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전사고가 없을 때, 내부통제 담당자의 운명
아무래도 러시아는 내게 구 소련의 이미지로 남아있나 보다. 러시아가 경제력은 약해도 군사력은 세계 일류일 거라는 선입견이 있었다. 나폴레옹은 유럽을 점령하고 러시아를 치려다 실패하고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히틀러도 러시아를 공격하다 수세에 빠졌다. 유럽 역사에서 러시아는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반항아였다. 그런데 이번 전쟁을 보니 러시아 군대는 허점투성이였다.
군사 전문가가 아니라 정확한 지적은 어렵다. 러시아군의 전략, 전술이 명확했는지는 논하기 힘들다. 그런데 전쟁 비용과 물자 준비 분야는 누가 봐도 허술하다. 20년이 지난 전투 식량을 지급하고, 미사일을 절약하기 위해 재래식 포탄을 사용한다. 전쟁이 없는 기간 동안 러시아 지도자들은 군대를 들여다보기에 소홀하지 않았나 싶다. 평화가 길어지면 군대에 들어가는 돈에 본전 생각이 나는 법이다.
전쟁에 비유되는 기업 경영도 마찬가지다. 경영에 필수적인 일이라 해도 리더가 전혀 관심 가지지 않는 업무가 많다. 오스템 임플란트의 자금관리 직원 횡령 사고가 그렇다. 철저한 내부통제를 위해서는 전산 시스템 구축, 통제 인력 및 프로세스 운영에 적지 않은 투자가 필요하다. 횡령 사고가 일어나기 전까지 경영자들은 분명 이런 돈이 아깝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각 기업은 법규에서 정한 수준의 내부통제 시스템을 간신히 만족하는 수준의 지출을 목표로 삼는다. “우리는 내부통제 시스템을 아주 철저하게 갖춰 보자.” 이런 말을 하는 CEO는 보지 못했다.
이번에는 노무 담당자의 예를 한 번 들어 보자. 노무 담당자는 참 어려운 업무를 맡고 있다. 회사 측에 서서 노조와 협상하고 소통하는 실무를 담당한다. 직원이지만 직원들의 적인 셈이다. 동료들은 노골적으로 회사의 스파이라며 경계심을 드러낸다. 그래서 외롭고 쓸쓸한 업무다. 회사가 전적으로 노무 담당자를 챙겨줘야 하는데, 평화의 시간이 계속되면 회사는 슬슬 본전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 회사는 노사 분규도 별로 없는데, 굳이 노무 담당자가 필요한가?”
경영진에서 슬슬 이런 말이 나온다.
그런데 노무 담당자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노조에서 일하는 동기를 만나 소주잔을 기울이며 슬쩍 동기부여를 한다.
“요즘 노조가 존재감이 좀 약한 것 같다. 회사가 노조를 무시하지 않으려면 이번 봄에는 단결된 힘(?)을 좀 보여줘야 하지 않겠어?”
좋은 리더라면 업무 성과가 눈에 드러나고 조직, 당장 매출을 일으키는 조직에만 시선을 뺏기지 않는다. 평화가 지속되어도 군 현대화에 적절한 투자를 하고, 군대의 사기에도 신경을 쓴다. 류성룡의 <징비록>에 따르면 조선은 200년간 지속된 평화로 전쟁에 대한 위기감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왜군이 공격해 올 것이라는 징후를 무시했다. 전혀 전쟁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보니 속수무책으로 당할수 밖에 없었다.
현재 기업의 성과 보상 기준은 지나친 성과주의의 늪에 빠져있다. 성과를 내는 조직이 높은 성과급을 받는 것이 당연한 논리라 하자. 명확하게 성과를 측정하기 어렵거나 유사시에만 성과가 보이는 개인이나 조직도 많다. 성과주의라는 핑계로 이런 조직의 역할은 무시된다. 결과적으로 단기 성과 중심의 보상이 이루어진다. 이는 구성원에게 조직은 눈에 띄는 일만 주목한다는 잘못된 메시지를 보낸다. 직원 모두가 티가 나는 일만 애를 쓰고, 티 나지 않는 일은 서로 떠넘기는 문화가 횡행한다.
