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하는 30대, 승리하는 50대

고수는 시합의 판을 읽는다

by 임희걸

50대의 아는 형님 B는 동료와 둘이서 배드민턴 강습을 받은 지 3년이 되었다. 어느 날 평소와 다름없이 배드민턴 연습을 하고 있는데, 코치가 둘을 불렀다. 새로 강습을 받으러 온 30대 친구들이 있는데 연습 게임을 해 보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B 형님은 흔쾌히 응했다.


그런데 막상 얼굴을 마주한 30대 새내기들은 비웃는 듯한 웃음을 띄고 있었다.


"20살 가까이나 차이가 나는데 괜찮으시겠어요? 다치지 않게 살살하시죠." 30대들 자신의 체력을 믿고 자신 만만했다.


"네, 살살 부탁드릴게요. ^^" 형님과 동료는 겸손하게 말했지만 속으로는 3년 전을 떠올리고 있었다.





3년 전 B 형님이 처음 배드민턴 강습을 등록할 때였다. 코치는 일단 지금 실력을 좀 테스트해 보자며 기존 회원과의 연습 경기를 제안했다. 경기 상대로 지목된 것은 60대 어르신 두 분이었다. 당시 B 형님도 자신 만한 해 했다. 아무리 먼저 배드민턴을 배웠다 하더라도 상대는 나이가 너무 많지 않은가? 50대인 자신들이 이기는 게 당연해 보였다. 연세가 많고 힘없는 60대를 상대로 붙이다니, 상대를 배려해서 살살 경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들의 실력을 깔보는 코치가 약간 얄미웠다.


60대 회원들은 생각보다 몸이 다부져 보였다. 과연 꾸준히 운동으로 단련되었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 해도 나이가 10살이나 차이가 나지 않은가? 게다가 60대면 배드민턴과 같이 운동량이 많은 스포츠에서 지구력이 받혀주지 못할 것이다. 지구력이 좋은 50대의 승리가 당연해 보였다.


경기는 생각보다 쉽게 끝이 났다. 50대 팀은 10배의 점수 차이로 60대에게 완패했다. 이기기는커녕 시합 내내 한 번도 주도권을 잡지 못했다. 체력은 경기 초반에 이미 바닥났고, 이후부터는 셔틀콕을 쫓아다니지도 못했다. 반면 60대 팀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손쉽게 경기를 펼쳤다. 설렁설렁 뛰는 것 같은데 빈 공간에 날카롭게 셔틀콕을 찔러 넣었다. 경기가 끝날 때까지 전혀 지친 기색이 엿보이지 않았다. 그냥 신기할 따름이었다.


이후 B 형님과 동료는 아무 불평도 하지 못하고 코치가 가르쳐 주는 대로 성실히 연습에 임했다. (매번 이런 식의 연습 경기를 붙이는 코치의 의도가 이런 것이었을까?)



현재 시점의 30대와 50대 경기는 어떻게 되었을까? 여기도 쉽게 결판이 났다. 약 5배의 점수 차이로 50대가 30대를 이겼다. 30대 신입들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헉헉 거리며 셔틀콕을 쫓아다녔다. 더 빨리, 더 열심히 뛰려 할수록 체력만 고발될 뿐 점수 차이는 더 벌어졌다. 30대들은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 왜 그런지는 몇 년 강습을 받고, 경기를 뛰어보면 알게 될 거다.' B 형님은 속으로 되뇌었다.


초보의 플레이는 단순하다. 크게 고민하지 않고 공을 쫓아가서 빨리, 세게 때리려 한다. 체력과 스피드만 좋다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 시합에서는 체력 외에도 승부를 결정짓는 요소가 많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멘털이다. 멘털이 육체보다 결정적인 승부처가 된다.


고수는 판을 읽으면서 경기를 펼친다. 경기의 흐름을 읽는다. 상대의 약점을 파악한다. 긴 시간 펼쳐지는 경기 동안 체력을 안배하고, 다양한 전략을 구사한다. 과거 우리나라 축구 국가대표팀의 문제점으로 '생각하는 축구'가 부족하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왜 축구를 할 때 생각을 해야 하는가? 축구가 게임의 룰이 단순해 보이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다양한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다양한 상황에서 변화무쌍하게 펼쳐지는 상대의 전략, 전술에 대응하려면 생각하는 문제 해결 능력이 필요하다.





일터에서도 마찬가지다. 결정적으로 일이 되게 만드는 능력은 판을 읽을 수 있는 안목이 있느냐 없느냐에서 나온다. 고수는 큰 그림을 보면서 현재의 전세가 어떻게 펼쳐지고 있는지 파악한다. 반면 초보는 판을 읽는 능력이 없다. 초보는 부분만 눈에 들어온다. 때로는 고수보다 초보가 더 분주하다. 부분적인 문제만 해결하면 결과가 금방 나온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앞에 닥친 일만 빨리 해치우려 움직인다.


하지만 그 부분만 해결하면 될 것 같았던 일이 점점 꼬이면서 진도가 안 나간다. 작은 부분이 전체 중 일부로서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데, 전체를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문제를 해결하려 시도하면 마치 흙 속에 숨겨져 있는 나무 덩굴처럼 문제들이 줄줄이 끌려 나온다.


고수가 된다는 건 부분 부분의 깊이 있는 일 처리를 통해 단위 업무 간의 연결 고리를 찾는 일을 한다는 것이다. 하나둘씩 연결 고리가 쌓이다 보면 어느새 일의 흐름을 머릿속에서 지도처럼 그릴 수 있게 된다.


그렇다고 경력이 길어질수록 실력이 높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경력기간은 고수가 되는 것과는 상관이 없다. 동일한 수준으로 일을 빨리 해치우려고 노력하면 그냥 능숙한 근로자가 될 뿐이다. 매일 비슷한 수준에서 피아노 연습을 한다면 10년이 지나도 실력은 크게 늘지 않는다. 프로 피아니스트는 매년 새로운 경쟁을 벌인다. 커다란 무대를 연출하기 위해 집중적인 연습 기간을 갖는다. 다양한 프로들과 협연을 통해 강점을 취하고 단점을 보완한다. 일의 맥락을 이해하고 끊임없이 일과 인생의 발전을 꾀한 사람만 그 분야의 고수가 된다.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91684622


매거진의 이전글내가 일한 만큼의 보상은 어디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