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다크의 작은 마을
잠시 레를 떠나 2박 3일 동안 작은 마을 알치에 다녀오기로 했다. 우리는 알치로 향한다.
숙소 주인에게 알치에 다녀온다는 말을 전했다. 주인이 알치를 어디에서 알았냐고 묻는다. 라다크 마을들 중 가고 싶었던 알치는 인도 가이드북 저자분이 추천해주신 마을이기도 하다. 거리도 아이와 이동하기에 무리가 없었다. 배낭을 꼭 필요한 것들로만 다시 재 정비해 가볍게 꾸리고 나머지 짐들은 모두 숙소에 두고 가기로 했다.
아침 일찍 레 버스 스탠드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매표소를 찾을 것도 없이 알치- 알치~! 를 외쳐보았다. 사람들이 이제 갓 출발하려는 버스를 가리킨다. 주저 없이 그 버스에 올라탔다. 기사님과 주변 사람에게 ‘알치’에 가느냐 확인을 한 후 자리를 잡고 앉았다. 버스는 잔뜩 낡은 로컬 버스다. 나는 로컬버스 타는걸 아주 좋아한다. 몸은 다소 불편할 수 있지만 그곳에서 진짜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인도 기차도 로컬 스타일 SL, 중국 기차는 의자 칸인 잉쭤를 선호했다. 중국 베이징에서 라싸까지 향하는 48시간 여정의 칭짱열차, 베이징에서 우루무치로 향하던 긴 여정의 열차들까지 모두 잉쭤로 여행했는데 몸은 불편했지만 기차에서 만난 인연들이 준 친절은 잊지 못할 감동의 기억으로 남아있다.
덜컹 거리며 버스는 출발했고 레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창밖 풍경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좋았다. 돌아갈 날이 정해져 있는 라다크의 모든 시간이 소중했기 때문이다. 평소에 대중교통을 많이 이용했기 때문인지 달이는 버스를 아주 잘 탔다. 이윽고 버스는 마을을 벗어나 한적한 풍경을 달리기 시작한다. 구글 지도를 켜 보니 왼쪽엔 히말라야 오른쪽엔 카라코람 산맥이 있었다. 웅장한 풍경을 감상하다 보니 시간이 빨리 흘렀다. 히말라야와 카라코람을 여행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솟아났다. 살면서 좌-히말라야 우-카라코람을 내가 언제 끼고 달려보겠나. 그 틈에서 부자보다 더 부자가 된듯한 기분을 느껴보았다.
알치까지는 세 시간 정도 소요된다고 알고 있었는데 길이 새로 닦인 건지 모르겠으나 생각보다 빠르게 두 시간 만에 도착을 했다. 당연하지만 내릴 때 누르는 하차벨 같은 건 없었다. 우리를 내려주는 것을 까먹고 달릴까 봐 기사에게 거듭 알치에서 내려달라는 부탁을 전했고 구글 지도로 실시간 위치를 파악한 끝에 무사히 목적지에 내릴 수 있었다.
우리가 탄 버스는 인더스강이 흐르는 곳에 우리를 내려주고 떠났다. 난생처음 마주하는 인더스강.. 인더스강 이거.. 교과서에서나 들어본 문명의 발생지 그 인더스강이 아닌가? 인적 없는 주변은 바람소리뿐.. 고요한 그곳에 에메랄드빛 인더스강은 힘차게 굽이쳐 흐르고 있었다. 강 위로는 알치로 향하는 다리가 놓여 있었다. 뭔가 엄청난 곳에 문명을 거스르며 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달이가 감기에 들지 않게 따뜻하게 꽁꽁 싸매고 핫팩을 등에 하나 붙여 준 뒤 번쩍 안고서 길을 걷기 시작했다. 알치까지는 여기서 꽤 걸어 들어가야 했다. 다행히 차가 이따금씩 다니고 있었다. 그것은 여차하면 히치 하이킹을 할 수도 있다는 희망적인 뜻이었다. 우리는 패기 있게 걷기 시작하다가 결국 인심 좋은 차에 얻어 타고 알치 마을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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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치의 첫인상은 조용하고 따뜻했다. 산이 둘러싸고 있어서인지 바람조차 불지 않았다. 분명 시월인데 따뜻한 봄 날씨 같았다. 조용한 시골 마을을 거니는 기분은 레에서 북적이는 도로를 걸어 다니던 피로를 씻어 주는 것 같았다.
