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아침시간이 생겼다.
집에 마당이 생겨서 좋은 점은 코로나 시국에 마스크 없이 땅을 밟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문만 열고 나가면 자유로운 야외 공간이 있다. 텃밭에 농작물을 심고 꽃을 가꾸는 가드닝을 할 수가 있다. 아이들이 진짜 흙을 가지고 놀 수 있다. 첫째는 잠옷 바람으로 줄넘기를 한다. 외부의 자연이 집의 일부가 된다. 하늘, 바람, 향기, 새소리가 우리 집이 된다.
얼마 전 외출을 했을 때 모종을 팔고 있는 화원에 자연스레 눈길이 갔다. 민트 화분과 방울토마토 모종을 사 왔다. 사실 수년 전부터 가장 심고 싶었던 식물은 민트였다. 예전에 인도 라다크의 알치 마을을 여행했을 때, 도착한 숙소에서 밭에서 갓 딴 민트로 만들어 준 웰컴 티를 마신적이 있는데 그때 마셨던 민트 티의 맛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면 민트부터 길러야겠다고 굳게 다짐 했었다. 하지만 5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마당에 첫 민트를 심어볼 수 있었다. 허브는 반음지에서 잘 자란다기에 소나무 그늘이 닿는 자리를 마련해주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민트 향기가 난다 기분이 매우 좋다. 생 민트를 따다가 라다크 알치식 민트 티를 만들어 마실 것이다.
마당에서 자라는 여린 쑥을 채취해서 골라 담는다. 신기하게 정말 쑥 향이 그득하게 난다. 민트의 향은 상큼하고 기분을 가볍게 한다면 쑥에서는 깊은 향이 난다. 쑥향이 너무 좋아 어쩔 줄 모르겠다. 이러다 쑥과 사랑에 빠질 지경이다. 쑥은 말려서 차를 만들고, 여름철 천연 모깃불로 사용할 것이다. 반신욕을 할 때 물에 넣어도 좋단다. 오래 묵힌 쑥은 약으로도 쓰인다. 쓰임새가 많으니 보물처럼 매일 쑥을 딴다. 식물을 하나씩 알아가는 것이 즐겁다. 처음이지만 본능적으로 쑥을 씻고 다루는 과정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는 느낌이다. 내 DNA에 선조의 식물을 다루는 지혜가 담겨 있는 건가 싶었다. 직관을 따라서 쑥을 씻어 말린다.
그래 너는 그림을 그리거라 엄마는 쑥을캘테니
마당 하나 생겼을 뿐인데 자연은 많은 것을 내게 준다
하루에 마당 손질을 조금이라도 한날과 그렇지 않은 날에 차이가 있다. 특히 부정적인 감정이 일어날 때 조금이라도 땅을 마주하고 시간을 보내면 정화가 되는 경험을 한다. 마음이 힘들 때 잡초를 뽑고 마당을 가꾸면 감정이 누그러짐을 느낀다. 잠시라도 땅과 만나는 시간이 나에게 에너지와 도움을 준다. 마당이 나를 살려주고 있다.
처음 파종해본 농작물의 싹이 올라오고 있다. 가슴 깊은 곳에서 감탄이 흘러나온다.
마당의 분홍 꽃봉오리를 볼 때도 일순간 마음 가득 행복이 차올랐다. 이것이 인간의 근원적인 행복인가 싶을 만큼 깊은 행복감을 경험했다. 나는 꽃망울에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었구나
변수가 있다면 아이들의 흙놀이 구역을 따로 마련해뒀는데도 둘째 아이는 구분 없이 텃밭을 다 밟으며 돌아다닌다. 새싹들이 아이를 잘 견뎌주길 바란다.
밤새 비가 내리던 날 다음 화창한 아침.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러 밖에 나와서 또다시 감탄을 했다. 이렇게 싱그러운 아침이 있을 수 있을까. 생생한 빛깔과 싱그러운 향기. 이것을 피톤치드라고 하는 건가. 싱그러운 아침에 온 몸과 마음이 녹아내렸다. 그저 감탄하며 느낄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도 나와 같았는지 같이 아침을 느낀다. 우리는 그날 온몸으로 생경한 아침을 마주했다. 평생 이 아침을 잊을 수 있을까
봄이 되면서 첫째 아이는 학교에 가기 전에 정원의 풀들과 꽃들 새싹을 관찰하는 시간을 즐기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우리에게 아침시간이 생겼다. 잠시 마당에서 새싹들과 나뭇잎 꽃들을 둘러보고 새소리를 들으며 진짜 오롯이 아침을 느끼는 아침시간이다. 둘째도 마당이 좋은지 수시로 마당에 나가자고 손을 잡아끈다.
집에 작은 정원의 마당이 생겼을 뿐인데 나의 일상과 계절이 달라졌다. 앞으로는 마당이 없는 삶을 절대 못 살 것 같을 정도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