 것이다.


다양한 공부, 구성원과의 만남을 통해 생각의 깊이를 넓히려 노력하면 분명 훌륭한 제도가 나온다. 단순히 ‘왜 이 좋은 정책이, 제도가 통하지 않지?’라고 한탄하기보다는 통섭의 시각으로 제도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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