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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레 Aug 06. 2020

틱세 곰파의 아침 예불

다음 생은 라다크에서 태어났으면

라다크에 오고 싶었던 큰 이유 중에 하나는 바로 라다크의 불교사원인 곰파였다. 황량해 보이는 곳에 우뚝 솟아있는 하얀 곰파는 무척 매력적이고 신비로워 보였다. 그 모습이 어찌나 예뻐 보이던지- 곰파에서 가만히 앉아 만트라를 외워보면 좋겠다 싶었다.


라다크에는 많은 곰파들이 있다. 티베트에서 보았던 사원과 아주 비슷한 느낌이다. 라다크의 매서운 추위를 내뿜는 기후와 척박한 지형들은 사람들의 접근성을 떨어지게 하는 요소였을 테고 그 덕분인지 지금까지 불교의 법맥이 꽤 많이 보존되고 유지되어 오고 있었다.


레 시내에 있는 상카르 곰파에서부터 차를 타고 며칠을 들어가야 하는 곳들까지- 내 마음만 같아서는 굽이 굽이, 깊고 깊숙한 숨은 곰파들을 찾아가 보고 싶었지만 네 살 아이와 함께하는 여행에서는 욕심을 버리고 현실적으로 아이가 감당할 수 있는 적절한 거리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했다.


라다크에 오면 거의 모든 사람들은 판공초나 누브라 벨리로 떠난다. 하지만 우리는 그 코스를 미련 없이 생략했다. 일단 고도가 너무 높았고 차를 타는 시간이 너무 길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아이가 안전할 수 있는 여행을 하기로 했다. 이번 여행에서는 판공초보다는 곰파나 라다크의 다른 마을을 집중적으로 둘러보는 것을 선택했다..


많은 곰파들 중에서 망설임 없이 선택한 곳은  바로 [틱세 곰파]였다. 마치 티베트 라싸의 포탈라궁을 연상케 하는 틱세 곰파. 영화 삼사라의 마지막 장면의 촬영지인 틱세 곰파- 레 시내에서 거리도 그다지 멀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그곳은 외부인이 티베트 불교의 아침 예불에 참석하는 것이 허용되는 곳이었다.


라마들의 생생한 아침 예불에 참석할 수 있다고 하니 생각만 해도 가슴이 콩닥콩닥 뛰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보편적으로 주변의 다른 사원들을 두세 개 묶어서 다녀오는 것 같았지만 우리는 틱세 곰파만 가는 일정을 선택했다. 단 한 곳이라도  제대로 푹 느끼고 싶었다.


버스를 타고 갈 수 있는 곳이지만, 달이의 컨디션을 위하여 택시를 하루 빌리기로 했다. 나에게 있어서도 아침 예불은 꼭 놓치고 싶지 않은 시간이었다. 여행사에서 택시 예약을 진행하고 있을 때 그곳에서 한국인 여행자 한 분을 만났다. 짧은 휴가 일정으로 라다크를 찾으신 분이었다. 우리는 이야기를 나누다가 즉석에서 조인해 같이 내일 틱세 곰파에 가기로 했다.







다음날 모처럼 아침부터 부지런히 움직였다. 해가 뜨기도 전에 집을 나섰다. 집 앞에는 어제 예약한 택시가 기다리고 있었다. 어제 같이 동행하기로 한 분을 만나 함께 택시를 타고 틱세 곰파로 향했다.


복작복작한 레의 시내를 벗어나, 차를 타고 달리는 동안 서서히 날이 밝아왔다. 그리고 벗어날수록 굽이 굽이 큰 돌산들과 풍경이 펼쳐졌다. 여태껏 우리가 본 것은 레 시내가 전부였지만 조금만 벗어나도 확연히 달라지는 풍경은 라다크를 깊숙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어떤 놀라운 풍경들이 펼쳐질런지, 가히 짐작을 하게 했다. 가는 동안 날이 환하게 밝았다. 늦는 것은 아닐까 걱정했지만  다행히도 우리는 예불이 시작하기 전에 법당에 도착했다. 그리하여 아침 예불 전 과정을 직접 생생하게 볼 수 있었다. 


곰파입구의 마니차


예불을 알리는 뿔나팔소리- 붉은 승려복의 스님들, 시작 전에 동자승이 부르기 시작하는 노래들을 모두 눈 앞에서 목격했다. 스님들이 하나 둘 법당으로 들어오셨고 우리도 외부인에게 허락된 뒤편의 자리에 앉았다. 우리나라 예불과는 달리 심벌즈와, 북 나팔 같은 악기를 크게 연주하면서 예불이 진행되는 것이 정말 신선했다. 예불은 한 시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이어졌다. 중간중간 차를 따르고 마시기도 했다.. 우리에게도 어린 동자승들이 차를 나누어 주셨다. 달이는 그 차를 맛있게 잘 마셨다. 아침 예불의 모든 시간들이 좋았다. 마치 생생하게 살아 있는 기분이었다. 중간중간 알아들은 사무량심과 회향 기도가 반가웠다. 이 모든 게 티브이 속 다큐멘터리가 아니고 실제라니. 정말 기분이 이상했다. 이곳을 직접 오지 않고서야 대체 어떻게 이것들을 경험할 수 있단 말인가-



예불 시간이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혹시 내가 전생에 이곳과 인연이라도 있는 것인가? 싶었다. 다행히 달이도 보채지 않고 한 시간 동안 옆에서 오렌지색 찰흙 놀이를 하며 잘 놀았다. 어린 동자승은 뒤돌아 달이의 찰흙을 힐끔힐끔 계속 쳐다보았다.



 예불이 끝나고 스님들은 모두 자리를 떠났다. 우리는 그제서야 한적해진 사원을 천천히 거닐어 보았다.. 사람이라고는 우리 네 사람뿐, 외부인은 아무도 없었다, 보이는 사람도 없었다. 조용한 사원에서 쉬는 기분으로 천천히 머물렀다. 사원 벽에 있는 그림과 문양들과 색체들을 눈에 담아 보았다. 곳곳의 흔적들은 이곳의 역사를 가늠하게 했다.



틱세 곰파의 주변으로 드넓게 펼쳐진 풍경은 정말이지 비현실적이었다. 남편은 틱세 곰파 주변 풍경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이런 풍경은 살면서 본적도 상상해 본 적도 없다고 했다. 사원 곳곳을 거닐며 쉬면서 이곳에 흠뻑 머물르기를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다. 





다음 생에 태어난 곳을 고를 수 있다면_ 주저 없이 라다크에서 태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틱세 곰파는 꼭 기록을 하고 싶어서 카메라를 챙겨갔다. 예불의 전 과정을 녹음한 파일은 여행 도중 달이가 폰을 만지작 거리다가 지워버렸지만 그날의 아침 예불소리 그리고 주변의 탁 드인 풍경. 화려한 불상. 그날의 인상들은 모두 내 세포 어딘가에 그대로 남아있다.




*

한국으로 돌아온 후


달이가 이따금씩 빨간 별 노란 별 초록별이 있는 곳에 가자고 하는데
달이가 말하는 빨간 별 노란 별 초록별이 있는 곳이 어디냐 하면 라다크의 틱세 곰파이다.

곰파 법당 천정에 장식되어 있던 천들 사이로 반짝이던 빛

스님이 주신 과자, 라다크에서 만난 고양이, 사과를 준 당나귀, 다른 언어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기억하고 있다

달이도 라다크가 마음에 들었나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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