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증과의 만남
라다크에서는 고산 적응을 위해 이틀간 일정을 잡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휴식하기로 했다. 비로소 방에 짐을 풀고 푹신한 침대에 누웠다. 창 밖으로는 길게 설산이 보였고 하늘은 푸르렀다. '으아, 말도 안 되는 뷰야.' 남편과 나는 창 밖의 풍경에 감탄했다. 다가온 따뜻한 햇살이 비추는 방은 더욱 아늑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 있어도 계속 숨이 찼다. 내 폐가 힘들어하는 게 느껴졌다. 머리는 어지럽고 이따금 아팠다. 그렇다 결국 나에게 고산증이 찾아온 것이다. '나는 괜찮아. 달이만 안 아프면 돼’ 틈틈이 달이를 살폈는데 다행히 달이는 괜찮아 보였다.
한때 여러 고산지대를 여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칭짱 열차를 이틀 동안 타고 간 티베트 라싸, 히말라야의 안나푸르나 라운딩, 중국의 타쉬쿠르칸, 파키스탄의 국경 카라코람 하이웨이. 모두 고산지대였지만 가벼운 고산증을 잠깐 앓고 넘겼다. 크게 힘들지 않았었고 금세 회복되었기에 '나는 고산증은 괜찮아-! '라고 여겼다. 하지만 지금 내가 제일 비실대고 있었다. 고산을 걱정하던 달이 아빠가 오히려 제일 멀쩡했다. 고산 증상은커녕 갈수록 정신이 맑아진다고 했다. 그가 고산증을 느끼지 않는 것이 다행이었다. 내가 정말 아무것도 못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준희가 모든 일을 다 했다. 쉴 새 없이 증상이 계속되는 동안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그러다 오후쯤 되자 일이 터졌다. 괜찮아 보였던 달이가 심상치 않았다. 구토를 한번 하더니 그 이후로 계속 잠만 자고 좀처럼 일어나지를 않았다. 내가 고산증을 앓는 것은 괜찮았지만, 아직 어린 달이만큼은 각별히 더 조심해야 했다. 이미 인터넷으로 전 세계의 아이들의 고산증에 관한 정보들을 거의 다 읽어보고 준비해 왔지만 정말로 아이는 아프지 않았으면 했다. 계속 잠만 자는 달이를 잠시 깨워 보았는데 그대로 몸이 뒤로 휘청이며 넘어간다.
'안된다!!!!!'
즉시 병원에 가야겠다고 숙소에 요청했고 주인아저씨는 밖에 택시가 준비되었다고 했다. 달이를 따뜻하게 꽁꽁 싸매고 안고 가보니 택시가 아니라 주인아저씨 차였다. 아저씨가 병원에 데려다주셨고, 병원을 안내하고 직접 접수를 하고 통역도 해주면서 곁에서 우리를 도와주셨다. 달이는 괜찮은 걸까 산소 호흡기라도 달아야 하는 걸까- 마음이 급한 나와는 달리 의사분은 천천히 침착하게 아이의 맥을 짚어 보셨다. 달이는 고산 증상 판정을 받았고 주사를 한 대 맞으면 된다고 했다. 나도 검진을 받았는데 나는 그냥 물 먹고 쉬면 된다고 하셨다. 주인아저씨가 어디론가 가시더니 주사기와 이것저것 물품을 사 들고 오셨다. 달이 엉덩이에 주사 한 대.
다시 숙소에 가려고 병원을 나서려는데 달이가 다시 병원 바닥에 구토를 했다. 주인아저씨가 다시 상황을 전달해서 급히 의사 선생님을 만났는데 느긋하게 토한 것은 괜찮다고 하셨다. 나쁘지 않은 거라고.. 약을 먹이고 음식물을 많이 먹이지 말라는 말씀과 함께- 간혹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방법이 없다고 하산 통보!를 받기도 한다고 하는데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여유롭게 귀를 파시며 괜찮다고 하셨다. 의사 선생님이 굉장히 침착하셨고 차분하셔서 내 마음도 진정되었다. 상당히 신뢰가 가는 분이셨다. 돌아오는 길 주인아저씨께 어떻게 감사의 말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다고.. 거듭 감사하다고 말씀드렸는데 이것은 나의 기쁨이고 숙소 주인인 나의 책임이다. 달이는 괜찮아질 것이다 그럼 된 것이다-라고 말씀하셔서 정말 감동을 받았다. 너무 감사해서 평생 이 순간을 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물론 여행을 마친 지금도 라다크를 떠올리면 아직도 아저씨가 제일 먼저 생각이 난다.
달이는 집에 와서도 두 번 더 토를 했다.. 그리고 자다 일어나더니 직접 약을 달라고 해서 약과 주스를 먹고 다시 잠에 들었다. 나는 즉시 내려가는 비행기 표를 검색했다. 아이가 아프면 안 된다.. 라다크고 뭐고 다 필요 없다. 아침까지만 달이를 살펴보고 여전히 힘들어하면 즉각 표를 끊어서 라다크를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모든 과정에서 나의 고산증세는 계속 발현되고 있었지만, 내 고통이 대수인가. 다행히 달이는 더 이상 토하지도 않고 편안히 잠이 들었다. 달이가 아파서 병원까지 가게 하다니 정말이지 여행을 다 때려치우고 돌아가고 싶었다. 그렇게 끙끙 앓으며 밤에 잠은 어떻게 잤는지 모르겠다.
다음날 아침에 눈을 떴는데 응? 뭐지?- 폐가 조금 묵직한 것 빼고는 훨씬 몸이 괜찮아졌다. 그리고 너무나 다행스럽게도 달이의 토기는 완전히 멈췄고 일어나자마자 식욕이 돌았는지 맘마를 먹겠다고 했다. 안 그래도 토하느라 종일 아무것도 못 먹은 게 마음에 걸렸는데, 당장에 주방으로 내려가서 한국에서 싸온 누룽지를 푹 익혔다. 조금씩 조금씩 떠먹여 주니 잘 받아먹었다. 그 후 상태가 호전된 달이는 이것저것 놀이거리를 가지고 놀기 시작했다. 언제 그랬냐는 듯, 숙소 고양이를 쫓아다니며 놀았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감사하게도 라다크는 우리를 내려 보내지 않았다.
그렇게 다음날 아침부터 고산증세는 급격히 완화되었고, 우리의 몸은 서서히 라다크에 적응해가기 시작했다.
라다크의 싱그러운 아침이 부리는 마법처럼 달이와 나는 하루 동안의 고산증에서 탈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