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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레 Jan 23. 2022

시골살이가 낭만적인 것만은 아니구나

두려움이라는 손님


집을 계약하고 나서 한동안은 마음이 기뻤다. 가슴이 진정 원하는 길은 늘 기쁨을 듬뿍 주기 마련이니까.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시골살이가 현실화 되면서 스멀스멀 생각지도 못했던 걱정이 하나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아이가 다니게 될 초등학교 걱정이 제일 먼저 찾아왔다. 집에서 가까운 곳에는 분교가 하나 있는데 아이들의 수가 너무 적었다. 작은 학교에 대한 긍정적인 마음이 어느 정도 있었지만 이곳은 1학년과 2학년이 같이 수업을 들아야 할 정도였다. 이렇게까지 작은 학교에 보내는 것은 생각하지 않았기에 고민이 되었다. 많은 친구들과 폭넓은 경험을 하지 못할 수 있겠다. 학급도 합반이면 수업은 제대로 이루어지는 걸까? 우려하는 마음으로 학교를 직접 방문하러 갔을 때 마침 운동장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만나게 되었다. 아이들이 남녀 할 것 없이 모두 모여서 축구를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이 학교를 다니게 되면 같이 수업을 듣게 될 한 오빠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첫째 아이가 다가가 말했다. "나는 포켓몬을 좋아해" "그래? 그거 엄-청 좋아하는 누나가 있어" 그러고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분명한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하는 아이. "나는 교통 대백과를 좋아해 그중에서 기차를 좋아하는데. 내 꿈은 기차를 고치는 기술자이고요.” 그때 난 그 아이에게 매우 강한 인상을 받았다. 아니 이렇게 똘망똘망한 아이를 본 적이 있었던가.. 너무도 밝고 단단하고 총명한 눈망울과 목소리. 한겨울에 파카를 입고 떨고 있는 나와는 달리 잠바도 안 입고 티셔츠 차림으로 공을 차고 있는 아이들에게서 차원이 다른 건강함과 쾌활함이 느껴졌다. 아이들을 보니 내 걱정들이 바람에 흩날려 사라지고 있었다. 주변에 좀 떨어진 학교들도 있으니 차를 타고 데려다주는 것도 고려해본다면 아이의 초등학교는 크게 문제가 될 것 같진 않았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온몸으로 저렇게 말해주고 있지 않은가.. 우리 지금 아무런 문제 없다고


두 번째로 든 걱정은 방범이었다.

여태껏 살면서 도둑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 유년시절에 주택에서 살았지만 이웃집이 빼곡히 붙어있었고 뒤뜰에는 우리 집 강아지 깜순이가 열심히 우리를 지켜주고 있어 도둑이란 존재를 만나본적이 없다.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는 말할 것도 없다. 경비 아저씨께서 동 앞에 상주하고 계시고 튼튼히 문이 잠겨있으니 혼자 있어도 전혀 걱정될 일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곧 가게 될 집은 집들이 듬성듬성 있었다. 굳이 찾아봐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현재에도 집을 터는 도둑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랐다. 갑자기 우리 집에 도둑이 침입한 것만 같은 시물레이션이 머릿속에 펼쳐지며 공포의 상황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방범은 어쩌지? 하는 걱정이 일었다. 동물을 키워야 하나. 단순히 집을 지키라는 이유로 동물을 키우고 싶지는 않은데. cctv를 달아야 하나. 보안업체를 이용해야 하나 그런데 업체는 왜 이렇게 멀리 있는지. 며칠을 방범 걱정을 했다. 도착해서 이장님한테 마을에  cctv부터 달아달라고 부탁드려야겠다 싶었다. 요란하게 울리는 방범벨도 괜찮겠어. 파출소에 순찰 좀 부탁드려보고, 아 그러고 보니 집 앞에 앞집이 키우는 큰 진돗개 한 마리도 있었지?..


그다음 찾아온 걱정 손님은 마음고생을 좀 하게 했다. 시골살이에서 벌레에 대한 각오는 누구나 어느 정도 하고 시작할 것이다. 나 역시 마음을 굳게 먹었다. 다리가 좀 달렸어도 그래.. 지네만 아니면 될 것 같았다. 지네는 섬유를 좋아해서 이불속에도 옷장 속에도 들어온다는데 지네만 아니라면! 어떻게 잘 어울려 살아보지 뭐- 다행히 지금 살고 계신 분들을 통해 지네는 나오지 않았다는 소식을 듣고 유레카를 외쳤다. 하지만 머지않아 벌레가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유명한 시골살이 커뮤니티에서 귀촌생활에 심심치 않게 뱀을 만나게 된다는 소식을 접한 것이다. 세상에 뱀이라니! 가슴이 쿵쾅되기 시작했다. 나는 뱀 사진만 봐도 소름이 끼쳐서 제대로 볼 수도 없는 사람이다. 도심 아파트에서 뱀 걱정을 하고 사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우리가 가는 집은 뒤에 떡하니 야산이 있었다. 사람이 사는 구역보다 자연지대가 더 많이 펼쳐져 있는 곳이다. 왠지 마당에서 뱀을 발견하게 될 것만 같은 느낌. 며칠간 마음에서 보이지 않는 뱀과의 사투를 펼쳐야만 했다. 뱀아 널 존중할게 제발 우리 마당에만 오지 말아 줘.


그리고 뒤이어 모든 것을 종결시키는 한방의 손님이 찾아왔다. 걱정 손님의 끝판왕은 바로  LPG!!  나에게 도둑이고 뱀이고 뭐고 다 상관없게 만든 게 이 LPG 님이시다. 겨울철 LPG 난방을 사용하는 집의 고지서 폭탄 소식! 그렇다 그동안 내가 너무나 편하게 살았던 것이다. 도시가스라는 혜택을 전혀 체감하지 못한 채 살고 있었다. 엄청난 난방비와 전기세에 대한 소식은 지구의 에너지가 공짜가 아니고 지구의 자원이 이렇게 우리에게 쓰이고 있구나-라는 지하지원에 대한 고찰마저 일으키게 했다. 돈이, 가스요금이 제일 무섭구나.. 난방비 폭탄이 일어날 예정이라면 과연 추위에 어떻게 대비를 하고 살아야 하는가..


그 밖에도 음식물 쓰레기 처리방법과 어딜 가든 라이딩을 해야 하는 생활 같은 자잘한 고민들이 나에게 순서대로 찾아오기 시작했다. 걱정 파티가 시작된 것이다. 내가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내가 어디다 집을 구한 걸까. 너무 모르고 덜컥 구해버렸네. 장난이 아닌 것 같은데. 급기야는.. 전세 계약 파기에 대한 검색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춘천집 계약을 취소하고 그냥 아파트나 들어갈까?... 분명히 내가 원했던 일인데 왜 이렇게 머리를 싸매고 있는 것인지. 변함없이 찾아오는 나의 마지막 관문은 바로 이 두려움이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이 있다. 걱정들 너머로 내가 이 집을 선택했던 그 명료했던 마음을 가만히 응시하며 느껴본다. 어쨌거나 기존의 삶과는 다른 이 새로운 생활은 내 삶의 경험치를 매우 폭넓게 만들어줄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힘들더라도 눈 딱 감고 4계절을 살아보자는 마음. 100개의 단점이 있을지라도 한 개의 장점을 진짜 제대로 누려보자는 각오. 그 마음으로 미지의 세계에 발을 담가보려 한다. 살아봐야 알기에. 모름지기 몸소 살아봐야 아는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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