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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레 Mar 20. 2022

봄이오니 씨앗을 뿌리려는데 눈이 내리네

마음에 달린일

텃밭을 꾸리기 위해서는 땅도 필요하고 씨앗도 필요하다. 며칠 전 오일장에 방문해서 씨앗 몇 개를 사 왔다. 그런데 시장에서 사 온 씨앗은 소독이 되어 있는 것이라고 한다. 찾아보니 토종씨앗이라는 게 있었다. 우리가 키우고 싶은 방법으로는 토종씨앗이 더 적합했다. 그렇구나 모름지기 모든 것은 씨앗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구나. 좋은 씨앗부터 구해야 했다. 씨앗은 나눔의 형태로 나눠주는 것을 받거나 씨앗 도서관을 이용해 구할 수가 있었다.


시내를 나가는 길에 밭을 가는 농기구를 하나 사 왔다. 예전 프랑스에서 워킹홀리데이를 할 때 한 농장에서 밭을 갈아본 적이 있었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밭을 갈아본다. 그러다 신발을 벗고 맨발로 흙 위에 올라섰다. 보드랍고 촉촉한 흙의 감촉이 발에 닿는다. 발바닥이 편안해한다. 맨발로 흙을 갈아엎는다. 도시에서는 흙을 밟을 곳이 마땅치 않았다. 그때도 체기가 있거나 하면 근처 공원에 가서 소심하게 맨발로 나무 근처를 서성이다 오곤 했다. 지금은 언제고 흙을 밟고 싶을 때마다 마당에 나가서 흙을 밟을 수 있어서. 좋다.


텃밭에 대해 더 많은 지식이 필요한 것 같아서 책을 한 권 구입했다. 농작물을 기르는 것은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은 것 같았다. 공부를 해 나가고 싶다. 작은 텃밭이지만 텃밭을 향한 내 마음은 진심이다.



아이가 열이 나기 시작했다. 직감적으로 우리 가족에게도 코로나가 찾아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에게도 열이 났고 몸살 기운이 있었다. 큰아이의 열이 사그라들 무렵 둘째 아이도 열이 났고 구토 증상이 생겼다. 이 시골에서 오히려 제일 먼저 코로나에 걸려 버렸다. 아이들이 아프고 코로나로 인해 내가 한껏 예민해졌기 때문인지 이사 와서 처음으로 남편과 다투었다. 우리가 이사 온 곳은 예전에 비해 아주 완벽하고 좋은 것들을 갖추어 놓고 있었지만 아무리 좋은 장소, 좋은 집, 좋은 가구들을 갖추어도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 따라 한순간에 지옥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알았다. 남편과 관계가 틀어지고 안 좋아지니 정말 천국 같았던 이곳이 한순간에 지옥처럼 느껴졌다. 서로에게 좋은 것도 나쁜 것도 더 크게 다가왔다. 서로가 어떤 관계를 이어 나가느냐가 아주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 이곳에서 더 도드라지게 드러났다.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아 본격적인 자가격리가 시작되었다. 다행히도 아이들은 증상이 심하지 않았고 짧게 지나갔다. 당분간 씨앗을 구하러 갈 수 없어졌다. 주변 집들은 밭을 정돈하고 움직이기 시작한다. 격리가 끝나면 씨앗을 가져와 심어야겠다. 서두르지 말자. 욕심부리지 말고 천천히 하자.


하루를 마무리할 때쯤 문을 걸어 잠그면서 청명함에 이끌려 잠깐 밖으로 나가 하늘을 본다. 놓치기엔 매일 펼쳐지는 밤하늘이 너무 아까워서 매일마다 밤하늘을 보기로 마음먹었다. 오늘부터 1일 1 밤하늘이다. 많은 날들 동안 별을 볼 수 있다. 가능하면 매일 별을 들여다볼 것이다.


자고 일어나니 풍경 가득 눈이 쌓여있다. 온통 하얀 세상의 설국이다. 아이들도 창문에 달라붙어 눈을 구경한다. 분명 개구리가 깨어난다는 경칩이 지났는데 개구리가 놀라 다시 굴로 들어갈 것만 같다. 어쨌거나 우리에겐 선물 같은 아침이다. 눈에 마음을 씻어내 달래어본다.


시골에 오니 태양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해가 비추는 날과 그렇지 않은 날 집이 달구어지는 온도 차이가 생긴다. 아무래도 이왕이면 햇빛이 비추는게 낫다. 태양이 산으로 넘어가 모습을 감추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어둠이 찾아온다. 태양은 우리에게 빛과 온도를 준다. 아주 즉각적이고 직접적으로-


눈도 조금씩 녹아 사라지고, 코로나로 분주했던 마음도 차분하게 지나간다. 다행히 모두 큰 탈 없이 치르고 지나간다. 좋은 날들은 함께 노력하고 꾸려가야 하는 것이다. 천국과 지옥은 여기 지금 내 마음에 달린 일- 무엇보다 귀 기울여 소중히 가꾸어야 할 것은 내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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