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이 괴로운 곳이 되어버리는 이유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인기를 끌자, 대학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우리도 밴드를 다시 해보자!"
대학 1학년 때 친한 과 동기 셋이 밴드를 만들었다. 부푼 꿈을 안고 시작했지만 그리 오래 활동을 하지 못한 채, 한 친구의 군입대로 밴드는 해체되었다. 밴드를 시작할 때 우리의 목표는 회사에 다니면서도 종종 취미로 음악을 하는 것이었다.
나중에 막상 회사에 들어오고 나니 직장인의 밴드 생활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낮이고 밤이고 새로 쌓이는 일을 쳐내기만도 바빴다. 야근은 일상이었고 정시 퇴근은 연례행사였다.
52시간제가 실행되고 드디어 저녁이 있는 삶이 도래했다고 생각했다. 어느 정도 여유가 생겼으니 우리도 밴드를 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결국 두 번째로 의기투합한 밴드도 얼마 가지 못했다. 시간적 여유는 생겼지만, 퇴근 후에 정신적으로 탈진 상태가 되는 것은 똑같았다. 흥이 넘치게 음악 생활을 하는 건 불가능했다.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직업인들은 바쁘다. 그중에서도 대학 병원 의사가 가장 바쁘다. 나는 피부 알레르기가 심해 1년간 세브란스 병원에 다녔다. 몇 달 전에 미리 예약을 하고도 막상 진료받으러 가면 30분 이상을 기다려야 했다. 앞 환자들의 진료가 늦어지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담당 교수님을 만나면, 내 진료 시간은 채 1분이 넘지 않았다.
"요즘은 상태가 어떠세요?" 교수님이 묻는다.
"알레르기가 전혀 나아지질 않는데요." 내가 매번 똑같은 대답을 한다.
"약을 좀 바꿔보죠. 2달 뒤에 뵙죠." 교수님의 대답은 지난번과 같다.
세브란스는 동네 병원과 달리 몇 달 치의 약을 한꺼번에 주었다. 동네 병원 약은 작은 종이봉투에 넣어준다. 대학병원의 약은 쇼핑백을 가득 채운다. 마치 '제가 해 드릴게 별로 없으니 자주 오지 마세요.'라고 말하는 듯했다. 진료할 때, 부스스한 머리의 충혈된 교수님의 눈빛도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병원도 어느 정도 수익 추구를 해야 한다. 수익을 추구하는 조직에서는 구성원의 행위를 둘로 나눈다. 수익이 나는 행위와 수익에 도움 되지 않는 행위. 그렇게 두 가지다.
외래 진료, 수술, 검사 등의 의료 행위는 수익이 된다. 수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 행위는 대표적으로 상심한 환자를 달래는 일, 시간을 들여 환자에게 병의 경과를 자세히 설명하는 일, 보호자나 유족에서 진심 어린 위로를 건네는 일이다.
<슬기로운 의사생활> 드라마와 현실과 다른 점이 여기서 드러난다. 드라마의 주인공은 비수익 행동에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쏟는다. 수술을 받지 않는다고 우기는 환자를 설득하느라 애쓴다. 일일이 환자의 장례식에 찾아가고, 보호자의 결혼식에 들르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어린 환자 어머니의 벗이 되고 난치병이 낫도록 기도하기도 한다.
이 모든 행위는 병원 운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현실에서는 상심한 환자의 심적 고통을 줄이기 위해 환자가 마음을 추스를 때까지 기다려 줄 시간이 없다. 각 과는 단위 시간당 얼마나 많은 환자를 치료했는지 평가받는다. 그리고 비용 대비 수익을 계산하여 수익성을 높이도록 요구받는다. 결국 슬기로운 의사는 인사 평가에서 나쁜 점수를 받고, 과장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 환자, 고객을 위한 진심 어린 행동을 하지 말라고 말하는 경영자는 없다. 다만 그것과 상관없이 수익성을 평가하고 그에 따른 조치를 할 뿐이다.
인사팀에 신입사원으로 발령받았을 때였다. 팀장이 내 전화 통화 내용을 옆에서 듣고는 크게 꾸지람을 했다.
"네 문제점이 뭔지 알아? 너무 친절하다는 거야. 그렇게 직원들의 전화 문의에 상세히 답변을 하고 있으면 일은 언제 할래?"
팀장에게 그 말을 듣고 어이가 없었다.
그때까지 나는 사람을 상대할 때, 친절하게 충분히 소통할수록 좋은 것이라 믿었다. 그런데 팀장에게 직원과의 소통은 축소해야 할 비효율일 뿐이었다. 응대를 가급적 빨리 마치고 주어진 행정 업무를 쳐내는 것이 나에게 주어진 미션이었다. 팀장의 가치 판단 기준이자 인사 평가 기준이 그러니 따를 수밖에 없었다. 나는 점점 싹수없는 직원이라는 평을 얻었고 팀장은 일이 빨리 마무리된다며 기뻐했다.
슬의생의 의사들과 평범한 직장인은 이런 점이 다르다. 고객, 즉 사람에게 배려를 할 수 있는 시간이 다르다. 동료와 소통하고 함께 웃고 웃을 심리적 여유가 다르다. 돈이 되든 안 되든, 사람을 진짜 사람처럼 대할 때 우리 일의 가치를 느낀다. 고객을 구매자로 보지 않고, 상품과 서비스가 그의 삶을 돕는다는 생각이 들어야 보람이 느껴진다. 과도한 성과주의는 진정성을 가지고 사람을 대하고 그 속에서 의미를 느끼는 과정을 차단한다.
오로지 수익성을 먼저 따지는 평가 기준에 제한을 받다 보면 직원은 돈을 벌어오는 부품이 된다. 스스로 자율성을 가지고 새로운 도전을 하는 일의 참 즐거움을 느낄 수 없다. 관리자가 수익을 내도록 미리 정해놓은 일을 기계적으로 하는 환경에서 우리는 심리적으로 쉽게 고갈된다. 단순히 근무시간이 줄더라도 질적으로 나아지지 않으면 이러한 고갈 상태는 계속될 수 있다.
제도적으로 이런 상황을 완전히 바꾸기는 어렵다. 어쨌든 기업은 돈을 벌어야 직원들 원급을 주고 경영 활동을 계속할 수 있다. 다만 리더십이 이 문제를 조금을 덜어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결국 수익성 업무인지, 비수익성 일인지 구분 짓고, 비수익성 일을 얼마나 유지할지 결정하는 건 사람의 몫이니까.
"고객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것, 동료와 웃고 이야기하고 함께 일하는 것, 내 일을 더 가치 있게 느끼기 위해 인문학을 공부하는 것... 이것들은 수익 창출만큼이나 중요하다."
우리 회사에도 이런 말을 한 리더가 분명 있었다.
근무시간은 줄었지만 피로감은 더 늘었다. 시간은 많지만 열정을 발휘할 수 없으니 밴드를 할 수없다. 책을 읽을 시간은 많아졌지만, 차분기 그 내용을 음미할 여유는 없어졌다. 이는 모두 경영 효율이 좋아졌기 때문이다. 경영 효율이 좋아진 조직일수록 인간미가 사라진다. 빠르고 정교한 업무 체계가 돌아갈수록 점점 더 사람 냄새가 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