제일 먼저 숙소를 잡기 위해 가이드북에서 1순위로 점찍어둔 알치곰파 입구의 숙소로 향했다. 시설이 뛰어난 만큼 가격도 올랐다는 첫 번째 숙소는 아쉽게도 너무 어둡고 침침했다. 오랫동안 투숙객이 없어서였을까 그 싸늘한 기운에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왜인지 모르겠는데 첫 번째 숙소를 나오는데 소름이 끼쳤다 전체적으로 음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다음 숙소는 유명한 짐스캉- 신축을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6000루피, 4000루피대의 터무니없는 가격 요구- 나도 흥정을 잘하는 편인데 2000루피가 라스트 프라이스라고 하길래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아서 나왔다. 지금 레에서 묶고 있는 1500루피 숙소가 훨씬 나은데- 배짱이 두둑한 주인장의 숙소였다.
그리하여 알치의 거의 모든 숙소에 문을 두드리고 발품을 팔게 되었다. 나도 어서 배낭도 내려놓고 달이도 쉬게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여행객이 적은 비수기 시즌이라 그런지 숙소들이 다들 음침하고 추운 느낌이었다. 어느 곳은 창문이 틈이 벌어져 있는가 하면 방들마다 눅눅하고 냉기가 가득했다.
우리가 결국 배낭을 내려놓은 곳은 마을 제일 초입에 있었던 숙소였다. 여태껏 방문한 숙소는 모두 싸늘한 기운이 감돌았는데 이곳은 살아있는 밝은 생기가 느껴졌다. 엄마와 아빠 딸, 세 가족이 함께 사는 곳. 널찍한 정원이 있고 따뜻한 햇살이 한가득 쏟아져 들어오는 곳. 방을 둘러보는데 방에서 꽃 향기가 났다.. 와이파이도 되고 뜨거운 물고 나오고. 전기도 잘 들었다. 알치의 숙소를 다 뒤졌지만 이런 따뜻한 온기가 맴도는 느낌은 이곳이 유일했다. 망설일 것 없이 우리가 머물 곳은 이곳임을 알아보았다. 주인 분들도 모두 인자하셨다. 웰컴 드링크를 주신다길래 민트차를 주문했더니 딸이 마당에서 직접 민트를 따서 끓여 왔는데 민트 티는 또 왜 이렇게 맛이 있는지 한국에 돌아가면 당장 민트부터 길러야겠다고 생각했다. 숙소는 천 루피. 여태껏 발품 파느라 지나온 숙소들 비해 가성비 단연 으뜸이다. 10월 10일 현재 알치 마을 전체에서 투숙하고 있는 여행객은 우리들 뿐이다
비로소 찾은 보금자리에 배낭을 내려놓고 좀 쉬다가 밥을 먹으러 갔다. 알치는 작은 마을이라 둘러보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것은 서두를 이유가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활성화되어 있는 식당은 정류장 근처에 있는 단 한 곳뿐- 선택의 여지가 없긴 했지만, 음식이며 추천해 주시는 살구 땅콩차며 다 너무 맛있었다. 감탄하며 맛있는 점심 식사를 했다. 이곳은 모모를 주문하면 밀가루 반죽부터 시작한다. 여기에 있는 동안 먹을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 싶었다. 길가에는 소와 당나귀와 말들이 자유롭게 노닐고 있었다. 조용한 마을 알치가 우리는 마음에 쏙 들었다.
맛있는 밥을 먹고 알치곰파로 산책을 가 보았다. 900년 된 벽화가 있다는 알치곰파는 승려 한 분이 관리하고 있는 듯했다. 한시부터 두시는 점심시간이라 문을 닫는다. 이곳에서 벽화를 보는데 정말이지 불교 유적의 시간성을 느끼게 했다. 여태껏 불교 사원에서 많은 벽화들을 보았지만 이 벽화들은 단연 으뜸이었다. 고대 유물을 보는 기분.. 너무 귀한 것이 눈 앞에 있었다. 해가 지고 있었기에 내일을 다시 기약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오는 길에 소를 끌고 오는 숙소 아주머니와 만났다
숙소에서 주인아주머니가 차려주시는 라다크식 저녁 식사를 먹고 잠자리에 들었다. 나는 여행할 때 안전을 감지하는 레이더망 같은 것이 작동되는 경향이 있는데_ 이것은 예전에 혼자 여행을 했을 때 나를 지켜주던 감각이다. 기본적으로 지금 상황이 안전한지 아닌지 경계를 하고 보는 편인데 그래서 저녁 시간에 주인아저씨가 권하는 술 같은 음료도 일단은 먹지 않았다. 알고 보니 전혀 경계하지 않아도 되는 가족이었지만 말이다.
해가 진 밤에는 어김없이 추위가 찾아왔지만 준비해 간 포켓 베드 장판을 깔고 따뜻하게 잘 수 있었다.
추운 밤이 지나고_ 다시 봄기운을 불어넣어주는 태양이 드러났다. 알치의 두 번째 하루가 밝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