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무게
눈이 부시게 따가운 햇살과 무더운 8월의 여름날. 여느 해와 다르지 않았던 계절에 우리는 넷에서 셋이 되었다. 아빠에게 영원하지 않을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니 아빠의 빈자리는 없었다. 오랜 병원 생활로 아빠가 없는 집이 익숙진 탓에 무뎌질 대로 무뎌져 버렸다.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는다고 자각하는 순간 감정이 무너져 내렸다. 이 세상엔 더 이상 아빠가 없다.
엄마는 늦은 밤까지 하던 일을 더 이상 하지 않았다. 먼 곳에서 하던 일을 그만두고 집 근처 작은 곳에서 새로이 시작했다. 온종일 아르바이트를 하던 오빠는 가을 학기로 복학을 했고 처음으로 머리를 샛노랗게 탈색을 했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돌아간 학교는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는 들뜬 분위기가 감싸 안았다. 여기저기 시끌벅적하고 까르르 웃음소리가 가득 메운 교실 안에서 나만 가라앉은 느낌이 들었다.
수업을 듣는 내내 책상 서랍 속 흰색 봉투를 만지작거렸다. 선생님의 목소리가 울리듯 저 멀리 사라지고 어느새 손바닥에는 땀이 찼다. 몇 번의 쉬는 시간이 지난 뒤에야 봉투를 들고서 교무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주뼛주뼛 서있는 나를 발견한 담임 선생님은 환하게 웃으며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애꿎은 봉투만 내밀었다. 지금 말을 내뱉으면 울음이 터질 것만 같아 입술을 지그시 꾹 눌러 담았다. 선생님은 건네받은 봉투 안의 종이를 확인하시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나의 손을 잡고 어디론가 발걸음을 바삐 옮겼다.
교무실 옆 작은 상담실이었다. 선생님은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고 한동안 나를 꽉 안아주셨다. 등을 쓰다듬어 주시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셨다. 큰일 치르느라 마음고생 많았겠다며 따뜻한 어조로 나를 다독여주셨다. 결국 난 참았던 눈물이 터지고 말았다.
하얀 봉투 속에는 새로 발급받은 가족관계 증명서와 아빠의 사망진단서가 들어있었다. 우리 가족의 변화를 왜 학교에 알려야 되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참 잔인하다고 생각했다. 내게서 온전히 지워지지 않을 존재가 더 이상 이 세상에 남아있지 않다고 확인사살을 한 느낌이었다. 난 ‘아빠가 없는 사람’이라는 낙인이 찍힌 것처럼 가슴이 쓰라렸다.
아무렇지도 않게 교실로 돌아와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그들에게 자연스레 스며들었다. 이따금 친구들이 자신의 아빠에 대해 이야기할 때에도 속으로는 아물지 않은 상처에 날카로운 칼로 베인 듯 따끔거렸지만 겉으로는 억지스러운 미소를 띠우고선 가끔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빠의 부재는 14살 사춘기 여중생이 견뎌내기엔 버거운 일이었다.
곪을 대로 곪은 상처가 세월이 흘러 무뎌진 흉터가 되었을 때, 그제야 엄마와 오빠를 이해하게 되었다. 이른 아침부터 저녁까지 몸이 고된 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온 엄마는 밤 9시만 되면 기절하듯이 잠을 청했다. 사계절이 지나고 몇 해가 흐르는 동안에 엄마의 체력은 떨어질 때로 떨어져 한 여름에 대상포진이 걸렸고, 술을 좋아하지 않았던 오빠는 네 번의 학기 내내 동아리 모임이며 학과 행사며 빠짐없이 참석하고선 술이 잔뜩 취해 들어오는 날이 많아졌다. 회사에 들어가서도 매일같이 회식을 하고 술에 취해 신발장 앞에서 쓰러져 자는 일이 종종 있었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오빠는 갑자기 사표를 던지고 나와버렸다.
사춘기 소녀에게는 영영 사라져 버린 ‘아빠’라는 존재가 콤플렉스가 되어 아빠가 없다는 사실을 다른 이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신경이 곤두섰었고 입 밖으로 내뱉으면 안 될 금기어처럼 내게서 꽁꽁 숨어버렸다. 급작스럽게 두 자식을 혼자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 되어버린 여인은 앞이 깜깜했던 미래를 감추기 위해 몸을 혹사시켜 자기 자신마저 속였다. 열심히 일을 하면 밝은 날이 올 거라는 희망이 눈앞에 보이는 거처럼. 어린 여동생에게는 듬직한 오빠이자 아빠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원동력을 잃지 않기 위해 애쓰는 엄마에게는 함께 달리는 남편으로 때론 잠시 동안 기댈 수 있는 든든한 아들의 모습으로 늘 곁에 있었던 남자에게도 버거운 날이 있었다. 그때마다 술을 벗 삼아 스스로에게 괜찮다고 지나고 나면 별 일 아니었다고 위로했지만 억지로 끼워 맞춰 논 용수철이 구겨진 상태로 버티다 결국 튕겨 나가떨어져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된 거처럼 한동안 가만히 멈춰있기도 했다.
세월이 흘러 각자의 위치에서 삶이 나아질 거라고 버티고 버텼던 우리는 무뎌진 흉터를 어루만지며 여전히 아빠 이야기를 하며 울고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