특히 사고가 터지면 어마어마한 파급력을 가진 일을 담당하는 직원일수록 평소에는 존재감을 느끼지 못한다. 파급력이 작지만 자주 발생하는 리스크는 잘 대비하는 회사가 많다. 위험이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발생 가능성이 희박하면서 파급력이 센 일은 정작 경계를 게을리하기 쉽다. 저빈도 고위험의 일을 맡은 직원은 열심히 해봐야 소용이 없다. 오히려 너무 잘해서 그 자리에 붙박이가 되면 곤란하다. 적당히 일 못 하고 빨리 방출되어 모두가 바라는 핵심 직무에 발령이 나는 편이 낫다.
팀 내에도 이런 일이 있다. 팀 직무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단순 운영 업무는 잘 해봐야 본전이고, 문제가 생기면 질책만 당한다. 아무리 프로세스와 체계가 잘 갖춰졌다 하더라도 업무 담당자는 여러 가지 문제를 안고 일한다. 담당자의 책임감으로 문제를 막고 있지만, 팀장이나 동료는 그의 고충을 잘 모른다. 잘 굴러갈 때는 체계가 갖춰져 있어서 그렇다고 쉽게 판단해 버린다.
좋은 팀장은 주목받지 못하는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의 일을 정기적으로 챙긴다. 직원이 일을 제대로 하는지 점검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은 고충을 챙기기 위해서다. 직원이 제일 불안한 때는 혼자서 문제 발생 위험을 끌어안고 끙끙거리는 상황이다. 게다가 팀장은 막상 문제가 터지면 담당자 탓만 한다. 리더가 프로세스에 문제가 없는지 챙기면 문제 자체도 줄어들 뿐 아니라, 담당자의 부담감도 함께 줄어든다. 팀원이 팀장의 관심 밖에 있다는 느낌을 덜 받는다.
정기적으로 팀원의 일을 들여다보는 두 번째 목적은 지금 일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이기 위해서다. 몇 년 전에 함께 일한 S 팀장은 ‘같은 수준으로 계속 일하는 사람에게는 절대 좋은 인사고과를 주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금씩이라도 개선해야 제대로 일하는 것이라 했다.
그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신기하게도 대다수의 회사 일은 하루에 처리하기에 빠듯하게 주어진다. 더 열심히 빠르게 일을 해치우면 어느새 조금 더 많은 일이 맡겨진다. 그리고 늘 빠듯하게 일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담당자 혼자 업무 프로세스를 개선하기 어렵다. 그날그날 주어진 일을 쳐내기만도 바쁘다. 누군가 함께 들여다보아 주고, 적절한 인력과 자원을 지원해 주어야 진짜 혁신이 일어난다.
담당자에게만 일을 맡겨놓지 않고 함께 고민하는 과정 자체가 직원을 성장시킨다. 교육학에서 최고의 교육 방법은 <자기 주도 학습>이라고 이야기한다. 우리 아이들이 자기 주도 학습을 척척 해낸다면 학원도 필요 없고, 공부가 지겨울 이유도 없다. 그런데 이 자기 주도 학습이라는 게, 또 여기에 필요한 <메타인지>라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 혼자서 머리를 싸매봐야 쉽게 방법을 찾기 어렵다. 그래서 자기 주도 학습을 실천하기 위해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진다. 자기 주도 학습이 정착되려면 자신의 학습 방법을 제대로 돌아볼 수 있도록 객관적인 피드백이 필요하다.
‘팀에는 당장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이 많고 성과가 두드러지는 일도 많다. 그런데 집중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란다. 그런데 눈에 띄지 않는 직원까지 챙기라고?’
이렇게 반문하는 리더가 많을 것이다. 이건 생각보다 어마어마한 시간이 필요한 일이 아니다. 그리고 리더의 당연한 책무다. 사람들은 기업의 비전에 공감하면 구매하는 시대다. 소비는 물건을 소유하는 행위에서 기업의 비전을 공유하는 행위로 변화되었다. 사람들이 나이키를 좋아하는 건 인종 차별에 반대할 줄 아는 나이키만의 비전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비용 대비 성과, 즉 효율만을 좇는 기업은 생존하기 힘들다. 극단적 효율을 추구하는 기업은 고객이 등을 돌릴 뿐 아니라, 구성원도 외면하게 된다. 돈을 많이 준다고 우수한 인력들이 몰려드는 시대는 지나갔다. 직원의 삶에 대한 고민과 조직의 미래 비전을 어우르는 기업만이 열정을 다해 일하는 직원을 품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