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날, 띄우는 편지

가족사진

by 이방글

아빠가 우리 곁을 떠나 저 멀리 긴 여정을 떠난 뒤 소리 내어 아빠를 부를 일이 없어졌다. 부를 수 있는 존재의 부재가 내게는 소리 내어 말할 수 없게끔 말문이 막히게 되었고 나와는 관련이 없는 단어가 되었다. 종종 드라마에서 성인이 된 딸과 머리가 희끗하게 센 아빠의 다정한 모습이 나올 때면 아빠가 지금 살아계셨다면 우리도 저랬을까 라는 생각에 잠기곤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상상 속 우리의 모습은 옅게 스치고 사라져 버렸다.

어느 날 갑자기 가족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있다.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아파트 단지 내에서 1번 놀이터라 불리는 우리 집에서 가장 가까운 놀이터에서 놀고 있었다. 엄마가 나를 부르는 소리에 하던 놀이를 멈추고 다가가니 가족사진을 찍으러 가자고 했다. 엄마는 헝클어진 내 머리를 다시 묶어주고 옷매무새도 다듬어 주었다. 동네 사진관에 도착하니 아빠와 오빠가 먼저 와 기다리고 있었고 우리는 그렇게 처음이자 마지막 가족사진을 찍었다.

인화된 가족사진은 크기가 작았고 액자가 아닌 사진앨범에 자리를 잡았다. 머리만 단정하게 묶은 나와 그 시절 유행하던 머리스타일과 안경을 낀 오빠, 평소에 화장도 하지 않던 엄마가 허옇게 얼굴만 떠있고 어색하리만큼 짙은 색조화장을 하고 어정쩡하게 앉아 있었다. 엄마와는 상반되게 낯빛은 어둡고 양볼이 쏙 들어갈 만큼 마른 아빠가 무표정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감정 없이 의무감으로 가득 찬 가족사진이었다. 다시 그때 찍었던 가족사진을 마주하게 된 건 오빠의 지갑 속이었다.

아빠의 빈자리가 익숙해졌을 때쯤 엄마는 건강 관리를 한다며 매일같이 등산을 하고 걷기 시작했다. 마음도 몸도 건강해진 게 느껴질 만큼 활력이 생겼다. 건강이라면 자신 있던 엄마에게 국가 건강검진을 하라는 우편이 왔다. 막상 받으려니 겁이 난다던 엄마는 빠르게 예약을 하고 하나둘씩 받기 시작했다.

집을 떠나 서울살이를 하며 회사는 만만치 않은 곳이란 걸 혹독하게 느끼곤 회의감에 가득 찬 채 지쳐가고 있었다. 회사에선 일보다는 사람에 치이고, 남자 친구와는 매일같이 언성을 높이며 싸우는 게 일상이 된 나는 지친 기색이 여력 했다. 이 넓은 땅덩어리에 편히 몸져누울 곳은 공덕의 11평짜리 보금자리밖에 없었다. 그날도 지친 몸을 이끌고 돌아온 집에서 대자로 누워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공허한 공기의 흐름이 느껴지는 가운데 오빠한테서 걸려온 전화가 반짝이고 있었다. 순간 온몸이 주뼛 서는 느낌이 들었고 두근거렸다. 이유모를 긴장을 한 채 전화를 받으니 엄마의 대장내시경 결과가 나왔는데 빨리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 했다는 소식이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연락처를 살피기 시작했다. 연구실에서 함께 생활했던 대학 선배에게 다짜고짜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을 새도 없이 엄마의 사정을 전하며 예약 대기를 부탁했다. 다행히 선배가 일하는 연구실이 대장과 관련되어 있었고 흔쾌히 교수님께 말씀드려보고 연락을 주겠다며 나에게 울지 말라는 말을 했다. 그제야 내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선배 덕에 사흘 뒤 외래와 검사가 잡혔다. 부랴부랴 엄마와 오빠는 서울로 올라와 환자등록을 하고 검사를 받았다. 엄마는 대장암 3기라고 했다. 수술은 이틀 후로 잡혔고 수술을 위한 입원 수속을 마쳤다.

회사에 연차를 내고 병원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건강하던 엄마의 기력이 급격하게 아픈 사람으로 변했고 웃음 가득하던 엄마는 입을 닫은 채 울기만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위로가 되지 않는 말과 희망찬 미래를 이야기했지만 엄마에게 전해지지 않았다. 수술실로 들어가던 엄마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금방 다녀오겠다는 인사와 함께 눈시울을 붉혔다. 수술실 밖 대기실에서 기다리던 오빠와 나는 초조하게 전광판만 바라보고 있었다. 수술이 시작되고 세 시간쯤 지났을 무렵 오빠는 잠깐 바람을 쐬고 오겠다며 지갑을 맡기곤 홀연히 사라졌다. 오빠의 손때 묻은 지갑을 여기저기 살피다 안쪽 구석에 자리 잡은 가족사진을 발견했다. 넷이서 찍은 유일한 가족사진을. 사진 속 아빠에게 작게 속삭이며 부탁을 했다. 제발 엄마 수술 잘되게 해 달라고. 아빠처럼 엄마를 잃고 싶지 않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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