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준비하며
본격적인 이사 준비에 돌입했다. 처음 하는 이사인데 할 일들이 은근히 많다. 버리기는 물론이요 이사업체 선청, 공과금 정리, 가구 배치 구상, 도시가스와 인터넷 철거 예약, 페가구 수거요청, 냉장고 비우기 등등등등등등.. 처음 하는 이사일이 녹록지 않다. 나는 이사 체질이 아닌가 보다. 그냥 적은 짐을 들고 훌쩍 떠나는 건 최고로 잘하는데 이사는 모든 것을 뜯어서 옮기는 것 같은 느낌이다.
이사를 하며 좋은 점도 있다. 전체적으로 물건들을 정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꼭 필요한 물건과 그렇지 않은 물건에 대해 숙고할 수 있다. 버릴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고 바꿀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과연 이 물건이 우리에게 계속 필요한 것인지 우리는 앞으로 어떤 형태의 모습을 꾸리며 살아가기를 원하는지를 짚어보고 다시 선택할 수 있다.
내가 지금과는 다른 곳으로 간다는 점을 이사 준비를 하며 하나씩 실감하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인터넷이다. 이용하던 S*고객 센터에 이전 설치를 문의했다. 웬만하면 전국에 설치가 가능하다고 했지만 우리가 이사 가는 곳에는 망이 깔려있지 않아서 해지를 해야만 한다고 했다. L사도 마찬가지였다 설치가 불가하고 앞으로 증축도 할 수 없는 지역이라고 한다. 선택지는 없었다. 다행히 K사에서 망이 깔려 있다고 했다.
다음은 물이다. 상수도가 들어오는 구역이 아니라고 한다. 물은 지하수이고 그래서 지하수 전용 정수기를 설치해야 한다. 지하수용 정수기 역시 선택의 폭이 크지 않았다. 제일 쇼킹했던 건 배달음식이다. 서울에서 모든 것을 시켜먹을 수 있었다면 이곳에서는 단 한 곳. 한 곳의 배달음식만 가능했다. 하지만 실망보다는 그 한 곳이라도 있는 것에 얼마나 다행이라고 여겨지던지 멀리까지 배달해주는 치킨집에 감사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도심과 떨어진 곳에서 브랜드를 고르는 건 사치였다.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히 받게 된다 이것이 시골 매직인가-
여태껏 빠르고 쉽게 물건을 구입할 수 있었다면 하나의 물건이라도 느리고 천천히 구입할 수밖에 없어져서 급하게 필요한 것을 준비하고 있다. 클릭 한 번에 집 앞으로 당일에 배송이 되었던 당연한 혜택이 나와 상관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빠른 혜택 멤버십을 해지하고, 빠른 배송 어플을 지운다. 그곳의 소비의 속도는 지금과는 다르게 조금 느릴 것이다
이사 준비로 인해 집이 잔뜩 어질러져있다. 물건들이 바닥에 뒹군다. 내가 이 물건들이랑 지금껏 살았었다니 놀랍다. 나는 정말 많은 물건들과 살고 있었구나. 이 물건들과 계속 함께 살아갈 자신이 없다. 최대한 덜어내고 최대한 비운다. 최대한 가볍게 넘어가고 싶다. 앞으로도 덜 가지고 살아가고 싶다.
이제 내일이면 5년을 살았던 서울을 떠난다. 걸어서 10분만 나가면 모든 것을 살 수 있었던 곳에서 차를 타고 10분을 달려도 살 수 없는 곳으로. 시끌벅적 지하철역. 이사를 가게 되면 반짝이는 것이라고는 밤하늘의 별과 달뿐일 텐데. 전혀 다른 환경 속에서 우리는 잘 살아갈 수 있을까. 번쩍이는 것들 대신에 반짝이는 밤하늘을 마주할 것이다. 잃어버린 별을 눈에 가득 담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