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주의 출산의 기억
밤 아홉 시 무렵 배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진통 어플을 켜고 배가 아플 때마다 주기를 체크했다. 이 통증이 출산과 이어지겠구나-라는 직감이 들었다. 지난날 오후 이슬이 비추는 걸 보았기 때문이다. 배가 아파서 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
다음날 아침이 되어서 조산사님께 연락을 드리고, 준희와 택시를 타고 안성에 있는 조산원으로 향했다. 배가 아프긴 했지만 택시를 타고 갈만한 견딜만한 고통이었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조산사님은 문을 열고 방에 미리 들어가 있으라고 하셨다. 통화하는 내 목소리를 들으시고는 목소리가 왜 이리 멀쩡하냐고 하셨다. 경력이 오래된 조산사님은 목소리만 듣고도 산모의 진행 상태를 파악하셨다. 오후에 준희가 죽을 사 와서 방에서 같이 죽을 먹었다. 조산사님의 예측대로 그날 꼬박 하루가 다 가도록 나는 방에서 진통을 겪었다. 어떻게 진통만을 앓고서 하루를 흘려보냈는지 모르겠다. 다음날 새벽 4시 50분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 32시간 동안 지속적인 통증을 계속 반복해서 겪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물 한 모금도 마시지 못했다. 통증의 간격이 그만큼 좁아졌기 때문이다. 나름 매일 명상을 했고, 출산 과정을 받아들이고 아픔도 겸허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출산의 고통은 내가 예측했던 것 그 이상이었다.
그럼에도 출산의 기억이 나쁘지 않을 수 있었던 건 내가 자연주의 출산을 선택한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임신기 동안에 책을 읽으며 공부를 해나가면서, 나는 일찍이 내가 선택할 출산 방법은 자연주의 출산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아이를 낳는 행동은 지구 상에서 생물이라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기 때문에, 이것도 무척 자연스러운 것이라 느꼈고, 자연의 흐름에 맡기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결정적으로 임신 출산준비 강의를 들으러 다니면서, 분만실 견학을 갔을때 한가운데 놓여있던 분만대를 본 적이 있는데 치과에서 본 것과 비슷한 그 주변에는 무언가 많이 달려 있었다. 그것은 마치 큰 로봇장치나 우주선 같아 보이기까지 했다. 그 분만대를 본 순간 나는 절대로 저 침대에서는 출산을 못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조산원도 두 곳을 방문했는데 한 곳은 굉장히 깨끗하고 신식인 시설이었지만 뭔가 낯설었고, 한 군데는 그에 비해 조금 허름한 듯했지만 방을 보는 순간 마음이 굉장히 편안해졌다. 그리고 그곳 조산사님을 뵙는 순간 엄마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분의 에너지가 매우 편안했기에 두 군데 중에 내가 출산할 곳을 선택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철저히 나의 직감을 따라갔다.
출산방법은 다양하고, 전적으로 무엇이 옳고 그르다고 정의 내릴 수 없다고 생각한다.
가장 중요한 건 산모와 아이에게 안전한 출산이고, 출산 방법은 제삼자가 아닌 출산을 할 당사자인 산모가 선택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스스로가 편안하고 마음이 가는 대로 끌리는 대로-
나에게 있어서는 이 방식이었을 뿐이었고, 다행히도 잘 맞았고 안전하게 아이를 출산할 수 있었다.
출산을 할 때 들으려고 가져간 티베트 만트라 CD는 틀지도 못했으며, 가져간 책 히프노버딩도 보지 못했다.
대신에 준희가 책을 참고하여 곁에서 계속 척추 마사지를 해주거나 통증을 잘 넘길 수 있게 옆에서 계속 무어라 말해주었는데 아주 도움이 되었다. 나는 당연히 아무것도 못 먹었지만 준희도 하루가 꼬박 다 지나가도록 같이 아무것도 먹지 않고 곁을 계속 지켜주었다. 임신기는 비록 떨어져 지내며 서러운 기억이 있었어도 출산의 순간만큼은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해준 준희에게 서운한 기억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통증을 계속 겪다가 조산사님이 따뜻한 욕조에 몸을 담그라고 하셔서 옷을 벗고 욕조안에 들어갔다.
감통 효과가 있다고는 했지만, 욕조 안에서도 아픈 건 마찬가지였다. 시간이 조금 더 흐르고 밖으로 나와 다시 옷을 입었는데. 갑자기 어느 순간 배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아팠고 나는 크게 비명을 질렀다. 으아!!!! 그 소리를 듣고 조산사님이 오셨다. 이제 아이가 나올 때가 되었다고 하셨다. 미리 공부한 호흡법과 함께 힘 빼기와, 힘 주기를 했다. 차라리 마냥 아픈 것보다 이 과정이 더 나았다. 힘주기를 하기 머지않아서 아이가 스르르 몸을 빠져나왔다. 아이는 크게 울지 않고 앙! 하는 외마디 소리만 내었다. 그리고 제일 먼저 그대로 내 품에 안겨졌다. 아주 깨끗한 상태로 내 몸을 빠져나왔다. 그때 느낀 작고 물컹한 감촉은 지금도 생생하다. 정말 거짓말처럼 산고는 그 순간 끝이 났고 정확히 내가 겪었던 고통만큼의 평화와 감동이 밀려왔다. 남편은 아이를 쓰다듬으며 '큰일 났네- 엄청난 애착이 느껴진다'라고- 말했다.
처음 겪는 일이었기에 모든 것이 새로웠고 그렇기에 두렵기도 했지만, 지금 출산을 떠올려보면 자연스러운 흐름을 선택한 것에 대해 후회가 없다. 유도제나 무통주사도 맞지 않고, 다른 사람보다 긴 진통을 겪었지만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 있었고, 아이가 제때 본인의 리듬대로 세상에 나올 수 있게 기다려 줄 수 있었다.
출산의 고통은 내가 상상한 것 그 이상이었다. 그 통증은 살면서 겪은 그 어떤 것보다 강렬했다.
내가 살면서 겪은 통증중에 가장 괴로운 고(苦)를 느끼게 해주었지만, 동시에 가장 최고의 행복인 고(高)를 느끼게 해준 잊을 수 없는 경험_
아이가 나오자마자 아이를 안아주었고 초유를 물렸다. 아이는 초유를 빨아먹고 잠이 들었다. 준희도 아이와 같이 잠이 들었다. 조산사님이 챙겨주신 미역국 한 그릇을 비워냈다. 나는 정신이 매우 맑아진 상태였다. 그렇게 잠이든 아이와 준희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