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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레 Jan 22. 2022

엄마가 시골에 살고 싶어서

자연의 정서를 찾아서

언제부터였을까. 내가 시골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도시에서 살아왔지만 항상 시골 생활에 대한 염원 같은 것이 있었다. 여행을 하며 다른 세상을 경험할 때에도 너른 하늘과 대지, 산과 바다를 만나는 시간이 좋았다.


어릴 적 살던 제천은 한적한 작은 도시였는데 초등학교 때부터 집 뒤뜰에 흙을 일구어 혼자 꽃씨를 심곤 했다. 식목일에는 꽃씨를 심는 게 나의 소박한 의례였다. 심은 씨앗에선 싹이 잘 자랐고 여름이 되면 뒤뜰은 꽃들로 가득해졌다.


시골에서 살고 싶다는 내 말에 엄마는 늘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아라"라는 대답을 했다. 농사를 지으시는 외갓집에 머물면서 일 년간 농사를 배워보고 싶다는 내 말에도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아라 농사가 얼마나 힘든데."라며 더는 내 말을 듣지도 않으셨다. 엄마는 쓸데없는 소리라고 했지만 농사를 배워보고 싶다는 마음은 진심이었다.


20대 중반 슬럼프를 겪을 시기에는 집 주변 넓게 펼쳐진 벼 밭을 찾곤 했다. 하늘은 넓었고, 조용했고, 푸르른 벼들 사이를 걸으면 고민들이나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곤 했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나도 모르게 나에게 깃들어 있는 자연이라는 정서. 시골 생활에 대한 염원은 자연에 대한 염원으로 자연스레 이어졌다. 내 안에서 무언가가 계속 나에게 말하고 있었다. 나는 이 정서와 다시 만나야만 했다.


풀과 나무 땅과 흙을 만지고 밟으며 살고 싶다는 갈망은 서울 아파트에서 아이를 키우고 사는 동안 더욱더 고조되었다. 코로나로 인해 바깥출입은 제한되었고 태어난 둘째는 거의 집에서만 머물러야 했다. 근교를 가더라도 답답해 자꾸 집어던지는 마스크를 들고 쫒아다니며 아이의 작은 얼굴에 다시 씌워야만 했다. 어디든 흙이 있고 문을 열면 아침을 만날 수 있고, 푸르른 나무들을 마주할 수 있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아이들에게도 자연의 정서를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어떻게든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방에 차들로 둘러싼 이 도시 아파트에서 계속 살고 싶지는 않다. 다른 곳에 터를 잡고 싶은 마음이 들었고 전국적으로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은 서울에서 사는게 로망이라지만 나에게는 조용한 서울 탈출기가 시작된 것이다. 아이들이 잠들고 나면 조용히 어둠 속에 핸드폰 불빛을 밝히고 집들을 찾았다. 경기도 외곽부터 전라도 경상도 제주도까지 사람들의 추천을 받기도 했고 느낌이 오는 곳은 직접 내려가 보고 살펴보았다. 가평. 남원. 구례. 봉화. 제주.. 아니면 어디로 가야 하나? 정확히 어디로 가게 될진 모르겠으나, 적어도 내가 행복하게 살아갈 곳은 이곳이 아닌 다른 쪽이라는 마음의 확신이 있었다. 그리고 그 확신이 맞다면, 내가 가고자 하는 길도 어려움이 없으리라. 가게 될 곳에 가게 되리라.


가슴이 원하는 쪽으로 용기를 내어 주사위를 던졌다. 일단 집주인에게 집을 나가겠다는 연락을 했다. 사람들이 집을 보러 왔고 오래 걸리지 않아 집이 나갔다. 이제 낙장 불입이다.


집이 나갔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에 두었던 가평부터 집을 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빌라부터 아파트 전원주택을 골고루 둘러보았는데 신축 아파트에서는 아무런 감흥을 느낄 수 없었다. 마음이 동한 것은 춘천 산자락에 있는 전원주택이었다. 바로 앞에 산이 보이고 마당이 있는 한적한 집이었다. 무척 마음에 들었지만 혹시 모르니 전원주택을 몇 집 더 보러 다녔다. 집에도 인연이 있다고 했던가. 더 값비싼 집들을 보았지만 우리 집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어째서인지 다른 집을 보러 다니면서도 묵묵히 기다리고 있는 춘천집이 계속 생각이 났다.


우리가 며칠 더 집을 보러 다니는 동안 중개사님도 우리가 집에 살 것 같다며 결정을 할 때까지 오는 연락들을 막고 기다려주셨다. 결심하고 나서는 모든 과정이 순조로웠다. 품게 되는 의심은 금세 거두어졌다. 결국 춘천 산자락에 있는 집을 계약하게 되었다. 흙 위에 지어진 집, 땅을 밟으며 살 수 있는 곳, 작은 텃밭을 꾸리고, 매일 그득히 아침을 만나고 계절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집


그렇게 우리 가족은 다가오는 2 서울의 아파트를 떠나  춘천의 산골짜기 주택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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