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녹고 나서 본격적으로 봄이 찾아온 느낌이다. 새벽에 고라니 울음소리를 들은 것 같다. 꿈인가 싶었지만. 분명히 꽤 애액- 하며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한 번도 들어본 적은 없지만 본능적으로 이것이 고라니의 울음소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웃집에 사는 분을 만났을 때 4월이 되면 이런저런 소리들이 많이 들릴 것이라고 하셨다. 3월의 막바지인 지금 낮에는 정체모를 새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2월까지만 해도 까마귀 소리만이 선명하게 들렸던 것 같은데 봄이 되면서 주변의 산과 숲이 깨어나기 시작한다. 생명들과 자연들이 깨어나고 있음을 느낀다. 그래 자연이라는 것은 인간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모든 생명을 어우르는 말이 자연이다. 자연스럽게 산다는 것은- 욕실을 기어 다니는 아기 거미, 집에 들어온 노린재와 무당벌레, 천정에 기어 다니는 집게 벌래와. 이따금 보이는 고라니. 그리고 오골계인지 비둘기인지 모를 울음소리를 내는 저 새들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다. 인간만 따로 떨어뜨려 놓고서는 자연적인 삶은 가능하지 않은 것이다. 확실히 이사를 오고 나서 생명체들과 같이 살아가는 느낌을 받는다. 생명력이 보이고 들린다.
낮과 밤으로 계속 들리던 소리가 새가 아니라 개구리 소리라는 것을 알았다. 뜨아! 충격이다.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개굴개굴 소리가 아녔기에 깜짝 놀랐다. 산개구리 소리란다. 산에도 개구리가 살다니, 처음 알았다. 개구리 소리를 개구리 소리로만 들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이내 내 생각은 꼬리를 물고 이어지기 시작한다. 개구리가 근처에 있다는 것은 개구리를 먹이로 하는 또 다른 생물이 나타난다는 뜻이고 그것은.. 퍼뜩 뱀 생각이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개구리를 먹으러 누가 다가오겠는가. 먹이사슬. 개구리를 먹이로 하는 생명체가 뒤를 이을 것이다. 교과서에서 보던 먹이사슬이 우리 집 바로 뒤 야산에서 펼쳐지고 있는 게 실감이 났다. 게다가 그렇게 울어대던 개구리울음 소리가 오전부터 뚝 끊겼다. 잡아 먹힌 것일까? 아니면 울 필요가 없어진 걸까? 귀를 쫑긋 세운다. 오만가지 생각이 든다. 자연을 넘어 야생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산속에서는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티브이 속에서 보던 야생의 세계가 집 뒤뜰에서 펼쳐지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뒤뜰을 들여다 보기가 두려워진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텃밭에서 고랑을 만들어 본다. 왜 이렇게 고랑의 형태를 만들어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주변 집들의 텃밭엔 다 고랑이 만들어져 있었다. 나도 흙을 모아 손으로 톡톡 두드려 고랑을 만들어본다. 흙을 토닥토닥 만지며 감촉을 느끼면서 직감적으로 느낌이 들었다. 아.. 지금 이 순간이 너무 좋은데.. 앞으로 마당에 텃밭이 없는 곳에서 다시 살아갈 수 있을까? 마음은 자꾸 너른 땅을 사서 집을 지을 생각 쪽으로 기운다. 마음이 자꾸만 땅과 집으로 기울어 간다.
도로를 달릴 때마다 도로가 한적해서 좋다. 거리에 차가 거의 없다. 집으로 운전하며 가는 길 눈앞에 펼쳐지는 산자락을 보면서 매번 감격한다. 내가 향하는 곳이 저 산자락이라는 사실이 좋다. 시골살이 한 달 차 벌써 걱정된다. 내가 다시 아파트에서 살 수 있으려나. 이곳이 너무 좋은데 다시 도시로 갈 수 있으려나. 곳곳에서 시골의 정서가 느껴지고 있다. 주민센터에는 번호표가 없다. 한 분 한 분이 앞으로 오셔서 자세히 일을 보고 도와주신다. 주민센터에서 나오니 큰 북한강 뷰가 펼쳐진다. 곳곳에서 특유의 여유의 정서가 느껴진다. 이 특유의 여유의 정서는 공기처럼 맴도는 것이라. 어떻게 설명할 수가 없다.
이 좋은 곳을 왜 이제서야 왔을까 하는 마음과
이제라도 와서 정말 다행이라는 마음이 함께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